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국가조찬기도회가 8일 오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한민족을 향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창 22:14)’을 주제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최윤영 아나운서 사회로 음악회가 진행된 후 오전 7시 30분부터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입장하며 2부 기도회가 시작됐다. 다음은 오정현 목사의 제44회 국가조찬기도회 설교전문 -편집자주-

▲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지금 우리는 ‘세계사의 기본판’이 급격하게 바뀌는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에 서 있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 속에 철저하게 닫혀 있던 중동까지도 민주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고, 그렇게 탄탄하게 보이던 유럽조차도 자신의 시스템을 폐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소통의 양극화 때문에 지성은 이성을 잃고, 많은 젊은이들이 피지 못한 꽃처럼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민족 공동체는 서로 큰 상처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생명의 역사의 꿈을 안고 힘차게 비상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믿음의 중심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흔들림 없는 믿음의 중심, 영적 중심을 잡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순종을 통해 인류의 조상 아담의 불순종이 가져온 파멸, 절망, 어두움의 역사를 반전시키고 비극의 역사의 판을 뒤집었습니다. 아담의 죽음의 족보를 생명의 역사, 생명의 계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신약 로마서 4장의 해석을 통해, 그의 순종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from nothing to something)”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그의 믿음의 순례의 여정 중심에 항상 여호와 이레의 공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신적 개입(Divine Intervention)을 통해 믿음의 제사에서 가장 필요한 숫양을 준비시켜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다”는 여호와 이레를 체험케 하셨습니다. 모리아산에서 여호와 이레를 경험한 이후부터 아브라함은 평생 더 이상 좌고우면,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믿음의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세 종류의 여호와 이레를 경험했습니다. 그의 경험이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도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Ⅰ. 첫째, 여호와 이레는 우리의 외적인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사실 기근과 재앙이 가득한 세상에서, 아브라함 같은 유목민의 삶에서 우리의 일용할 양식, 부족한 것을 공급받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모세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 가운데 부족함 없이 공급받았다고 고백합니다(신 2:7). 신약에서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 저들도 다 먹이시고 보호하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지 않으시겠느냐?”(마 6:26~28)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난 100여년 한민족의 격동의 역사 가운데 초근목피와 보릿고개를 극복케 하시고, 수출 세계 7위, 무역규모 세계 9위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을 향한 여호와 이레의 외적 공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초보단계의 공급입니다.

Ⅱ. 여호와 이레는 우리의 내적인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이 내적인 공급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면의 필요, 영적인 필요를 채우셔서 믿음의 중심을 잡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믿음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내가 주야로 심히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가 더 잘 순종할 수 있도록, 더 순결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심령을 강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셨습니다. 128년 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발을 디딤으로 이 민족의 내면의 어두운 영혼 속에 ‘소망의 빛’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혼을 붙잡으시고 새롭게 하심으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 세계 선교 2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이레의 공급은 이 두 차원-외적, 내적 공급으로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차원이 있습니다.

