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통일교대책협의회(이하 통대협)는 최근 통일교 척결을 위한 특별기도회와 故 박준철 목사 10주기 추모예배를 드렸다. 

故 박준철 목사는 31년간 통일교에 교역자로 활동해 오다가 2001년 1월 9일에 통일교를 탈퇴한 이후, 문선명 집단의 비리를 폭로하다가 2003년 1월 23일 '한국기독교 통일교대책협의회'를 창립했다.

이후 그는 통일교제품 불매운동, 2003년 피스컵 축구대회 저지운동, 문선명집단의 가정당 창당 저지운동, 용평스키장 반대운동, 여수 관광단지 저지운동, 순결교육, 순결캔디 저지운동 등을 주도하는 등 통일교 비진리성을 알리는데 헌신해 왔다.

통대협 측은 "이번 기도회와 추모예배에서 통대협 창립자 故 박준철 목사가 생전에 보도한 방송보도 내용과 활동했던 사진을 통해 통일교 척결을 위해 싸우다 소천한 故 박준철 목사를 추모하며, 통일교 척결에 모범을 보였던 박 목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분발해 통일교 척결활동에 더욱 주력하고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고 전했다.

또 통대협은 "故 박준철 목사가 2004년 7월까지 기독교 방송, 언론사 50여곳 등에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등 비진리성 및 비리폭로 관한 내용을 2000여회 언론 보도를 추진한 결과 2000년도에 45만쌍에 이르던 통일교의 합동결혼식은 2001년 3만 5천쌍, 2002년 3천 5백쌍, 2003년 3500쌍에 이르기까지 100분의 1로 축소됐다"고 전했다.

통대협 사무총장과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전문위원, 한국교회언론회 이단사이비 조사 연구위원(방송․언론)으로 활동한 故 박준철 목사는 과천 통일교 현직목사로 시무 중이던 2001년 1월 9일 통일교를 탈퇴하고 문선명 집단의 비리폭로 기자회견 후 가족전체가 탈퇴했다.

故 박 목사는 문선명 집단과 2002년 1월 16일에 민사재판에서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통일교 비리폭로 저서) 최초로 승소했으나 형사재판은 2004년 7월 12일 19번째 최후 재판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무효처리 되었다.

또 故 박준철 목사의 딸로서 통대협 간사로 12년 동안 헌신했던 故 박정아 목사가 만 33세의 삶을 끝으로 소천했다. 故 박정아 목사는 11년전 불치의 루푸스라는 자가면역질환을 얻어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은혜로 11년을 병원 입원도 없이 약만을 먹으면서 어머니인 이영선 사무총장을 도와 통대협의 살림꾼으로서 맡은바 책무를 다해 왔다.

  ©통대협

올 초 체력이 떨어지고 루푸스에 의한 합병증이 심해지면서 6월 16일부터 입원치료를 받던 중 갑작스런 폐출혈의 발생으로 6월 26일 중환자실에 들어간지 20일 만인 7월 16일 오전 5시 20분에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평소 통일교 척결에 의지가 강했던 故 박정아 목사는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신체상태에서도 본인이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이영선 사무총장을 도와 활동해 왔다.

10년 전 아버지 故 박준철 목사의 소천일과 불과 4일 차이로 부르심을 받은 故 박정아 목사의 장례식은 박준철 목사와 동일한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10호실에서 진행됐고, 장지도 역시 같은 충북 음성 대지공원에 마련됐다. 발인예배는 7월 18일 오전 9:30에 통대협 대표회장 최재우 목사의 인도로 진행됐으며, 설교는 문원순 목사, 축도는 길자연 목사가 했다. 또 하관 예배는 남윤석 목사가 주관했다.

故 박정아 목사는 故 박준철 목사의 소천 후 이영선 목사와 함께 2007년 한기총 가맹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보수총회 산하 서울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다만 나이가 어린 관계로 목사라 부르지 않고 통대협 간사활동을 해 왔었다. 유족인 이영선 사무총장은 "장례에 신경 써주신 모든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하고 "故 박준철 목사와 故 박정아 목사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게 더욱더 열심히 통대협 활동을 해 통일교 척결에 앞장설 것"이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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