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친선선교협력회 사죄 예배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앞서 오후 5시 새에덴교회 7층에서 한일친선선교협력회 소속 홈마 타카히로 목사 강연이 있었다. 이어 28일 오후 8시 새에덴교회 3층 프로미스 홀에서는 3.1절 100주년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죄하는 예배순서가 이어졌다.

한일친선선교협력회 소속 20명의 일본 목사들이 참여해, ‘3.1절 100주년 기념 한일 사죄와 화해 선교 협력을 위한 예배’로 드려졌다. 이들을 대표해 올해 92살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한일친선선교협력회장)가 설교를 전했다.

반평생 일본 식민 통치에 대한 사죄운동을 해온 레이지 목사는 “29살 때 QT중 마태복음 5:23-24절을 읽고, 예배보다 우선되는 게 바로 형제와의 화해”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24)

이어 그는 “일본 크리스천들과 교회에게 예배 보다 우선되는 게 바로 화해”라며 “이러한 계기로, 사죄운동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일본 크리스천들과 교회가 대한민국과 중국에 자행한 식민 통치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게서 어떤 축복도 교회 성장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당시 그의 생각을 고백했다.

2년 뒤, 그는 “일본의 대표적 기독교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제암리 사건 현장을 방문해 사죄를 전하려 했다”고 밝혔다. 제암리 사건은 1919년 4월 15일, 일본 군인들이 제암리에 사는 15살 이상 기독교인 전원을 교회에 모이게 해, 교회를 불태워 몰살시킨 사건이었다. 제암리 사건 현장을 방문한 레이지 목사는 거기서 두 노인을 만나게 된다.

레이지 목사는 “당시 한 할머니는 제암리 사건 당시 신혼부부였는데, 그의 남편은 제암리 교회에 끌려가 죽임 당했다”며 “그 할머니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당시 상황을 말해주지 않으셨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그는 “또 다른 할머니는 성난 얼굴로 내게 찾아와 ‘일본인 따윈 다시 오지마, 정말 보기도 싫다’고 울부짖었다”고 밝혔다. 레이지 목사에 따르면, 그 할머니는 제암리 사건 당시 아버지와 남편이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제암리 교회에서 학살당했던 충격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고 했다.

한일친선선교협력회 사죄 예배
한일친선선교협력회장 오야마 레이지 목사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때문에 그는 “아무리 사죄를 해도 받아주시지 않던 그분들의 한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술회했다. 바로 그는 “제암리 뒷산 예배당에서 가서 기도를 했는데, 기도는 두 할머니들의 음성으로 인해 묵중한 책임감으로 짓눌러 왔다”고 회상했다. 곧바로 기도 중 들려왔던 하나님의 음성을 그는 전했다.

“제암리 사건은 일본 식민 통치의 36년간 잔학행위의 상징이다. 이 예배당을 일본인의 손에 재건하는 것이 최소한 보상의 상징이다”

따라서 그는 “교회 재건을 위해 일본에서 사죄 위원회를 발족시키려 했다”며 “당시 시간이 걸렸지만 71년에 사죄 위원회를 발족시켜, 기어코 1,000만 엔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일본 기독교인들의 사죄가 담긴 소중한 헌금 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후 그는 “제암리 사건 50주년이 되던 날, 제암리 교회 재건 기공식이 열려 나와 한명의 관계자는 헌금 전달을 위해 한국에 방문했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는 “당시 제암리 유족회는 나를 포함한 일본인 2명을 다방에 끌어다 감금시켰다”며 “유족회 사람들이 우리 방문을 반대했다”고 회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유족회 사람들은 1,000만엔 헌금을 유족에게 나눠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었다”고 덧붙였다. 겨우 유족들을 설득해 감금에서 풀려나온 일행들은 헌금을 재건된 제암리 교회에 전달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9월 초, 제암리 교회는 완공 됐고, 그는 “다른 사죄 위원회 위원과 함께 다시 찾았다”고 술회했다. 이윽고 제암리에 기차로 도달하기 위해 수원을 경유한 그들은 다시 유족과 만나게 된다. 레이지 목사는 “근데 그 사람이 우리를 만나자마자, ‘목사님 부디 작년일은 잊어버려 주십시오’라고 사과했다”며 “작년일은 다름 아닌 몇 시간 동안 우릴 다방에 감금했던 일 이었다”고 전했다.

레이지 목사에 의하면, 그 사람은 알고 보니 레이지 목사 일행을 다방에 감금해 심하게 호통 친 사람이었다. 레이지 목사는 “그는 수원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했던 사람”이라며 “우릴 심하게 호통 쳤던 그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됐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내 눈에서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고 회고했다.

결국 그는 재건된 제암리 교회당에 도착한 후, 유족의 집들을 일일이 방문해 사죄를 전했다. 그 와중에, 그는 “처음 제암리에 방문했을 때, ‘일본인 따윈 다시 오지마’라고 호통 친 할머니가 내게 다가왔다”며 “그 분은 내게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할머니는 내 손을 굳게 잡고, 한 마디 했다”며 “그 말은 다름 아닌 일본어로, ‘목사님, 감사 합니다’였다”고 회상했다. 이에 레이지 목사는 “‘꿈이 아닌가?’라며 내 눈을 의심했다”면서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올라와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한일친선선교협력회 사죄 예배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힘주어, 그는 “오직 하나님 이외에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라며 “내 마음에는 잠언 16:7이 울려 퍼졌다”고 전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화목케 하신다”(잠언 16:7)

끝으로 그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 각자는 화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여러분은 주님이 바라시는 화해를 곧장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무엇이든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쁘시는 일을 지금 하길 바란다”며 “그건 바로 화해이며, 그럴 때에 우리 하나님은 원수였던 그 사람과 화목케 하실 것”이라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화해가 이뤄질 때 신앙은 비약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여호와의 영광이 크게 나타나기에, 이를 진심으로 소망하자”고 역설했다.

오야마 레이지 목사의 설교가 마무리 된 후, 한일친선선교협력회 소속 20여명 목사들이 강단에서 사죄의 마음을 담아 용서를 구했다. 일본 식민 통치로 인해 상처받은 한국교회와 한국인들에게 사죄하기 위해, 일본 교회 지도자들은 무릎 꿇고 절했다.

이에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일본 교회 지도자들은 몇 년째 계속해서 교회를 방문해 사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이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라고 되물으며, 회중들을 향해 “일본 교회 지도자들의 사죄를 무겁게 받아들이자”며 자리에서 일어설 것을 촉구했다. 올해 92세 오야마 레이지 목사도 직접 무릎 꿇고 절하며,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진심어린 사죄로 회중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한일친선선교협력회 사죄 예배
한일친선선교협력회 소속 목사들이 사죄하고 있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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