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푸른교회 조성노 담임목사

세계 3대 문학상? 맨 부커? <채식주의자>? 한강? 제게는 다 생소하고 낯선 김에 호기심 반 놀라움 반으로 그의 책을 모조리 샀습니다.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채식주의자>, 최근작이라는 <흰>까지... 그리고 하룻밤에 그 네 권을 다 읽었습니다(권당 2시간, <흰>은 40분이면 완독 가능함).

특히 맨 부커 수상작이라는 <채식주의자>는 우울했습니다. 아니,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그로테스크한 문학적 관념이 왠지 내 정서에도 스밀 것 같은 음습한 느낌이 들어 별로였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두운 내용이었지만 몰입도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채식주의자>라는 건전하지 않을 것도, 건강하지 않을 것도 없는 표제에 비해 내용은 몹시 혼란스럽고 병적이어서 제목과는 덜 맞는 작품,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는 관념이 되고 잔인한 신념이 되어 자신조차 잃어가는 이 시대 영혼들의 아픈 이야기. 문체는 섬세하고 정교하며 대단히 감각적이고 시적입니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 섬뜩할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기도 하는데 사실 책 한 권을, 그것도 한 자리에 서서 단숨에 읽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함부로 뒤엉킨 경험은 저로서도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말도, 이빨과 세 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43쪽, 채식주의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깊이의 문제일까요? 방향의 문제일까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이를테면 사랑의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사랑의 방향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여자간의 충돌을 다룬 작품 같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우리 안에서 꿈틀대는 동물성과 또 고요히 흔들리는 원초적인 식물성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채식주의자>는 각각 독립적인 세 편의 중편 소설이면서 동시에 한 묶음의 연작 장편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 편의 화자가 각각 달리 설정되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 영혜의 파멸과정을 여러 접근 방식을 통해 확인해 보게 하는데 식물이 되고자 하는 영혜와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며 돌이키려는 주위 사람들 간의 밀당이 사랑의 깊이와 그 방향성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합니다.

표제작인 1부 <채식주의자>의 화자는 영혜 남편인 <나>, 아내 영혜는 어린 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와 꿈에 나타난 끔찍한 영상으로 인해 육식과는 완전히 결별합니다.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처가 식구들까지 동원해 그녀에게 육식을 강제하려는 <나>와 자신의 손목을 긋는 자해까지 하며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의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그 과정을 그려가는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은 때로 거친 표현도 서슴치 않고 차마 말 못할 감정들에 대해서도 무섭도록 솔직합니다.

2부 <몽고 반점>에서는 사진 작가인 영혜의 형부가, 3부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화자로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의 폭력이 한 인간의 내면세계에 어떻게 각인되는지, 또 그 상처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잠재된 욕망의 미세한 지형도 같은 작품,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한 여자가 육식을 거부하며 맞서고 있는 동물적인 폭력의 세계를 얼얼한 마음으로 관찰하게 합니다.

기분이 좋거나 희망을 주는 얘기는 아니지만 깊은 상처에서 발생되는 인간의 이상 심리들이 어쩌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본 오늘 우리 자신들의 아픈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일독의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영혜, 그녀는 채식이 아니라 나무가 되려고 합니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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