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 교수
류현모 교수

스티븐 슈바르츠는 말한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유신론과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은 단순한 두 가지의 신념이 아니다. 그것들은 존재 전체를 바라보는 두 가지 근본적인 방식이다. 그 존재 너머에 의미 있는 무엇이 더 있다는 것이 유신론이고, 그 존재 너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무신론이다.” 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존재론과 기원론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우주와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체와 사물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느냐의 질문은 당연히 그 존재의 시작은 언제, 어떻게 된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유신론에서 존재의 근원은 신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신이 창조함으로써 존재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존재의 저 너머에 초자연적 존재인 신이 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과학적 방법론 이라는 미명하에 초자연을 배제한다. 물질의 세계 너머 어떤 존재도 의미도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은 증명할 수 없기에 그것을 믿는 것에 대해 어린 아이들이 신화나 옛날 이야기의 귀신을 믿는 것처럼 취급하며 제발 철 좀 들라고 말한다.

서양의 전통적인 세계관이 기독교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과학의 패러다임도 창조론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뉴턴, 케플러, 파스퇴르 등 많은 기독교인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그분의 창조 원리를 찾아내기 위해 과학을 연구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과학계와 교황청의 불화 속에서 과학자들은 학문적 진리를 자유롭게 추구하기 위해 교황청의 종교적 권위주의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다.

이런 무신론적 과학주의자들의 필요를 채워 준 것이 1859년 다윈이 발표한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진화론이다. 다윈 이전에도 무신론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원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 없이 다양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이었고 무신론자들은 그들의 존재론과 기원론의 근거로서 다윈의 진화론을 적극 지지하게 되었다. 특히 칼 마르크스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자신의 변증법적 유물론에서의 사회변화(정-반-합)를 생물학의 진화론이 너무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그때 막 집필을 끝낸 자본론 1권을 헌정하고 싶다는 편지를 다윈에게 보내기까지 한다.

이처럼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서로 공명하면서 진화론의 저변을 확대 해 갔다. 이들이 학문후속 세대들을 포섭함에 따라 창조론의 패러다임은 무너지고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과학세계의 주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방법론에는 큰 함정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주의 기원, 지구의 기원,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에 해당한다. 과학적 방법론이란 직접 관찰 가능하든가, 실험실에서 같은 조건 아래에서 그 현상이 재현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대폭발에 의한 우주와 지구의 탄생, 진화에 의한 생명 탄생의 기원론은 아이러니하게 그들이 제시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관찰 혹은 재현할 수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네이드하르트는 모든 앎은 그 기반이 되는 믿음을 필요로 하며 믿음이 이성을 선행한다고 주장하였다. 진화론이나 창조론 모두 믿음을 기반으로 해석되고 발전해 나아간다. 믿음의 근거를 불확실한 가설에 두느냐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두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왜 이처럼 근거가 희박한 형이상학적 믿음인 진화론을 굳건하게 붙들며 창조론을 적극적으로 배척하는가? 먼저는 중세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종교적 권위로 과학의 발견을 묵살했던 기억 때문에 과학영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창조론을 의도적으로 배척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또 과학 발견을 통한 산업혁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자신감으로 영역주권 수호를 넘어 모든 학문분야를 지배하는 지위를 넘본다는 다른 관점이 있다. 이를 위해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자신들만의 무기를 사용하여 초자연을 논하는 신학이나 철학의 간섭을 배제하고 과학 지식을 권력화하기 위해 진화론의 패러다임을 힘을 다해 수호하고 있다.

과학은 ‘어떻게’ 라는 방법적인 측면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셨는지, 각 생물들이 어떻게 ‘종류대로’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과학책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심을 믿는 것은 “내가 천지를 창조했다.”라고 하시는 창세기 1:1의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믿는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성경에서 발견해내는 학문이다, 반면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서 창조의 원리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해내는 학문이다. 두 학문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연구하거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탐구하여 각각에 내재된 계시를 찾고 해석해 내는 일을 한다. 따라서 신학과 과학은 하나님 계시의 다른 측면을 다른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일 뿐 결코 서로 배타적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진화론이라는 정체가 불분명한 형이상학에 빼앗긴 존재론과 기원론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기독교 후속세대에게 유일한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과학적 논리의 굳건한 기반임을 가르쳐야 한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근거 없는 진화론에 휩쓸리려는 욕구를 억제하는 지혜의 근본임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학으로 무장된 학문 후속세대를 통해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무너질 그때를 기대한다.

묵상: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진화론이 주장하는 기원론에 반박하는 질문을 해 본적이 있는가? 어떤 질문이 정곡을 찌르는 것이 될까?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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