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목사

<논제 2> 하물며 자연적인 교훈의 도움을 받아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행위들은 더욱 더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고 흠 없고, 참되고, 정의롭고, 하나님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졌다. 이 때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자연적 힘을 넘어 인간을 깨우치게 하고 선을 행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반대로 더욱 사악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어떻게 인간은 외적인 도움 없이 자신의 힘에 의탁하여 선을 행할 수 있겠는가? 실상 외부로부터 오는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을 깨닫지도 찾지도 않는 타락하고 무기력한 자"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바울은 "우리 모두가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롬 3:10-12)." (LW:31.42-43)

두 번째 논제는 첫 번째 논제를 보다 더 확대한 형태이다. 논제 1이 하나님의 율법 아래서 행해지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논의라면, 논제 2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자연적 힘"을 통해 행해지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논한다. 루터는 하나님의 율법도 인간을 의의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인간 안에 있는 자연적인 힘들, 가령 도덕과 인간의 이성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라고 강하게 반문한다.

논제 2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칭의론과 연관된 중세 후기 스콜라 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 타락으로부터 손상을 입지 않고 선(善)을 행하려는 어떤 능력이 인간 안에 남아있는데, 이를 '신테레시스'(synteresis: 선을 행하게 하는 최초 원리에 대한 이해를 나타내기 위하여 스콜라 학자들이 사용한 전문 용어이다: 필자 주) 라고 한다.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은 '신테레시스'가 타락 이후에도 인간 안에 남아있는 '도덕과 선을 행하게 하는 인간의 이성', 혹은 '의지'라고 생각했다.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은 이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에 대해 논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테레시스', 곧 선을 행하게 하는 인간의 이성 또는 의지에 기초해서 하나님이 용납할 만한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더 많은 은혜를 보답으로 받기 위한 목적으로 선을 행한다. 곧 선한 업적을 더 많이 행할수록 더 많은 은혜를 선물로 받는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선한 행위가 협력(cooperari)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이 바로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터는 중세 스콜라 신학의 '신테레시스' 에 대한 이해를 강하게 거부한다. 루터는 『로마서 강해』 에서 "이러한 강한 욕망(원죄)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LW 25, 262) 고 주장한다. 특별히 루터는 로마서 3장 10절에 관한 주석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악에 기울어져 있어서, 선을 향하게 하는 신테레시스(synteresis)가 우리 안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LW 25, 222)고 주장한다. 루터는 논제 2와 그에 대한 부연 설명에서 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는 바울을 따라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해서 선을 행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인간 안에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인간 밖에서 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없이 자신의 선을 행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의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루터에 대한 비평가들은 루터가 인간의 책임성을 약화시키고, 은혜 받은 자의 성화를 강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논제에서 루터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선한 행위와 업적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교만함을 경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기 위한 그 어떤 자연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이 인간을 의의 길로 나가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중세 스콜라 신학의 'synteresis'에 대한 이해는 현대에 이르러 '인본주의', '이성 우월주의', '과학 만능주의'의 새로운 형태로 기독교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소위 인본주의협회(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AHA)의 노력으로 미군 입대 선서에서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라는 문구가 생략되는가 하면,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CSU)는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생선교단체인 IVF가 "리더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요구하는 동아리 정책이 일반 학생들을 차별하는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정식 동아리에서 제외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몇 해전 리차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신에 대한 신앙은 망상이며, 그것은 유해한 망상이다"라고 주장한다. 도킨스는 과학이 기독교 신앙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엄격한 이성적 판단과 증거를 갖춘 과학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또한 그의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철학은 죽었고 신은 필요 없다. 물리학이 우주의 존재에 관한 본질적인 의문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논제 2'는 중세 후기 루터가 가톨릭 교리와 대항해서 주장한 이미 오래된 역사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날 현대 과학과 인본주의의 도전은 논제 2가 오늘 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루터는 논제 2에서 다시 한 번 말한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힘은 결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이해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의의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 십자가 신학은 먼저 율법과 인간의 자연적 힘들에 대한 이러한 강력한 선포로부터 시작한다.

■ 정진오 목사는...

루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Research Fellow와 예일 신학대학원 Visiting Scholar를 거쳐 현재 미국 시온루터교회 (LCMS) 한인부 담임목사로 재직중이다. 연락은 전화 618-920-9311 또는 jjeong@zionbelleville.org 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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