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건 평택샬롬나비 사무총장, (사)한국시민교육연합 사회통합위원장
조종건 평택샬롬나비 사무총장, (사)한국시민교육연합 사회통합위원장

최순실게이트가 터지면서 소환불응, 진실은폐, 침묵으로 일관하는 청문회 증인들의 태도를 보니,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금수저의 철면피를 본다. 있으나마나한 솜방망이 처벌, 고의성 있는 범죄 은폐와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니, 이번 청문회가 국민의 피로와 분노를 부채질한다. 이럴 수 있는가!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자식들이 보는 청문회인데. 뉘우침 없는 권력욕에 미친 특권층의 추한 모습이 사기사회로 확대되는 학습효과가 심히 우려된다. 더 심각한 것은 정의의 보편가치를 진영논리로 압도하려는 지식인의 편견이다.

유신시대 권력에 맞서 살아있는 지식인으로 추앙받던 김지하 선생의 최근 발언은 우파를 극우파로 선동하는 진영논리 아닌가. "방상훈, 홍석현, 김재호, 그리고 조.중.동 이 얼빠진 놈들아! 나라가 망하면 너희도 죽어! 너희들 막가파 종편방송을 박근혜가 폐지한다니까 그걸 지키려고 나라를 결딴내? 한겨레나 경향신문들은 그렇다치고 니들마져 이러니 좌파들 봄 만난거 떠나 지금 김정은이가 깨춤추고 있다잖아? ...모든 자유는 국가안보의 하위개념이라는 걸 너희가 잘 알잖아? 나라가 무너지는데 자유? 안무너진다고?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너희 눈엔 안보여?...오호,통제라! 나라가 너희놈들 땜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구나!" 평소 조용하던 안보이슈가 선거 때마다 국민을 협박하던 논리가 선생의 것이란 말인가.

한 시대의 울림이었던 김지하 선생에게 묻고 싶다. 안보에 눈먼 국민 있겠는가? 전쟁나면 비행기 타고 도망칠 사람이 촛불시위에 참여한 서민일까 아니면 3%의 특권층일까. 필자가 한 때 양주 두 병만 선물했다면, 군 생활 절반인 방위병으로 갈 수 있었지만 양심과의 싸움으로 최전방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아들은 후방에서조차 꽃보직이라니. 촛불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전방에서 군 복무했을 때, 특권층 자녀들은 군 면제로 김정은 부자가 깨춤추고 있지 않았는가? 필자가 최전방에 배치된 신병들을 교육했을 때, 그들의 이력을 보니 특권층 자녀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아니던가. 자기 자식의 안보만 생각하는 특권층이 안보 위기를 강조하면 국민은 그를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으로 보지 않겠나.

종북논리로 우파를 극우파로 선동하고, 안보논리로 청문회 특권층의 범죄를 묻어버리겠다는 인상을 준다면, 유신역사의 격랑을 해맑은 필치로 일갈했던『오적』의 울림이 퇴색될까 우려스럽다. 일제 만행에 항거를 지속하지 못한 지식인의 변절이 그 시대상황을 탓할 수만 없는 것은 소박한 애국자들의 값진 희생이 기억되기 때문이다. 우파정권이 들어선지 10년째, 아직도 빨갱이 집단을 정리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현 정권 아닌가.

부분이 전체인 것처럼, 안보위기로 공권력남용과 부패문제를 가리겠다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232만 촛불민심이요 10차에 걸친 광화문 그리고 각 지역 촛불시위의 외침이자 절규다. 좌우파의 지식인들이여! 국가의 존립기반인 정의의 보편가치가 위기일 때, 한 목소리로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그에 맞는 처벌과 대안을 요구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 아닌가. 왼쪽 눈은 오른쪽 눈을 필요로 하듯, 좌파와 우파의 공존은 사회의 평형수이지만 이를 망각하고 진영논리의 부역자 모습은 국민을 식상케 한다. 이미 촛불시위의 물결은 시대정신인 민의가 반영된 민주정치로 넘어갔다. 이제 정치권도 좌우파 시각만을 관철시키기에 앞서, 속물들의 집권의지만 보이는 구태정치를 넘어, 품격 있게 민의를 의정에 반영하도록 함이 우선 아닐까. 성장이냐 분배냐의 정부정책은 좌우파가 토론과 협상으로 타협정책을 만들지만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남용이나 부패사건은 결코 좌우 프레임의 문제가 아니다. 안보논리도 공권력남용이나 부패사건을 대신할 수 없다.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프랑스의 사상가 폴 발레리의 품격 앞에 서보자. 누구를 위한 공권력인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청문회 양아치들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에 따라 종신형을 처한다면, 이런 황당한 청문회는 사라지며 거짓과 사기로 인한 극심한 사회혼란은 정리되지 않을까. "죽은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는 경영학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질문은 사법부 구성원의 몫이면서 김지하 선생의 몫인 셈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 시론, 칼럼, 성명, 논평 등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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