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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요 관심사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성"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10. 05 06:46  |  수정 2018. 10. 0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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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카페지 전 애즈베리 신학대 교수, 제16회 카우프만 기념강좌 강연

앨런 카페지 교수
앨런 카페지 교수 ©서울신대 제공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서울신학대학교와 OMS 선교회는 16회 카우프만 기념강좌로 ‘웨슬리의 하나님 이해와 구원론’을 2일 오전 11시 성결인의 집에서 개최됐다. 이날 기념강좌 강사로 서울 신학대는 앨런 카페지 교수를 초청했다. 그는 애즈베리 신학대학에서 33년간 교수로 역임했고, OMS 국제 선교사로서 그루지야, 켄터키에서 목사로 사역했으며, 스코틀랜드, 영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역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초점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면서, 유일신을 믿는 유대와 이슬람교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는 “차이가 있다면 기독교 신앙에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성령이라는 삼위일체론으로 유일신 하나님의 성품은 더 풍성하고 완전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와 하나님과 관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독교 교회 역사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는 요한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우리가 예수를 ‘아버지의 독생자’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구체적으로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요 1:1, 14, 18)에서 나타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기에 그는 “예수는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이고 곧 하나님의 본성과 위격을 나타내는 열쇠”라며 “또한 사도행전에서 오순절 성령의 내려오심으로 사도들의 복음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성령은 하나님의 이해를 삼위일체의 방법으로 인도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삼위일체 개념은 신약에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드러나며, 이는 신약성서 기록자들이 예수와 하나님과 연결시킬 때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삼위일체는 예수와 아버지 관계에서 비롯되며, 예수는 누구이며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가 바로 복음 선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성육신과 그에 따르는 이야기는 삼위일체의 다른 두 위격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는 성부 하나님과 성령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성자 예수와 성령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삼위일체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를 드러내는 구절을 제시했다. 가령, 그는 “마태복음(1:20-23;28:19), 누가복음(1:35; 24:49), 요한복음(1:32-34; 20:21-22), 사도행전(1:3-5, 7-8; 28:23,25), 로마서(1:1-4; 15:30), 고린도후서(1:22; 13:14), 데살로니가전서(1:3-5; 5:18-19), 요한계시록(1:4-6; 22:17-18), 마가복음(1:10-11; 16:19[긴 결말]), 고린도전서(2:1-4; 15:57), 베드로전서(1:2; 5:10), 그리고 유다서(1:1; 1:20-21)가 포함된다”고 전했다. 덧붙여 그는 “삼위일체 중 특히 성부와 성자 간 관계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갈라디아서(1:3;6:7-8, 16-17), 에베소서(1:3; 6:23), 빌립보서(1:2; 4:19-20), 골로새서(1:2; 4:12), 데살로니가후서(1:2; 3:5), 디모데전서(1:2; 6:14-15), 디모데후서(1:2; 4:1), 디도서(1:4; 3:4-6), 히브리서(1:1-2; 13:20), 요한1서(1:3; 5:20), 요한2서(1:3; 1:19)가 포함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삼위일체 신학의 목적은 그 자체의 분석에 있지 않다“며 ”결국 ‘마28:19-20’처럼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의 명령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자 만들기는 마태가 언급 한 부활의 마지막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는 ”예수는 제자들을 만나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얻은 권위를 상기시키시고, 그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명령했다(마 28:19-20)“고 전했다. 이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평생의 사명인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이 도전은 12사도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제자에게 적용되는 기본원리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들이 평생에 지킬 명령에 우리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삼위일체 사고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구절을 힘입어 더욱 명료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세례 자체, 곧 성례전에 중심을 맞춘다면 문제가 발생 한다”며 “이는 활동적으로 제자 삼는 사역보다 예배의 상황에 제한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그는 “결국 삼위일체의 핵심은 관계성인 것처럼, 세례의 역할은 예수의 제자를 만드는 첫 부분이”라며 “세례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에 헌신하기로 결단할 때부터 관계는 시작 된다”고 설명했다.

