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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목)

[박만규 설교] 이 성전을 허물어라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3. 05 17:11  |  수정 2018. 04. 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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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일과 출20:1-17, 고전 1:18-25, 요 2:13-22

대한기독교서회 상무 박만규 목사
대한기독교서회 상무 박만규 목사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에는 성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시내산과 시온산은 신앙으로 들어가는 두 출입구입니다.

출 19:1-민 10:10 장에서 보듯이 시내산은 야웨 하나님이 그 백성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이스라엘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파악하려면 오경의 시내산을 찾아가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대헌장인 십계명(출 20:1-17), 언약법전(출 20:22-23:33), 성막건축(출25-31), 제사법(레 1-7), 정결법(레 11-15), 성결법전(레 17-26장)등 이 모두 시내산 단락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의 고향은 시내산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시내산에 들어서야 했고, 이 땅을 거처 삼으신 하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모세가 오르내린 시내산은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성지순례자들은 기독교수도원이 있는 예벨무사와 동일시 하지만, 엄밀하게 말할 때 시내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학자 레벤슨은 사람들이 살 수 없는 하나님의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시내산은 이스라엘의 영토밖에 있고, 이스라엘의 일상이 닿지 않는 곳, 이스라엘의 역사가 침범할 수 없는 곳, 세상의 어떤 정치세력도 그 힘을 뻗칠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자유가 있는 땅이라고 말합니다.

시내산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가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신34:10) 서로 만났던 곳입니다. 모세 이후로는 그 누구도 시내에 올라 하나님과 대면하지 못합니다. BC9에 예언자 엘리야가 갈멜산의 격전을 치룬 후 호렙산에서 쫓기다시피 내려와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지만, 그 경험은 결코 모세의 것에 미치지 못합니다. 시내산 사건은 모세이후 그 누구에게도 되풀이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신비롭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이루어진 모세와 하나님의 만남은 하늘의 하나님이 이 땅의 시내산으로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중재자 삼아 시내산 위에서 이스라엘를 만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보기위해 무작정 산 위에 가까이 다가서면 안 되었습니다 (출 19:21) 모세가 하난미의 강림을 맞이하기 위해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와 산기슭에 섰지만(출19:17), 산위로 오름을 받은 자는 오직 모세뿐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이루어지는 이스라엘백성과 하나님과의 대면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내려오심과 모세의 올라감이 이루는 거룩한 만남을 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놓여있는, 결코 좁히지 못하는 거리가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거리를 좁혀서는 안 되고, 이스라엘은 누구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경계선 안에 들어 설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틀 안에서만 운신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언약을 맺은 이 순간 이후부터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이스라엘의 일상 속에서 다짐하고 지키는 규정과 법도로 묶이게 된 것입니다. 시내산에서의 언약체결은 이러한 새로운 관계를 여는 서막이기도 합니다.

즉 시내산에서 출애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님이 되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을 따르는 백성이 됩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배,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야웨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공동체가 됩니다.

