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바빙크

대표적인 개혁파 신학자 중 한 명인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강독 세미나가 현대기독연구원에서 11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바빙크 강독 세미나는 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여러 강좌 중 칼빈주의 전통을 연구하는 '개혁파 신학 사상 과정'으로 기획돼 작년 9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현대기독연구원 합정동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바빙크의 방대한 조직신학서인 '개혁교의학'(전4권) 1권부터 4권까지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 28일에는 3권의 49장 '구원의 서정' 전반부를 다뤘다.  강독 모임이라 참여한 모두가 발제해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다.

■ 타종교 구원의 길, 인간의 힘으로 획득

이날 이주일 연구원은 먼저 "모든 사람은 어느정도 유일한 최고선이신 하나님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으나, 이방 종교를 포함하여 사람들은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을 올바르게 추구하지 못한다"며 "따라서 이방 종교의 기본 원리는 참된 유일신과 은혜의 선물에 대한 거부이면서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획득하려는 것이다"고 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실제로 파시교나 불교, 이슬람교에서 구원의 성취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고 가르치며, 특히 이슬람교 조차도 인간이 저지를 죄가 용서 받기 위해서는 기도 외에도 '종교적 의무를 수행해야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이스라엘 민족 포로기 이후 율법주의로 치우쳐

그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은 다르다"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해야 할 의무는 언약 관계를 맺기 위한 선행 조건이 아니다"고 역설했다.

이 연구원은 "물론, 사두개인은 반율법주의적 태도를, 바리새인은 외적 율법 준수를 통해 의와 구원을 얻는다는 태도를 지녔다. 그러나 그 중간에 있던 소수의 사람들은 율법을 사랑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그들을 정당하게 한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 언약과 은혜에 대한 예언적 요소들은 약화되고, 이스라엘 종교는 율법주의적 경향으로 발전했다"며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주전 445년에 포로 귀환자들에게 율법 준수를 맹세하게 했을 때 이스라엘은 겸손히 율법에 복종했으나, 점차 다른 극단인 율법주의로 치우쳤다"고 이 연구원은 전했다.

또 "예언이 그치면서 이스라엘이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은 죄의 속죄와 새언약의 수립이 아닌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과 전 세계에 대한 통치 회복이었다"고 덧붙였다.

■ 하나님 나라, 회개와 믿음 통해 주어지지만…

이어 이주일 연구원은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의 생각과는 다르게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고 구분한 뒤 "예수의 설교에서 하나님 나라는 공로에 따른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회개와 믿음을 통해 주어지지만 이 회개와 믿음도 은혜의 선물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길이라는 진리는 처음부터 기독교회 내에 확고한 것이었다"며 "그러나 구원의 적용에 대한 가르침은 초기에 거의 형성되지 않았으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여기서 믿음은 진리에 대한 확신이었으며 회개는 참회로 이해되었다"면서 "세례 후에 범한 죄들은 참회를 통해 회복되어야 했는데, 참회 이외에도 기도, 금식, 구제 등의 외적 행위가 더욱 강조되었고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그대로 흉내내고 모방하는 것이 요구되었다"고 말했다.

■ 펠라기우스, 구원은 자연법·실정법 통해서도 획득

실례로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과 논쟁했던 수도사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전하며 "심지어 펠라기우스는 기독교적 토대를 버리고 스토아 철학의 자족의 원리를 받아들였다"며 "그에게 아담의 죄와 우리 죄 사이에는 어떤 연관도 없으며, 구원은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자연법이나 실정법을 통해서도 획득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펠라기우스가 말하는 은혜는 성령의 내적 은혜나 거듭나게 하는 은혜가 아니며 각 사람이 의지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은혜, 설교와 교육을 통한 객관적 은혜, 믿고 선행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죄 용서와 미래적 구원이었다"며 "불가항력적인 은혜는 없으며, 은혜 없이도 인간은 많은 선행을 할 수 있다"고 펠라기우스는 주장했다고 이 연구원은 설명했다.

그는 또 "반 펠라기우스주의는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완화시켰는데, 여기서 인간은 아담의 죄를 통해 영적으로 죽지는 않았으나 심각하게 병들었으며 자유의지도 상당히 약화되었기에 신적 은혜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남아 있는 의지가 있기에 은혜는 의지와 협력하여 일하며 자유의지를 잘 사용한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고 소개했다.

(자료사진)강독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이 헤르만 바빙크의 저서 '개혁교의학'을 들고 있다.   ©현대기독연구원

■ 아우구스티누스, 구원은 인간 전적인 도덕적 부패에서 출발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원은 아담의 죄 때문에 발생한 인간의 전적인 도덕적 부패와 영적 선에 대한 인간의 무능에서 출발한다"며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변화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믿는 것은 우리 몫이라고 가르쳤고 나중에(396년경) 고린도전서 4장 7절을 통해 선택과 예정의 결과인 은혜는 모든 공로에 선행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이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다시 말해 '믿음·선한 의지·선에 대한 사랑·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은혜가 일으키는 것'이라는 의미로, 그러므로 이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란 것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다.