하여, 그는 “결국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분이 그들을 자신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성령과 연결하여, 예수에 대한 헌신이 셋 모두에 대한 헌신을 포함하도록 한다”며 “이 접근법을 통해 우리는 세례가 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중요한 요소는 성례전의 형식이 아니라 제자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그는 “세례는 복음을 믿음으로 응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과 나 간 새롭게 수립된 관계성을 선언하는 의미를 지닌다(행 2:14-41)”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오직 세례로서 그 시작을 알린다”며 세례의 중요성을 희석시키지 않았다. 그는 “세례는 첫 관계가 수립됐다는 상징적 선언이자 동시에 예수와 12 제자들 간 관계의 시작에서부터 12명에 대한 훈련이 있었던 것처럼, 미래의 제자들에 대한 훈련이 있을 것을 선언 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훈련의 과정 속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와의 관계를 발전시킨 것처럼, 이 관계는 미래의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발전·적용될 것을 의미 한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분명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라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믿음으로 성장하기 까지 예수와 제자들과 관계는 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예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통해 아버지를 알게 되고,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성령을 알게 될 것을 가르치셨다“며 ”이는 결국 예수가 더 이상 육체로 계시지 않더라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속되는 관계“라는 삼위일체의 관계 부분을 전했다. 그래서 그는 “세례는 형식적인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며, 성서의 본문만도 아닌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배우는 전체 과정의 일부”라며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관계 안에서 나는 예수의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관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것은 단지 세례라는 수단을 통해 새로운 믿음을 증거 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고 따르는 지속적인 가르침과 훈련으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셋이심과 동시에 하나이심 안에서 교제를 나누는 열쇠는 바로 성결”이라고 전했다. 성결에 관해서는 구약과 신약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그는 설명했다. 우선 구약성서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결에 관해, 그는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결의 중요성은 시내산에서 시작된다”며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4-45)을 빌렸다. 이어 그는 “나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선언이 반복되는 출애굽기와 레위기는 모든 존재의 원천이신 하나님은 한분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하나님으로 스스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분의 ‘이름’을 계시하시면서, 하나님의 충만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곧 그분의 이름이 성결 그 자체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강조했다.

신약을 설명하면서, 그는 해리슨(E.F.Harrison)의 말을 빌려 “신약에서 성결이 덜 강조된 것은 옛 구약의 계약 아래서 강력하게 주어진 것이 근본전제라는 가정위에 설명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신약성서의 기록자들은 하나님의 성결을 예수를 통해 계시한다”고 전했다. 가령 그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도 장차 오실이시라”(계4:8)는 “특히 하나님의 성품은 전에도, 이제도, 장차도 성결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하나님의 존재 본질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그분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동일하시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구약성서에서 성결하다고 스스로를 계시하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신약성서의 끝에도 여전히 성결하시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도 반복적으로 예수를 ‘시편 16:10’을 인용하면서 ‘거룩한 분’으로 확인했다(행 2:27; 13:35)”며 “마찬가지로,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한 종으로 묘사하면서, 그분의 성결을 인정했다(행3:13-14; 4:26, 30)”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에 대해 언급하면서, 형용사 “성결함”은 구약에서 3번 이 분에게 붙여졌다(시 51:11; 사 63:10, 11)“며 ”그러나 적어도 91번 신약성서에서 발견되고, 지금까지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신약성서와 기독교 교회의 용어에서, 하나님의 영은 거의 모두 성령으로 언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며 ”삼위일체 하나님 간의 그 친밀함으로 인해, 성결의 본성을 세 분의 어느 이름에 붙여도 마땅하고 유일한 형용사“라고 전했다.

한편 행사는 두 차례에 나눠 열렸다. 2일 낮 서울신대 성결인의 집 존 토마스 홀에서 "존 웨슬리의 하나님 이해와 구원론"을 주제로, 또 5일 같은 시간에는 웨슬리 신학의 구원론에 대해서 앨런 카페지 교수가 강연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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