출애굽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뿌리체험이라고 한다면, 시내산 언약은 두 번째 뿌리체험이고, 성막 건축은 세 번째 뿌리체험일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중재자로 삼으셔서 이스라엘과 정치 사회적인 관계를 맺으시고, 거기에 근거로 하여 하나님은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을 만나시고자 성막을 건축하게 하십니다. 나아가서 시내산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장막을 치고 머물러있는 시내산 아래로 내려와 거하려고 하십니다.(출 29:9,22)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자리에 성막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 본문의 십계명을 포함하여 시내산 언약이 전하는 하나님의 신앙은 크게 셋으로 정리됩니다. 1) 야훼 하나님은 다른 신과 비교할 수 없다 는 것이고 2)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님이시라는 것이고, 3) 야훼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세계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왕국이 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했습니다. 정치적 왕조가 되기 이전에 먼저 거룩한 나라가 되어야 하고, 사회공동체가 되기 이전에 먼저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왕을 세우기 이전에 먼저 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시내산은 바로 이스라엘 탄생의 정신적인 요람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을 조금 더 이해 해 볼 요량으로 민영진 목사님이 쓰신 출애굽기 주석을 살펴보았습니다. 보통의 주석가들이나, 설교자들은 제1계명인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를 다루고 있는데 반하여, 민 목사님은 메시지에서 '작업시간과 휴게시간'에 대해 말씀하셔서 좀 놀랬습니다. 근로자들을 위한 시간 관리에서 우리는 휴식의 중요성을 얼마만큼 중요하게 인정하는가? 쉬는 시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은, 어떤 노동도 침입할 수 없는 거룩한 시간이라는 것이 안식의 개념 속에 들어있고, 이런 생각의 기원이 창세기(창 2:2-3)로 소개합니다. 노동은 속되지만 휴식은 거룩하다고, 노동은 예사스러운 일상이지만 휴식은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 받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휴식은 노동을 위해 힘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며, 휴식과 안식은 삶 자체를 위한 날 이며 시간이기에 거룩하고 복되다는 것입니다. 근로자의 휴식을 이러한 차원까지 승화 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선언적 근거는 신명기 십계명의 안식일 준수에 대한 법정신(신5:15)입니다. 출애굽기의 안식일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이유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신 것과 관련하여 진술하십니다. 더 나아가 신명기의 안식일계명은 안식을 애굽에서의 노예생활, 거기에서의 강제노동, 거기로부터의 해방(출애굽)과 관련시켜 진술합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27일 주당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정안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휴일근로에 대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고 현행대로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광복절·삼일절 등 법정 공휴일을 유급 휴일로 지정해 민간부문 노동자들도 급여를 받고 쉴 수 있도록 하고, 무제한 노동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특례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법정 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면서도 휴일근로에 대한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을 '근로일'에서 제외해 토·일요일 8시간씩 16시간의 추가근로가 가능했습니다. 사실상 주당 법정 노동시간이 68시간이었던 셈입니다. 환노위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법제화한 것은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했다고 전합니다. 성전이 예루살렘에 자리 잡게 되면서 예루살렘의 성전 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시내산에서 시온으로' 이동하였음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시내산에 계시던 하나님이 시온산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신약본문은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과 한 덩이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성스러운 장소는 1,000년 전부터 나라의 중심부였습니다. 바빌로니아인들로부터 도시가 파괴된 이후, 6세기동안 성전 건축을 염원했습니다. 드디어 46년 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양한마리씩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속죄제물미여 여기에는 신자들의 개인적인 제물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멧비들기, 양, 수소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제사는 7,200명의 사제들이 4그룹으로 무리지어 매년 1주일동안 두 차례씩 성전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대축일(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참가 했습니다. 사제의 직책은 세습되었고, 사제들은 제사를 지내는 기간 외에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특히 음악과 노래를 담당한 9,600명의 레위족은 의식에서 일정한 역할 담당했습니다. 대제사장은 가장 중요한 의식에만 참가했습니다.

당시 성전은 권력과 물질의 중심이었고, 심각한 수준으로 상업화 되어있었습니다. 성전과 관계된 사람들은 부유했고, 성전도 상당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성전에서는 세금을 거뒀고, 장사와 환전이 성행했습니다. 성전이 한해동안 거둬들이는 성전수익은 상당했는데, 1990년경의 US$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00만 달러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성전은 유대당국과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었습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말씀에서 성전이 인간들의 이권을 위해 변질되고 제도화된 것에 대한 예수의 분노의 표현 일 것입니다.

'샌더스'에 의하면 예수의 성전정화 사건은 유월절 축제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입니다. 예수가 죄인들을 대상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이 유대당국을 불편하게는 했지만, 심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유대교의 갈등을 일으킨 결정적인 사건은 성전정화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집단적인 폭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군대가 개입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성전정화는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과격했을 것입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있어야하고, 더구나 짧은 심문이후 처형이 집행된 것으로 볼 때,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1세기 예루살렘 성전은 야훼를 만나는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야웨가 임한다고 믿는 오직 하나의 성전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이 야웨를 향하고 접견하는 곳이기 때문에 희생제의와 정결예식이 아주 강조되었습니다. 요한이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성전정화를 서두에 둔 것은 유대종파와 강한 충돌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오직 유대인을 위한 장소였고, 성전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주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막11:17)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선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철폐되었고,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의 말합니다. 예수의 성전정화는 성전이 모두에게 열려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에게 성전은 만민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성전은 인간의 조직과 제의가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은 율법에서 하나님의 뜻이 가려지고 율법이 인간의 관습과 계율이 되었을 때 분노했습니다. 예수의 활동에서 일관 된 것은 하나님의 현재하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 설교는 지난 2018년 3월 4일 '함께 하는 예배' 공동체 사순절 세 번째 주일예배 설교문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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