이어 이 연구원은 "하지만 이것은 은혜가 사람의 자유의지를 파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면서 "오히려 은혜가 죄의 노예로 남아 있는 의지를 해방시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는 카르타고회의에서 정죄되었으며, 반펠라기우스주의도 오렌지 회의에서 거부되었다"며 "따라서 아담의 죄로 인한 전인의 부패와 믿음의 원인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진리가 교회의 교리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펠라기우스주의는 로마교에게 공식적으로 거부되었으나 다시 우회하여 들어왔다"고 설명한 이 연구원은 "그래서 우선 로마교는 자유의지가 죄로 인해 약화되었으나 상실된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둘째로 선행하는 은혜는 믿을 능력을 주지만 믿는 행위 자체는 아니라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차이가 있다"며 "예컨대, 트렌트 회의는 사람이 선행하는 은혜에 거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에 대해 많은 의견 차이가 있는데, 아우구스티누스파는 선행하는 은혜가 믿을 능력은 주지만 믿기 원하는 의지를 주진 않는다고 말한다"며 "토마스파도 믿을 능력만 주고 의지는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 하나님의 물리적 능력이 보충되어야 의지가 산출된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로마교는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 태어는 아기들은 세례를 통해 중생을 받으며, 성인이 되어 복음을 들은 자들은 성령을 통해 충분한 은혜를 받는데 이 은혜를 거절할 수도 있다. 사람의 의지가 이 은혜에 동의하면, 고무하는 은혜는 협력하는 은혜로 바뀌며 일곱 가지 과정을 통해 칭의를 준비한다"

"여기서 믿음은 중심적 위치가 아니며 다른 여섯 가지 준비와 협력할 뿐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기독교 진리에 대한 동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은 "사람은 이 준비를 통해 은혜를 공로로 받을 만큼 충분하게 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적정공로에 따라 주입 은혜로 포상을 베푸신다"며 "성령의 내주와 초자연적 미덕들이 주입되고 신적 본성에 참여하게 되면 죄의 용서가 뒤따르게 된다. 죄는 지워진만큼만 용서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 세례를 통해 주입된 은혜를 소유하다가 치명적인 죄악을 통해 상실하게 되면, 마음의 뉘우침과 입술의 고백, 행위의 보상을 통해 속죄해야 한다"며 "결국, 로마교의 '은혜'란 일차적으로 죄의 용서가 아닌 선한 일을 행하여 영생을 획득할 수 있게 해 주는 거듭남, 사랑의 주입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추가적 선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가 등장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각해졌다"며 "은혜 개념은 변화되었는데, 은혜는 타락한 사람만이 아니라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타락 후에 은혜는 두 가지 역할을 하는데, 사람을 죄로부터 구속하며 초자연적인 질서로 끌어올리는 것이다"고 그는 전했다.

■ 칼빈과 루터의 구원의 서정(序程)…믿음과 회개의 '우선순위' 차이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계속해서 종교개혁 시기로 넘어간 이일주 연구원은 "루터 개혁의 도화선은 로마교의 고해 방식이었다"며 "루터에게서 '은혜는 특히 죄 용서로 이해되고, 믿음의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로 정의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루터는 처음에 회개를 믿음의 열매라고 보았으나 나중에 '거짓된 평안을 조성하지 않도록' 회개를 믿음 앞에 두었다고 알려졌다"며 "그러나 칼빈은 정반대였다. 그는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회개를 믿음 앞에 두었으나 2판 이후에도 믿음을 회개 앞에 두었다고 알려졌다"고 이 연구원은 소개했다.

그는 "루터는 초기에 로마교의 행위로 말미암은 의에 대항했고 나중에 반율법주의에 대항하면서 강조점의 전환은 있었으나, 그의 가르침은 항상 동일했다"며 "즉, 뉘우침(좁은 의미의 회개), 믿음, 선행이 구원의 길에 해당하는 세 가지 요소이다. 이것이 구원의 서정의 논제들이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구원의 서정에서 루터는 초기에 절대 예정에서 출발했고 후기에도 이를 철회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멜랑흐톤은 절대 예정에 점차 이의를 제기하여 신입협력설의 입장을 취했다. 이 두 입장은 '일치신조'에 모두 반영되어 '은밀한 신인협력설'로 표현되었다"고도 했다.

칼빈의 초상화로 마르고 엄격한 모습의 다른 초상화들과는 달리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www.lloydjones.org

끝으로 이 연구원은 "'개혁신학의 구원의 서정은 모든 면에서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다'"며 "칼빈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른데, 사람은 믿음을 통해 선택을 의식하게 되나 영원한 작정으로서의 선택이 선행한다. 또한, 죄 용서는 믿음을 통해 주어지지만 그리스도에 기초한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연합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의 유익들을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거듭 반복된다"며 "개혁파와 루터파 사이에 존재하는 구원의 서정의 모든 차이는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는 "개혁파의 회개는 루터파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칼빈은 믿음에 앞선 회개를 잘 알고 있으나 그가 볼 때 이런 회개는 초기의 두려움이자 법적 회개이기 때문에 확실한 믿음에 도달하게 할 수 없다"며 "따라서 칼빈은 재세례파가 신앙의 초보자들에게 은혜의 교제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며칠 동안 먼저 회개할 것을 요구하는 교리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칼빈은 다른 종류의 회개를 강조하는데 믿음에서 흘러나오며 그리스도의 연합을 통해 일어나고 삶 전체를 통해 지속되는 죽임(mortificatio)과 살림(vivificatio)이다"고 설명하고 "교회 안에서 구원의 서정에 대한 다른 견해들이 등장했는데, 신비주의와 합리주의 그룹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바빙크 강독 세미나는 8월 둘째주 월요일부터는 3권 마지막 부분과 '개혁교의학' 4권 강독이 시작돼 약 2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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