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오늘날 2만 7천 여명의 한국선교사 중 2천8백 여 명(10.43%)이 중동,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서 사역, 그 지역의 전방개척 선교사까지 합하면 6천7백 여 명(25%) 한국선교사가 무슬림 지역에서 선교하고 있다(강승삼, “무슬림 선교 어떻게 할 것인가?” 한복협 9월 월례발표회, 신촌성결교회, 월례발표회자료집, 5-8). 지금 중동은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Islam State)에 의하여 소수파(10%)인 시아파와 전쟁을 벌리고 있으며, 무슬림권의 절대 다수(90%)를 차지하는 수니파 전체를 결집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리안 난민 등 천만 명의 이재민들이 유럽에까지 이동하여 유럽국가의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키고 있다.

1. 유럽에서 일어난 무슬림 이민자들 후예에 의한 사회 갈등과 테러 연계

지난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 도심에 있는 시사 풍자(諷刺)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무장 괴한 4명이 들어와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기자와 만화가, 직원, 경찰관들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당하는, 최악의 언론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프랑스 테러는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은 것이 원인이 됐다. 지난 11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등 세계 50개국 정상과 100만명의 "테러에 굴복 않겠다"는 '파리 행진'이 있었다. 파리 시민들과 유럽 전역의 시민들은 ‘샤를리 에브도’라는 이 풍자 주간지의 이름을 따 “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만평작가들은 테러를 비난하는 만평을 내놓았다.(샬롬나비, 샤를리 언론사 테러 규탄 성명서, 이슬람 극단주의는 자유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샤를리’ 언론사에 대한 야만적인 테러를 규탄한다. 2015년 1월 16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오늘날 프랑스의 파리, 미국의 뉴욕, 영국의 런던, 독일의 도시 등에서 일어난 테러사건들은 모두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하여 일어난 것들이다. 이들은 이미 부모 세대가 유럽 각 나라로 이민 와서 시민권을 갖고 뿌리를 내려 이미 수적으로 발언권을 가지게 된 자들이다. 이들은 주류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 사회적 케토(슬럼화)를 형성하고 있다. 어느 인종이든지 그 지역의 5%만 되면 발언권을 행사하는데 특히 이슬람이 유럽 사회에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것의 전형적 예가 이번 프랑스 샤를리 언론 테러사건이다. 한국 정부는 동남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을 받되 이슬람권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선발을 하는 등 이주노동자들의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2. 무슬림 노동자들의 이주에 대한 정책적 제한

무슬림 노동자 및 무슬림 인구의 국내 이주를 정책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오늘날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에서 일어난 무슬림 원리주의자의 테러가 이 나라에 이주해온 무슬림 후예인 것인 감안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기독교나 다른 아시아 종교를 수용하지 않는 한 이들의 이주에 대하여 제한을 주는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무슬림 인구가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처럼 게토화되는 것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그리하여 무슬림이 한국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가급적 방지하기 위하여 한국 여성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3. 국내 무슬림 전도

통계적으로는 한국 내에 2014년 현재 10만 여명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정마태, 무슬림 선교 어떻게 할 것인가? 한복협 9월 월례발표회, 신촌성결교회, 월례발표회자료집, 22). 한국교회는 이들에 대한 우호적 관계를 가지고 이들의 사회적 처지의 어려움을 돌고 영적으로 이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새기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실제적으로는 국내 체류 무슬림은 총 2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중 해외에서 온 이주 무슬림은 국내 외국인 175만 6천 여 명 중 14만 3천5백 여 명이다. 이 외 불법체류 무슬림이 2만 천 여 명, 한국인 무슬림이 3만 5천 여 명이다. 이슬람권 여성은 다산모(多産母)로 아이를 평균 여섯 낳는다. 반면 유럽 여성은 둘 미만이다. 한쪽은 '단순 재생산'조차 유지하지 못하는데 한쪽은 세 배씩 늘어난다. 비혼(非婚)인 채로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출산은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에서 태어나는 아이 25%는 무슬림 자녀이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20~30년 후 유럽은 자연스럽게 이슬람 세계가 된다. 포교로는 번식을 못 이긴다. 따라서 이슬람권 이주 노동자들의 한국 이주(移住)수(數)와 국적 취득에 대하여 한국 정부는 100년 대계를 보는 정책적 결정이 있어야 한다. 무슬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무슬림이 약 70%, 종교적인 무슬림이 약 15%, 원리주의 무슬림이 약 15% 정도라 할 수 있다. 일반적 무슬림이나 종교적 무슬림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보듯이 사회적 고립 등 여건이 달라지면 원리주의 무슬림이 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오늘날 영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일어난 사회적 소요사태, 특히 프랑스 샤를리 언론 테러 사건과 이러한 무슬림의 이주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4. 일반적인 무슬림은 원리주의자와는 구별해야 한다.

