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월남시민문화연구소와 한국교회사학회, 한국시민문화학회가 공동으로 16일 오후 서울 YMCA 2층 대강당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기독교의 역할과 역사교과서 반영에 관한 진단 및 고찰'을 주제로 연합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한국사 교과서 기독교서술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주제로 발제한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는 한국사 교과서에 나타난 종교관련 서술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사회는 다종교사회라면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한국의 다양한 종교를 바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며 "하지만 현재의 역사 교과서를 분석해 보면 한국의 여러 종교 가운데 기독교에 관한 설명이 지나치게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오상아 기자

박명수 교수는 (주)미래엔(구 대한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2014년판)을 중심으로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분석했다. 이 교과서를 택한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미래엔 교과서는 2014년도 사용 중인 8종의 한국사 교과서 중의 하나로서 전국 1747개의 고등학교 중 553개교가 사용하여 채택율 31.7%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미래엔 교과서는 교육부로부터 가장 적게 수정권고를 받았으며, 이념 논쟁에서도 별로 이슈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들었다.

박 교수는 2014년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에 나타난 천주교와 기독교(개신교) 서술을 비교했다.

(천주교) "천주교, 서학에서 신앙으로 받아들이다.

서학이란 이름으로 불린 천주교는 17세기 경 베이징을 왕래하던 사신에 의해서 서양문물의 하나로 소개되었다. 학문적 호기심에서 연구하던 서학은 18세기 후반 현실 개혁을 꿈꾸던 남인 계열의 일부 실학자에 의해서 점차 신앙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은 천주교 서적을 읽고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천주교는 모든 인간이 천주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과 내세의 영생을 약속하는 교리를 앞세워,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며 점차 민간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천주교신자가 제사를 거부하고 조상의 신주를 없애는 사건이 일어나자, 정부는 유교적 질서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천주교를 박해하였다. 순조 때 권력을 잡은 노론 강경파가 많은 천주교신자를 처형하였다(신유박해, 1801). 또한 백서 사건등을 계기로 천주교가 서양의 침략과 연결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천주교는 백성사이에서 활발하게 전파되어, 조선 교구가 설정되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였다.(160)"

(기독교) "종교계에 부는 바람

천주교는 조선에서 18세기 말 무렵 신앙활동이 시작되었고, 개신교는 미국과의 수교 이후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차츰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들 종교는 선교과정에서 민중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근대교육발전과 서양의술보급, 양성평등의식 전파 등에 기여하였다.(232)"

박명수 교수는 "천주교는 독립된 항목으로 기원, 사상, 박해, 전파가 소개됐으나 기독교는 다른 종교를 설명하면서 아주 간략하게 설명했다"고 비교하며 "이같은 경향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교과서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설명이 역사교과서에 소홀하게 취급된 이유에 대해 2011년 12월 전까지는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기준이 '개항이후의 종교에 관해서는 특정종교에 편향이 없이 서술'하도록 되어 있던 것 때문이라며 집필기준 개정의 요청 결과 그 이후에는 '개항 이후의 종교에 관해서는 기독교의 수용과정을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서술방식은 이미 한국사 개론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다"며 "서울대학교 한우근 교수의 '한국통사'에 의하면 근대사회의 종교를 천도교와 개신교로 설명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어져 왔던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은 개항 이후의 종교활동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약 3분의 2(37줄 중 24줄)를 개신교에 관해서 설명하고, 그 나머지 분량을 다른 종교에 할애하고 있다. 또한 진보사학자로 불리는 강만길 교수의 '한국 근대사'는 근대한국의 종교를 전통종교의 변화와 개신교 운동으로 나누어서 개신교의 시작과 발전을 중요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한국기독교는 2014년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새로운 집필기준을 반영해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을 기대했지만 이 같은 기대는 실망으로 끝났다"며 "2014년 한국사교과서는 과거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박명수 교수는 '한국 기독교가 바라는 한국사 교과서에 포함되어야 할 기독교 서술'에 대해 제시하며 '서술 항목'에 있어 "현재의 모든 교과서에 주요 종교가 항목으로 등장하지만 기독교의 경우만 항목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며 "'개항 이후 기독교의 수용과 종교의 변화'라고 해야 집필기준의 의도와 일치하는 것이다"고 했다.

또 '서술 순서'에 있어 "개항 이후 종교의 변화를 주도한 것이 1882년 한미수교 이후 시작된 기독교의 유입이다. 따라서 개항 이후 종교 서술에 있어서 역사적으로나, 중요성으로나 기독교를 먼저 서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현재는 서술 순서가 제 각각이다. 8종의 역사교과서 가운데 기독교를 먼저 언급한 교과서가 교학사, 천재교육, 지학사이며 천주교로부터 설명하는 교과서는 비상교육, 두산동아, 미래엔, 리베르 스쿨, 금성출판사가 있다. 많은 교과서가 천주교의 종교자유(1886)를 언급한 다음에 기독교의 수용을 서술하여 학생들에게 역사적인 순서를 혼돈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서술 분량'에 있어서도 다른 주요 종교와 비슷한 분량으로 서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교, 유교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후기의 천주교와 동학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기술했다"며 "개항 이후 종교를 설명함에 있어서 기독교에 관한 부분을 전체의 반 정도, 즉 과거 천주교나 동학에 합당한 분량을 할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독교 항복에 들어가야 할 주요 내용'으로는 '기독교의 출발' , '미국 선교사의 입국', '전파 과정', '역사적 의의', '정착' 을 제시했다.

월남시민문화연구소 한국교회사학회 한국시민문화학회가 주관한 연합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오상아 기자

박명수 교수는 참고적으로 한국교회사학회에서 바람직한 기독교서술 예시로 각 출판사에 제시했던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개항 이후 기독교의 수용

기독교는 1870년대 중반부터 만주에 나가있던 상인들이 이곳에 와 있던 서양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여 1879년 백홍준을 비롯한 4명의 최초 세례자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882년 미국과 수교 후에 일본에 가 있던 유학생들이 이곳 서양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한국선교를 요청한 결과 알렌(1884), 언더우드, 아펜젤러(1985)등 미국 선교사들이 입국한 다음이다. 기독교 선교는 복음을 전하려는 선교사들의 바람과 서양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정부의 노력이 결합되어 가능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의료와 교육사업을 주로 하다가 청일 전쟁과 갑오경장 이후 개화를 바라는 지식층과 서민/여성층에 급속히 전파되었으며, 자주독립 정신과 근대시민의식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1900년대 초, 일본의 침략 때문에 의지할 곳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귀의하였고, 1907년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큰 부흥운동이 일어나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한편 이날은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기독교의 역할과 역사교과서 반영에 관한 진단 및 고찰'(이은선 교수, 안영대 기독교문화학과), '기독교가 한국 근현대사에 끼친 영향- 한국 정치, 사상적 계보를 중심으로'(김명구 박사,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상임연구원) 발제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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