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한국구세군] 구세군은 1865년 7월 2일 창립되었습니다. 당시 감리교 목사로 활동하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1829~1912)는 목사직을 사직하고 아내인 캐서린 부스(Catherine Mumford Booth, 1829~1890)와 함께 런던을 새로운 사역지로 정했습니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그곳에서 도시 전역을 순회하며 부흥집회 강사로 초청되어 인도하거나 런던에서 활동하던 복음전도단체들과 함께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부런던 특별봉사위원회의 초청으로 회이트채플(Whitechapel)에 있는 버려진 공동묘지에 세운 천막에서 첫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집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특별봉사위원회에서는 윌리엄부스에게 동부런던에 계속 남아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윌리엄 부스는 그 집회에서 가난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발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평생의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 위대한 사역을 위해 자신과 아내와 자녀들까지 온전히 드리기로 헌신하였습니다.

1865년 7월 2일의 커다란 감동과 영적 소명을 경험한 윌리엄 부스는 18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에 버려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거룩한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윌리엄 부스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회개한 많은 사람들을 가까운 교회로 보냈지만 그들은 그 곳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또 다시 거리로 나와 방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윌리엄 부스는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사역에 대한 필요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일을 위한 독립단체로서 '동부런던 기독교 부흥협회(The East London Christian Revival Society)'를 설립하였고, 1868년에는 '동부런던 기독교 선교회(East London Christian Mission)'로 개칭하였습니다. 1870년에는 이 선교회의 운영과 통치방식에 대한 규정을 채택하고, 1875년이되서야 비로소 선교회의 운영규정이 단독 날인증서 됨으로 선교회 조직을 온전히 갖추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역하는 윌리엄 부스

1878년 5월에 이르러서는 '동부런던 기독교선교회'라는 명칭이 선교회의 연례보고서와 제안서를 통해 '자원군(Volunteer army)'으로 개칭이 제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창립자 윌리엄부스는 '자원'이란 말을 '구원(salvation)'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1878년 8월에 열린 구세군대회(War Congress)에서 1875년에 작성한 날인증서를 파기하고 1878년 8월 7일 제정된 새로운 증서로 대체하기로 하고 선교회의 조직변경을 확정하였습니다. 이로서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란 명칭으로 1878년 8월 13일에 영국 대법원에 창립문서를 등기함으로 오늘의 구세군(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이 창립되었습니다. 1878년 9월호 '기독교선교회지'에는 '기독교선교회(East London Christian Mission)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불을 온 세계 곳곳에 전하기 위해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을 조직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세군은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 캐서린 부스를 공동 창립자로 기억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사진 및 그림 출처​ : http://www.scarboroughcitadel.ca/about/index.shtml, History of The Salvation Army

[출처] [구세군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작성자 한국구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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