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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9 (금)

[평화칼럼] 평화통일은 우리의 소원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6. 12. 02 06:15  |  수정 2016. 12. 02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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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섭 교수(인천대학교, 평통연대 운영위원)
김홍섭 교수(인천대학교, 평통연대 운영위원)

젊은 시절 부르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잘 들리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조금씩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도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데서 오는 염려나 배려에서 연유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평화통일은 우리 시대에 주어진 민족적ㆍ역사적 사명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 실현이라는 궁극적 가치에 부합되는 것이다. 우리의 많은 구조적 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분단에서 오고 있으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골이 깊어지고 상처는 심하게 된다. 민족분단의 현실로부터 야기되는 전쟁과 무력충돌은 물론 그로 인한 비인간화, 비민주화, 정치적 억압,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차별 및 생태계의 파괴 등을 고려할 때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는 하나님과 민족 앞에 죄악이라 할 수 있다.

통일에 대한 분열된 양상은 우리사회와 교회에도 상존한다. 그래서 이 땅의 통일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과 그 대답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시는가?”란 질문과 “하나님은 이 땅의 통일을 원하신다”란 대답이다. 에서와 야곱의 만남을 원하시며(창33:3~4), 형제와의 화목이 제사보다 선행되기를 원하시며(마5:23~24), 만물의 통일을 원하시는(엡2:4) 하나님이시다.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가 기도하고 준비할 일이 많다. 먼저, 이 땅의 평화복음통일을 위해 통일신학의 정립이 필요하다. 보수와 진보로 대표되는 이 땅의 기독교는 본래의 예수님의 복음과 정신에 얼마나 충실히 기초하며 이 땅의 역사와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성찰하고 바른 통일신학을 세우고 펼쳐야 한다. 한민족의 통일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지향하지 않으며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나라 신학으로서의 평화통일신학은 한국교회의 상황을 토대로 태동되고 발전되지만 동시에 세계교회와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전개될 필요가 있다. 평화통일신학은 통일의 방법과 목표를 평화로 규정하며 그 어떤 폭력도 반대한다. 분단신학이 남자와 여자, 인간과 자연, 인종/계급 차별, 지배와 피지배 등 우주의 본성을 나누어 가는 신학이라면, 통일신학은 이렇게 갈라지고 나뉘어진 세상을 부등켜 안고 하나 되도록 하는 신학을 말한다. 지배자․ 기득권자의 신학이 대체로 ‘분단신학’의 모양을 띤다. 분단 신학이 히틀러 등의 광기를 정당화해 주었고,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스페인의 식민 착취를 고무했으며, 미국의 인디언 대학살과 흑인 노예 혹사를 미화하는 구실을 맡았다.

통일신학은 한국적인 상황과 역사를 이해하고 분단으로 오는 갈등과 모순 및 억압을 해소하며 하나되고, 하나님 창조원리로 돌아오게 하는 신학이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민족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은 참회와 용서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으며, 화해는 참회와 용서의 신학을 전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평화통일신학의 이념은 정의로운 평화와 화해와 치유 및 용서, 이웃사랑과 원수사랑 그리고 생명공동체를 지향한다.

다음으로, 남북의 정치, 경제적 문제와 상호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를 주름잡던 우리민족의 고대, 중세 및 근현대 역사에 대한 바른 정립도 필요하다. 험난한 통일이란 고지에 다가갈 가장 확실한 길은 경제적 남북교류의 지속과 확대이다. 남북교류의 필요성은 다음의 이유에서 절실하다.

첫째, 경색된 정치,군사적 긴장의 완화이다. 동서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정치와 경제,사회를 분리하여 교류를 지속하는 것은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한다. 둘째, 대북 경제,사회적 영향력의 확대이다. 북한의 총GDP에서 우리와의 교역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갈수록 북한의 대남 의존도가 커지고, 동시에 우리의 영향력이 점증하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셋째, 북한 주민에 대한 심리적, 정서적 신뢰와 영향력의 증대이다. 넷째, 통일 비용의 저감과 원활한 평화통일의 정착이다. 남북한의 현격한 SOC 등의 사회기반시설과 경제수준의 차이는 통일과 안정적인 통일 정착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다섯째, 민족애와 민족 미래를 위한 투자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의 교류를 통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와 학습은 중요한 통일의 밑거름이 되며 향후 세계에 웅비할 통일 대한민국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통일의 기회와 편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심대하다. 첫째, 신학과 신앙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이 땅에 실현하는 기초를 놓는 일이며, 북한 백성에게 참 복음의 전도와 선교를 실현하는 일이다. 둘째, 역사적 관점에서 민족의 자존과 자긍심을 세우며 반만년 역사속에서 통일된 민족정기의 발현의 기회를 갖는다. 셋째, 정치적으로 동아시아와 세계의 정치지형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며, 민주주의의 확장과 지역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넷째, 경제적으로 남북한의 불균형 해소와 자원과 인적자원, 자본의 통합과 분업을 통한 놀라운 경제성, 효율성의 실현을 가능케 하며,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이산가족의 슬픔과 해원의 길을 열며, 달라진 언어 풍습들의 회복과 동질화를 통해 진정한 민족화합의 길을 여는 큰 의미를 갖는다.

평화복음통일은 우리의 소원이며 민족의 과업이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며 양들로 풍성히 누리기를 원하신다’(요10:10) 그리고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고 말씀하신다. 화해와 소통과 교류를 통한 이해와 신뢰의 증진은 평화통일의 출발점이다. 남북간에 맺어진 공동선언과 정신들이 지켜지며 상호신뢰를 확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독일 통일은 정당과 정파의 이해를 떠나 민족과 참 믿음과 신앙의 차원에서 통일정책이 결정되고 일관되게 시행되야 함을 교훈한다.

/글·사진=평통기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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