▲강사의 초청에 신대원생들을 비롯해 교수들까지 강당 앞으로 나와 기도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저는 1980년 애즈베리신학교의 한 학회에 참석했습니다. 연이은 강의 중에, 제가 이해하는 기본적인 복음주의로 볼 때, 제가 믿는 복음은 성서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깊지 않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됐습니다. 저는 단지 천국에 가기 위해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땐 제 전부를 그리스도께 드리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신학대학원생 2백여명이 참석한 강좌가 시작된지 1시간여, 막바지를 향하던 순간 강사는 울먹였다. 휴대전화를 쳐다보거나 졸면서 강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학생들은 ‘움찔’ 했다.

“성령께서 완전히 저 자신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인가가 제게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거부하실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며, 제가 스스로 원하는 것보다 나은 삶을 주심을 진정으로 믿지 않고 있었음을 알겠지요. 하지만 믿음으로 은혜를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제 삶의 모든 것을 취하시고, 대신 주님의 것들로 채워지도록 간구했습니다.”

학생들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딱딱했던 신학강좌는 ‘아멘’이 터져 나오는 간증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 저는 그 분이 제 인생을 바꾸셨고 제 마음을 성결케 하셨으며, 저의 내적 존재에서 그 분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허락하셨다고 간증할 수 있습니다. 제 신앙의 열쇠는 바로 그 결정 위에 있었습니다.”

 

▲앞으로 몰려나온 학생들의 모습. ⓒ이대웅 기자

‘듣지 않을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이들’이라며 ‘목회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설교 대상자 1순위’로 꼽히는 신대원생들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해 자신을 비워 문을 열어놓으셨고, 그곳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우리의 타락한 정욕을, 그 고난의 흔적으로 바꾸시길 원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시는 분들 있다면 앞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반응했다.

한 학생이 이를 듣자마자 강단 앞으로 뛰어나갔고, 다른 학생들도 앞으로 몰려들었다. 부흥집회 등에서 ‘초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권하는 형식의 ‘초청’에 이들이 반응한 것이다. 이들은 통성으로 자신들의 지난날을 회개하며 부르짖었고, 교수들도 함께했다. 결단의 기도가 이어졌고, 강연이 끝난 뒤 한참이 흘렀지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흐느끼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 박사)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가 주최한 제9회 카우만 기념강좌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강좌는 ‘하나님의 내적 생명(The Inner Life of God)’을 주제로 로날드 스미스 박사(Ronald E. Smith·국제OMS 전 이사장)이 첫날 ‘내적 교제로의 초대(Invitation to the Inner Fellowship)’, 둘째날 ‘참여와 교류(Participation and Exchange)’를 주제로 각각 강연했다.

스미스 박사는 강연 후 “학생들을 초청했는데 많이 나와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봤고, 저는 그걸 보면서 한국교회 신학생들이 살아있다고 느꼈다”며 “특히 머리 뿐 아니라 가슴이 살아있고, 이런 부흥의 움직임들을 이어 나가면서 새로운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는 한국교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불완전한 존재를 위해 문을 열다

 

▲이틀간의 강좌가 끝난 후 강사와 교수진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신대 제공

그는 ‘하나님의 내적 생명’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에 관해 “우리가 보통 성결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며 “오히려 초대교회에서는 ‘세속적이고 불완전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있는가’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스미스 박사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정치적으로 관용적·상대주의적인 로마 사회에서 그들의 교리가 받아들여지도록 ‘항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독교 신앙과 실천의 케리그마적 원칙(본질적 믿음체계)은 표면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지만, 이는 당시 헬레니즘 문화에 정확히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흐름에 의연히 맞서 차라리 화살에 맞거나 창에 찔리고, 짓밟히고 불태움을 당하며,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을 선택했는데, 이러한 힘과 용기의 원천은 바로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실제 부활하셨다는 확고한 믿음’이었다고 분석했다.

사도들의 케리그마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서 완전하신 분이 썩어질 육체를 입으셨다’는 것이었고, 그는 우리의 육체 또는 타락함 가운데 임하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그와 함께하는 영원한 교제 속으로 일으키기 원하셨다. 4세기의 아타나시우스는 이를 “사람이 하나님께 이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려오셨다”고 표현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우리와 분리되기를 원치 않으셨고, 결국 완전한 존재가 우리의 불완전함을 취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내적 생명’은 변화됐고, 하나님께서 겪으신 유일한 내적 변화란 하나님께서 그 분 안에 우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신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이고, 그 원천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이다.

▲카우만 기념강좌 강사인 스미스 박사. ⓒ서울신대 제공

두번째 강연 ‘참여와 교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에 ‘참여’하신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이 하나님께 참여함으로 ‘교류’를 완성했다.”

기독교인들 안에는 인간이 자신의 타락 너머로 나아갈 수 없다는 ‘회의주의’가 있지만, ‘성결’의 힘은 용서 뿐 아니라 변화에 있다. 우리는 거룩해지면 예수께서 내 속에서 역사하시니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싸워 나가야 할지를 생각하지만,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므로 낙관적으로 보면 성결을 변화의 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의 성결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현재의 복종이 되는, 예수의 능동적인 복종이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본래적 사역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한 것이라 강조하는 교파들이 있지만, 더 강조돼야 할 부분은 그의 영원하신 ‘사랑’이다.

전체적으로 그는 기독교의 가장 근본을 차지하는 교리들을 약간 다른 차원으로 설명하면서, 우리가 이를 단지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체험하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둔 듯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를 향해 “유럽교회를 따라가다 현재 미국교회가 겪고 있는 전철을 밟지 마라”며 “유럽교회는 국가적으로 하나였는데 이것이 깨지면서 여러 이념들이 나오고 이것들이 동등된 위치를 차지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하고 많은 성도들을 잃었다”고 밝혔다. 또 “사회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영적인 변화가 함께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영적 변화와 사회적 진보를 동시에 이루는 통전적인 모습이 필요하고, 어느 하나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대 카우만 기념강좌는 초기 한국성결교회 정신을 발굴·계승하고 서울신대의 세계화 및 국제적 신학교류를 추구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다. 카우만(Charles E. Cowman) 박사는 성결교회의 모태가 된 OMS(동양선교회)를 조직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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