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목사(푸른교회 담임).

CTS PD가 건네준 티켓으로 연극 '전율의 잔'을 봤습니다. 독일 나치시대의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치열했던 일대기를 제대로 압축해 놓은 완성도 높은 작품(엘리자베스 베리힐 작, 최종률 연출)이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1906년 2월 4일 아버지 칼 본회퍼와 어머니 파울라 본회퍼 사이에서 8남매 중 6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칼 본회퍼는 베를린 대학의 정신의학과 신경학 교수였지만 온 가족이 음악을 무척 좋아해 주말이면 자주 가족 음악회가 열릴 만큼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가정이었습니다. 본회퍼는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받으며 자랐고 여행을 좋아했으며 시를 쓰는 등의 문학적 재능도 뛰어나 후에 그의 이런 능력이 저작과 서신 등에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 파울라 본회퍼는 행함 있는 믿음을 강조했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이야말로 <싸구려 은혜>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는데 본회퍼도 후에 여러 글에서 <싸구려 은혜>라는 말을 자주 구사합니다.

튀빙엔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성도의 교제>라는 논문으로 베를린 대학을 졸업할 때는 신정통주의의 거장인 칼 바르트까지도 감탄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21세에 이미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5세 때에는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베를린 대학 신학부 강사로도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그의 삶은 엄청난 고뇌와 갈등에 휩싸입니다. 연극의 초반부는 주로 본회퍼의 내적 갈등과 결단에 초점을 맞춥니다. 결국 그는 독일 교회가 나치에 대해 침묵하거나 열심히 손뼉을 치고 있을 때 설교와 강연, 방송 연설을 통해 히틀러의 거짓과 악행을 규탄하며 독일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습니다. 즉 독일 교회가 나치정권을 정당한 국가의 권위로 인정하고 정교일치 원칙을 내세우며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좀 더 조직적으로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 칼 바르트와 니묄러 등의 유수한 신학자들과 함께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라는 지하 교회를 급조하고 <바르멘 신학적 선언>이라는 성명을 발표니다. 그것은 독일 고백교회의 신앙고백이요 히틀러를 비판하는 예언자적 신념이었습니다. 마침내 본회퍼는 <어떤 미친 사람이 운전을 하며 사람들을 마구 해치고 다닌다면, 그자를 차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며 자신에게 다가온 전율의 잔을 받아듭니다. 히틀러의 암살 모의에 가담하기로 한 것입니다.

극은 본회퍼를 끊임없이 고뇌했던 한 사람의 신학자이자 끝까지 신앙양심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바친 순교자의 모습으로 그려갑니다. 이 작품의 최대 미덕은 본회퍼에 대한 단편적인 오해와 편견을 깨뜨리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본회퍼를 단순히 금진적인 신학자 정도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재고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1945년 4월 9일 새벽 본회퍼는 39세를 일기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음을 통과해 마침내 그가 말한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이 연극은 우리 한국 교회를 향해서도 엄숙한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나치에 침묵하고 동조했던 독일 교회처럼 오늘의 한국 교회도 타성과 매너리즘에 빠져 현실과 타협하며 강도 만난 이웃들의 삶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내공이 탄탄한 중견배우들(정선일, 최선자, 김민경, 우상민, 이경영 등)의 열연에 갈채를 보냅니다.

/'노나라의 별이 보내는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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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율의잔 #조성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