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신학적 인간 탐구의 출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과학의 환원적 인간 연구에는 장족의 발전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인간의 본성과 본질에 대한 탐구는 오리무중이다. 이 같은 딜레마가 생겨나는 이유에 대해 신학은 인간의 본질적 기원에 대한 신학과 세상의 다른 전제에서 찾는다. 즉 창조와 우연 사이의 전혀 다른 전제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초대 신학자 오리겐이 "인간은 성경을 통해서만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고 여긴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 같은 입장에 대부분 동의한다. 신학적 인간 탐구는 오직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서의 인간 탐구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영의 기원에 대한 오리겐의 독특한 견해

"하나님의 형상"로서의 인간에 대해 오리겐은 인간 영의 기원에 있어서는 조금 독특한 인간론을 전개한다. 오리겐은 인간의 선재는 부정하나 인간 영의 선재설(先在說, preexistence)을 주장했다. 이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육체를 입고 세상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인간은 또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이 인간은 분명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 오리겐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3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동물을 다스리고(창 1: 26-27), 친자(親子) 관계와 관련된다(창 5:1-3).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피 흘림이 허락되지 않는 신성한 존재(창 9:6)이다. 살인이나 타인의 피를 흘리는 일을 인간이 절대 금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구성 요소에 대한 오리겐의 견해

오리겐은 또한 인간이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일명 삼분설). 삼분설은 인간을 혼(또는 영혼, the soul, nephesh, Psyche, anima)과 영(the spirit, ruach, pneuma)과 육체(soma, corpus)로 구별한다. 성경은 영과 혼을 구분한다(히 4:12; 살전 5:23; 고전 2:14-3:4; 고전 14:14). 이 이론은 오리겐 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학파, 이레니우스. 닛사의 그레고리, 에라스무스, 마르틴 루터, 워치만 니, 부흥사들의 설교, 성결교 등에서 발견된다. 3분설은 신학적 사유를 떠나 성경을 일반 성도들에게 그대로 쉽게 그대로 전달하는 데 편하므로 목회자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부흥사들이 3 분설적 설교에 익숙하다. 종말론에 있어 세대주의적 설교가 성경을 뚜렷이 각인시키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부흥사들이 종말을 설교할 때 세대주의적 설교를 잘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3분설에서는 위에 소개된 4가지 성경 구절에서 보이는 영과 혼의 구분을 주목하고 우리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혼을 가지고 있으므로 둘을 구분하는 것은 영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중생하면 우리의 영이 살아난다고 본다. 영이 살아날 때 인간이 인격(지, 정, 의)과 구분되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배드리는 감정이 살아난다. 3분설은 신학적 오해를 많이 산 주장이다. 이단으로 정죄 받은 라오디게아의 주교 아폴리나리우스(361-390)가 자신의 기독론을 내세울 때 3분설을 사용하면서 3분설에 대해 신학자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3분설을 경계한 측면이 있다. 19세기 들면서 3분설은 루스, 올스하우젠, 베크, 델리취, 허드 같은 독일 및 영국학자들에 의해 부활되었다(벌콥, Systematic Theology, 191-192). 필자는 성경 안에서 영과 혼이 서로 호환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학적으로 볼 때 개혁적 견해인 2분설적 논리가 좀 더 성경적이라 보나 2분설과 3분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오리겐은 그 3분설의 신학적 원조의 한 사람이었다.

성경의 "영"(spirit)과 철학의 "누스"(nous)

오리겐은 영(프뉴마)과 헬라 철학에서 말하는 정신(nous)을 구분한다. 오리겐은 사람 안에 선하고 천상적인 영혼과 더 낮고 지상적인 영혼이 있다고 보았다. 영혼적 영혼이 있는가 하면 지상적, 물질적, 비이성적 영혼들(짐승들의 영혼)이 있다.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영혼이 있는가하면 선과 악, 영과 육을 선택할 수 있는 영혼도 있다. 오리겐은 영(루아흐/프뉴마)과 영혼(네페쉬/ 프쉬케)이 동물 세계에도 적용(전 3:21, 계 16:3)되며 여호와 하나님(사 42:1. 렘 9:9, 암 6:8, 히 10:38)도 네페쉬임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우리말로 100 가지 이상으로 번역된 영혼(네페쉬)는 그 쓰임새가 아주 다양한 단어이다. 최고의 종교적 행사도 프쉬케의 일로 간주(막 12:30, 눅 1:46, 히 6:18, 19, 약 1:21)된다.

다양하게 번역되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크게 네 가지 의미로 압축할 수 있다. (1) 생명 자체(시 29:4), (2) 생명 유지 관련(호흡, 목), (3) 인간의 실재, 하나님을 향한 갈망(시 24:1), 열망, 감정, 물질적 갈망(미 7:1) 관련, (4)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인격(레 2:1)이 그것이다. 육체와 영혼과 영에 대해 2분설과 3분설으로 첨예하게 맞서는 오늘날 신학과 달리 오리겐은 그런 이분법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편협한 해석이 성경적 인간학을 오도할 수 있다고 볼 때 인간 영혼 기원에 대해 성경적 해석을 모색하며 영혼을 추적한 신학 형성의 초대 교회를 산 오리겐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영혼에 대해서는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부터 견해가 갈라졌으니 어느 것이 맞는 건지 규정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보면(벌콥의 말을 따른다면) 2분설이 좀 더 신학적 의미의 일반적 견해이고 3분설은 사람의 3가지 다른 측면을 말한다고 보면 되겠다. 다만 오리겐은 영혼이 영과 육 사이의 매개체처럼 묘사한다. 그럴 경우 영혼은 고유한 의지를 가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오리겐의 경우 영혼이란 자신의 상위 부분인 영의 제자인 이성으로 이끄는 영의 의지를 따르던지, 영혼의 하위 부분인 육의 의지를 따른다. 영혼에 대한 오리겐의 이 같은 관점은 오늘날 주류 신학에서는 분명 낯선 것이다.

근본적으로 영혼에 대한 두 견해는 신비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신비의 문제다. 즉 피조물인 사람은 영-혼-육의 결합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성경도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이 명쾌하지가 않다. 따라서 이 해석에 대한 바른 해석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교파마다 이 문제에 대해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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