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푸른교회 조성노 담임목사

어제가 개천절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개국을 하늘이 열리는(開天) 사건으로 이해한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는 참 특이합니다. 이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에 하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강한 민족적 자부심의 표현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단군의 이야기는 13세기 초 고려의 승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입니다. 단군이 신화적 존재냐 역사적 인물이냐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단군신화는 이교적이고 미신적이기 때문에 배척해야 한다는 교계 일각의 주장도 부질없습니다. 단군 이야기에는 고대인들의 정신세계와 그 시대의 우주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도 단순한 옛날 이야기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맞습니다. 거기에는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고 또 그 짐승들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품었다는 점에서 불교의 윤회적인 세계관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동물적인 성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한에는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윤리적인 가르침도 전제되어 있습니다. 결국 호랑이는 마늘과 쑥만으로 백일 동안 어두운 동굴에서 지내야 했던 대결에서 곰에게 패하고 맙니다. 이것은 당시 곰을 숭배한 토템 족이 호랑이를 숭배하던 토템 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고조선 건국의 주도권을 쥐게 된 역사적 과정을 신화적으로 진술한 것입니다. 호랑이는 실패하고 곰은 성공하여 여자(웅녀)가 되었다는 것은 고대 모계사회의 문화인류학적인 흔적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또한 당시 고조선 사회를 떠받쳐 준 정신적 모유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곰이 백 일간 어두운 동굴에서 먹었다는 마늘과 쑥은 고대 동양 사람들이 영험한 약초라고 믿었던 식물입니다. 즉 단군조의 고대사회는 밤중 으슥한 곳에 숨어 남의 생명을 노리는 호랑이 같은 성정의 인간형이 아닌 오직 자연이 제공해 주는 생명력만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게 바로 단군 설화의 심층구조 속에 내재된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이자 건국이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군>이란 원래 고대 북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하늘의 뜻을 물어 백성들에게 전달했던 제사장 <탕구르> 혹은 <당굴>, <당골>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요즘 우리가 쓰는 <단골>도 바로 여기서 파생된 말입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달려가 도움을 청했던 <탕구르>가 후에 와서 자주 출입하는 가게나 손님을 의미하는 <단골>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탕구르>의 본래적인 역할과 사명은 공동체가 겪는 아픔을 하늘에 고하고 한을 풀어주며, 그 공동체에 정신적 좌표를 제시하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시대든 이 <탕구르>를 갖지 못한 나라와 민족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이 많이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앞날에 대한 이런저런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런 때 교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줘야 합니다. 신앙의 힘으로 두려움을 뚫고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개천절은 <탕구르>의 출현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열림>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야말로 이 시대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탕구르>가 되어야 합니다. 마늘과 쑥의 진액을 빨 듯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어두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타오르는 참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 나라가 선지 4347년, 다시 한 번 하늘이 열리고 나라가 새롭게 되는 제2의 <개천>과 <개국>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노나라의 별이 보내는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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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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