종교적 극단주의는 어떤 종교의 이름으로든 용납될 수 없다. 진정한 종교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자기의 종교에 대한 확신을 가지나 다른 편으로는 자기와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갖는다. 관용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종교들이 공존하는 존재방식이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종교적 극단주의로서 문화적 이슬람교와는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종교적 극단주의는 한국에서도 폭력적은 아니지만 기독교 보수주의 안에 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극단주의의 한 특징이란 타종교를 비방하고 사단 내지 이단시하는 태도이다. WCC 대회나 천주교 교황 방한에 대해 규탄하는 태도에서 이러한 종교적 극단주의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태도는 참 종교가 아닌 광신적이고 반종교적이고 반문명적 태도로서 용납될 수 없다. 무슬림은 우리의 선교대상이다. 문화적 무슬림 까지 적대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하나님 구속 언약에 포함되어 있다.

5. 종교적인 무슬림에 대하여 관용적으로 대화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 19:23-25). 이사야 예언에서 애굽, 앗수르도 하나님의 언약에 포함되어 있다.

6. 한국교회는 이슬람(종교, 문화, 사회적 행태, 원리주의)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해야 한다.

과거 중동도 이슬람에 정복되기 전까지 4세기 동안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으나 지금은 90% 이상이 이슬람화 되었고, 유럽도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기독교가 꽃을 피웠지만 지금은 이슬람화되고 있다. 지난 1월 18일 국내 무슬림 4백여 명은 서울 이태원에서 거리행진을 했다. 서울에서는 처음 열린 '무함마드 탄생' 기념행진이었다. 이날 행진은 프랑스 파리 테러, 한국인 십 대인 김모 군의 IS 자진 가담 보도 후 민감한 시점에서 이슬람 반대 여론을 의식하여 강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입니다”라고 피켓을 들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아야 할 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슬람의 코란이 지니고 있는 비이슬람에 대한 테러와 폭력 허용성이 이러한 지하드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본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말은 이슬람의 세계관과 관계되어 나온 것이다. 이슬람 세계관에 의하면 이슬람은 '평화의 집'과 '전쟁의 집'으로 양분된다. 평화의 집에는 이슬람의 신인 알라를 믿는 무슬림만 살 수 있고, 무슬림 이외의 사람은 모두 전쟁의 집에 살게 된다. 곧 이슬람을 믿으면 평화의 집에서 살 수 있지만, 무슬림 외의 사람은 전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슬람 지역의 빈번한 테러, 폭력, 타종교에 대한 핍박 소식을 들으며 이슬람이 정말 평화의 종교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일반 이슬람의 주장에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슬람 지역에 선교사만 보내기에 앞서 국내에 있는 이슬람인 선교에 힘을 기울이고, 기존하고 있는 이슬람 연구센터에 집중적 지원을 하여, 이슬람의 정체를 알림으로써 이슬람교의 한국공략에 대하여 만반의 방어와 대응을 해야할 것이다.

맺음말

우리의 전통종교의 일부인 불교나 유교와는 달리 이슬람은 우리에게 지리적으로 동북아에서는 너무나 멀고 문화적으로도 생소하다. 이슬람은 2001년 이슬람 원리주자들이 미국 뉴욕 쌍둥이 건물을 자살테러 함으로써 21세기와 더불어 세계사에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이라크 전쟁, 아프카니스탄 전쟁, 중동의 민주화운동, 시리아 난민, 수니파 무장단체 IS의 등장, 한국의 젊은이도 이에 가담 등으로 인해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리고 한국에는 노동력 부족으로 동남아 무슬림 근로자들이 꾸준히 입국하고 있으며, 한국에 20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러한 우리 가운데 거주하는 무슬림들에 대하여 종교로서의 이슬람과 문화에 관한 관심과 관용적 태도를 가지고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슬람의 정체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이슬람(종교, 문화, 사회적 행태, 원리주의)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해야 한다.

/기독교학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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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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