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게 한 패역한 행위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론은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데 기여한 자이면서도 우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 게 한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간 하나님의 응답도 없고 모세도 보이지 않자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보이지 않는 분이시며 (골1:15) 사람이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딤전 6:16) 실로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바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 하시는 하나님과 그 분의 약속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기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4)”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9)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 함이니라 (고후 4: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변질 시키고 방탕과 게으름과 먹고 마시는 육신의 요구를 채워주는 맘몬 재물의 신을 원했던 것입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는 피조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롬1:22)

오늘날 수많은 종교 단체가 근본적인 사함의 진리를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기복주의와 신비주의 신앙으로 변질시키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었던 금송아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현실에 맞게 변질된 신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9)거룩한 하나님의 계명들을 ‘우리가 다 행 하리이다. (출 19:8)고 자신만만 했던 그들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거짓 되고 연약한 존재인가를 실제로 증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5:24)왜냐하면 인간의 맹세와 약속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들의 마음은 애굽을 향해 있었습니다. (눅 12:31)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 제사장인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게 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숭배하게 하려는 사단의 속셈인 것입니다. 사단은 결코 알곡이 없는 곳에 가라지를 뿌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 시키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망각했습니다.

(행 7:39) 우리를 세상에서 인도 하여 낸 신은 처음부터 오직 하나님 한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가장 큰 불신앙의 죄는 눈에 보이는 것을 찾는 것이요 가장 큰 모독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썩어 질 피조물 우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1, 보이는 신

인간은 본래 보이지 않는 것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생각 하면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어 그것으로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인간은 본성 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에 신앙심을 갖기 힘든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해 인간은 조급합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산 위에서 지체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모세를 기다리지 않고 우상을 만든 행위는 인간의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은 우상을 만들기 쉬운 존재입니다 ‘우리를 인도할 신 곧 명성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그들의 명성을 얻게 해줄 우상을 만들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이를 테면 과학자들 예술가들 또는 조각가들에게 있어서는 우상은 바로 그들의 작품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보고 “이는 ...너희 신이로다 ”라고 말했듯이 그들은 자기들의 작품을 절대화 시키는 어리석음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금송아지는 잘못된 안내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에 불안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장래를 맡길 수 있는 안내자를 바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금송아지가 그들을 안내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나의 미래를 물질에게 맡기는 잘못된 안내자를 구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황금은 결코 나의 미래를 위탁 할 수 있는 안내자는 되지 못합니다.

1912년 4월 14일 당시 최고의 여객선 타이타닉 (titanic) 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한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그 중 많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보트로 구출 할 수 있는 사람 중 두 여자가 자기 선실로 돌아갔는데 한사람은 성경을 가지러 갔으며 한 여자는 잊어버리고 나온 보석 상자를 가지러간 것입니다.

이 여자가 시간을 많이 소비하여 구출 보트를 놓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

이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그렇게 까지 물질에 욕심은 없다고 생각 할지 모르나 정도의 차이는 이 여자는 이 보석상자만 가져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선실에 흩어져 있는 돈이나 보석들을 많이 찾아내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다 침몰 당하고만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 정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큼 강하게 물질에 의존하여 있음은 나 자신과 하나님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질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기는 하나님의 위치에 물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 문제의 초점이 있습니다.

즉 신앙의 대상이나 나의 장내를 맡길 수 있는 대상이나 나의 인생관이나 나의 목적이 될 수 있는 대상 나의 장래를 맡길 수 있는 대상이 물질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말입니다

2,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

인간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황금의 송아지를 섬길 것인지 그 황금을 창조한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선택 은 하나만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에는 두 가지 대조적인 사건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대조적 사건이란 올라가는 운동과 내려가는 운동입니다

(1) 올라가는 운동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곧 영적 운동입니다.

심령과 몸이 올라가는 것이니 이러한 운동이 출애굽 전체를 좌우했고 이 운동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올라간 순종의 운동 이었고 말씀을 받으려고 올라가는 말씀 운동이었고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는 기도의 운동이었습니다.

(출 19장)

(2) 내려가는 운동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세속으로 물드는 운동이요 마침내 금송아지를 섬기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는 운동이니 올라가는 가나안을 향한 운동과는 대조적인 운동입니다.

이 들의 근본적인 방향은 가나안 행이지만 그들은 동시에 때때로 애굽에 내려가려는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위와 같은 운동이 전개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백하기를 원하는바 선은 (가나안으로 향한 성향)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애굽으로 향하는 성향) 하는도다. (롬 7:19)올라가는 성향의 클라이막스는 십계명이고 내려가는 운동의 극치는 금송아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올라가는 운동에 참여하는 자는 적고 내려가는 운동에 참여하는 자는 많다는 사실 입니다.

그러면 내려가는 운동에 참여 한자는 불신자 였습니까? 아닙니다. 금송아지는 불신자가 아니요 그들은 홍해를 건넜던 자들 이었고 말씀을 받은 자들이었음에 오늘의 많은 성도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줍니다.

3, 현대의 금송아지

오늘도 이 땅에 있는 교회 가운데는 두 가지 타입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 타입의 교회요 또 하나는 아론 타입의 교회입니다. 모세 타입의 교회는 산위에 있는 교회로 인내하고 고요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교회요 예언자적 입장에서 있는 교회입니다

반대로 아론 타입의 교회는 산 위에는 올라가 보지 못하고 산 아래 속에 파묻힌 교회요 현재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조급해 하는 교회요 샤머니즘 기복 신앙의 교회입니다.

오늘의 교회를 엄격한 의미에서 따져 볼 때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은 교회가 별로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화려한 예배당 외식제도 철학 과학 이것으로 만족해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입니다. 그들은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뛰 놀았습니다 (6절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자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는 자는 어두움의 왕으로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과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느냐 마귀 사탄을 따르느냐에 그 중립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그들의 결단을 요구 할 때 과감하게 돌아서는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세상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는 과감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결정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종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하나님을 요구합니다. 썩어질 것을 위하여 투자 합니다 육의 향연을 즐깁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송아지 우상 앞에서 뛰놀았습니다.(6절 )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썩어질 육체적 욕망과 향연에 심취하는 개인과 집단은 반드시 여호와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편입니까. 오늘 택하는 결단을 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선규목사 #출애굽기특강 #출애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