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본문에는 모세의 중보 기도로 전멸을 면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회개하는 모습이 언 굽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곧은 백성임을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에몸의 단정을 제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또한 모세는 진박에 있는 회막에 나아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총(恩寵)이라는 말입니다. 모두 다섯 번이나 등장 합니다 이는 지금 까지는 볼 수 없었던 말씀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모세가 기도한 것은 다름 아닌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뜻을 돌이키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은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하십니다.

1,하나님의 동행 거부 (1절)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출 32:34)그렇지만 그로 인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어색한 관계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루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가 진멸 당할까? 함이니라. (3)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가 인도하여낸 내 백성이라 하지 않고 너와 네 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백성이라는 말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 가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론이 금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들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너희 신 들이라 (32:4)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동행하여 주심은 모세가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 이니니이까?

(16) 말한 대로 최대 최고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총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 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복된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러 하지를 못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은 단순한 실수가 아나 었습니다. 이것은 그들 본마음이 자연스럽게 표현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은 올라가시지 않고 오직 그들이 원하는 것만 가지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러나 기쁨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조상들에게 이미 명령 하셨기에 그것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 들과 함께 가시는 것이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짐이 될 것임을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말씀 가운데서도 마음 아파하고 심히 애통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축복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표시로 모든 단장품을 제거해 버리게 됩니다. 여기 단장품은 장신구를 말하는 것인데 우상을 섬기면서 남겨둔 장식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후에도 옛 유전 바벨론의 유산들이나 우상숭배 철학이나 사람의 교훈이라는 단장품을 몸에 장식한 채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단장품을 제거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과 구별하기 위해 진밖에 다 성막을 설치 했습니다. (7)그 리하여 타락한 백성들과 구별하는 경배를 드렸습니다. 더렵혀진 진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란하게 치장했습니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머리띠 같은 것으로 요란하게 치장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요란은 모습은 사라지지고 하나님 앞에 겸허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2,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자각

아름다운 경치를 전달해 주는 빛은 그 경치를 보는 사람에게는 임재 이지만 그 사람 옆에 서 함께 걷고 있는 눈먼 맹인에게는 임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음악은 귀머리의 귀 주위 에서는 잔물결만 일으키고 말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는 임재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를 따라 나온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애굽보 다도 더 좋은 비옥한 땅을 주시겠다고 하니까 따라 나섰을 뿐 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물을 주는 분이 아니라 그 선물 자체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목적이 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신알생활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적을 이 시간에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가 무 엇 입니까? 하나님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복입니까? 아니면 복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신 것은 기쁨으로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약속하신 것을 변경 하시지 못하십니다. 가나안이 무엇입니까 그것 자체는 목적 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산물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 그 약속의 보증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가나안 땅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 하는 한 절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는 일 이 없을 것이라는 증명하신 것이 가나안 땅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부산물을 목적으로 하나님을 그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 주변에 자리를 잡기 시작을 합니다.

그 곳이 젖과 꿀이 흐른다면 하나님 없이도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해 낸 신이 여호와면 어떻고 금송아지면 어떻냐? 우리는 가나안을 차지하기만 하면 되지. 사업이 잘 되고 애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만 .다닐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 이라도 괜 찬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아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게시지 않는 가나안이 어찌 진정 가나안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의 지시로 이 장식품을 제거한 것은 원래 자신들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3, 최후의 결단

성도 여러분 여러 분에게 오직 하나님만 게시면 행복 하다는 고백을 하나님만 계시면 문 제가 해결 된다는 고백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장식품을 제거한 것은 원래 자신들의 모습으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요구 되던 때 그 심정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들은 조금만 일이 잘 되어도 금방 부요해져 버립니다. 옛날의 가난했던 때의 심정을 찾아 볼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 쉽게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입니다.

또한 단장을 제거한 것은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단장품은 자기를 치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이런 장식품을 걸치지 않은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모두가 자기가 잘 났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자기들이 똑 독 하고 자기들이 잘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서 진정한 감사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를 자랑 했습니다. 정통 유대인임을 자랑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이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적인 행위를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변화된 바울은 그의 자랑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만 제일이고 자랑 거리 이었으며 십자가만 자랑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자랑은 예수님 자랑이요 십자가 자랑 이어야합니다. 성도의 자랑은 영광은 하나님 으로 부터 오는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인들은 너무나 많은 욕심을 부릴 때가 많습니다. 신앙도 좋아야 하지만 세상 적으로도 잘 살아야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흥이 일어나고 많은 사업들이 번창 할 때 그것들은 한갓 부산물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내가 하나님과 더 바른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기독교는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일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집니다. 그것은 마치 공유물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풍족한 생활만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행복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크고 웅장해도 그것에 대한 가난한 마음을 잃어버린 다면 그것은 얼마 있지 않아서 다 썩을 것입니다.

많은 액세서리가 있으면 그것을 치우면 자신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액서 서리가 바르게 사용 돨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액세서리를 치웠을 때 그때 성전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버려야 할 단장품은 없습니까? 버려야 할 죄악의 요소들은 없습니까

이미 버리셨다면 다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버린 단장품에 대한 유혹이 있을 경우 그 단장품으로 인해 징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동일한 범죄에 참여치 말아야합니다. 그 리고 앞으로 이루어질 영광스런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며 죄악의 단장품을 단회히 제거하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한국 교회는 제2의 부흥과 축복을 누리게 될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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