Ⅲ. 그것은 여호와 이레의 가장 중요한 공급인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케 하시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이레는 우리에게 구원사적인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은 구원 역사의 예표(Typology)가 되었습니다. 이삭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려주신 십자가의 순종을 의미하고 여호와 이레의 모리아산은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스러운 장소가 되었고, 훗날 우주적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곳이 되었습니다. 말씀한대로 아브라함의 순종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불순종이 가져온 역사를 반전시켰습니다.
이 구원역사의 공급을 믿고 눈을 뜨게 되면 시골의 무학한 할머니도 세계를 품고 기도하게 되고, 달동네 판자촌 출신도, 궁벽한 농어촌 출신도 한 시대를 위하여 쓰임받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여호와 이레의 구원의 역사를 믿는 자는 빈부귀천, 유무식을 막론하고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사 60:22) 기적을 체험케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을 얻는 수준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의 주인공(요 10:10)이 되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자리(마 28:20)에 나아가 아브라함처럼 땅의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의 근원, 열방을 향한 제사장적 삶, 은총의 통로가 되는 가슴 뛰는 자리(창 12:1~3)에 이르게 하십니다. 복음성가 가사대로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의 초월적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우리 민족의 역사에도 그대로 고스란히 나타났습니다. 먼저, 1907년 평양대부흥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준비시켰습니다. 제가 2010년 영국 에딘버러 100주년기념집회에서 첫날 저녁 말씀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1910년도 1차 대회에서 마포삼열(Samuel Moffet)목사님의 세계를 향한 간증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지금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런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영적으로 희망이 있고, 앞으로 영적 강국이 될 것입니다.” 왜? 그는 1907년 평양대부흥을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1945년 건국과 1948년 정부수립 당시 민족의 역사의 길목에 섬광처럼 빛을 비춘 대부분의 지도자들을 크리스천 신앙인들로 준비시켰습니다. 민족의 젊은이들의 가슴에 꿈을 심어준 월남 이상재, 참 교육자 남강 이승훈,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백범 김구,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 등이 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셋째, 70년대의 부흥입니다. 엑스플로 대회 등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나는 찾았네(I found it.)” 배지를 달고 다니면서 민족의 가슴마다 붉고 붉은 그리스도의 피를 적심으로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돌아오게 되는 꿈을 갖게 하심으로 폭발적인 회심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신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우리는 잘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지도자들인 우리의 잘못이 큽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제4의 부흥이냐, 아니냐는 갈림길에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민족의 사회적 에너지(Social Dynamism)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독특합니다. 엄청난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여호와 이레의 신적 개입으로 이 민족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의 경직된 형식주의, 젊은이들의 냉소적 비판주의 때문에 이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분출(implosion)되어 너무나 큰 내상(상처)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폐족’이 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라는 단어가 ‘꿈, 기상, 에너지’의 긍정적 단어가 아니라 ‘좌절과 무기력’의 부정적 단어로 바뀌고 있습니다. 민족의 에너지가 세계를 위해 쓰임받지 못하고 서로 공격을 일삼으면 -사회적 합의를 위한 건강한 토론은 바람직하더라도- 민족 성장의 기본축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지도자들은 회개하고 일반 성도들은 삶의 현장에서 거룩한 삶의 실천을 회복해야 합니다. 동시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고 창조적 하나님 나라의 꿈을 새롭게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 먼 자가 보며, 귀 먹은 자가 들으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손 마른 자가 손을 펴는 나라입니다. 옛 것은 새것이 되고, 모리아산의 이삭처럼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분열을 통합으로, 증오는 사랑으로 변하고, 굽은 것은 펴지고, 버린 돌은 머릿돌이 되고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꽉 막힌 것이 뚫림으로 선지자 요엘의 꿈처럼 자녀들은 예언하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이 다시 환상을 봅니다. 개인의 창의력은 극대화되고 공동체는 사랑의 혁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그야말로 육의 시대가 끝나고 영의 시대가 도래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 이레의 공급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사랑과 복음으로 우리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능력, 즉, 영적인 초월적 유통재화(spiritual currency)를 공급해 줄 것입니다.
이 공급이 구체적으로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쓰임받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과 40여개 단체가 모여서 지난 8년간 거르지 않고 370여차에 걸쳐 쥬빌리 통일 구국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분단 70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준비하실 이 민족을 향한 여호와 이레의 공급을 믿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체제 이후에 피해자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기도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통일이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습니다. 통일이 저주가 되지 않고, 비극적인 통일이 되지 않고 영광스러운 통일이 되도록 우리가 사명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복음적 평화통일은 우리 남한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짐이 아니라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사랑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1:1:1운동입니다.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한 사람이 매일 오후 1시에 1분씩 기도하고, 한 가정이 한 달에 1만원씩 헌신하는 운동입니다. 이런 공동체의 사랑의 실천적 운동을 통해서 우리 민족은 계속 축복의 통로로 여호와 이레에 쓰임 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여호와 이레를 위한 공급의 타이밍, 신적 개입의 시간은 주로 “마지막 코너”까지 갔을 때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찢어지는 마음으로 모리아로 걸으며, 결국 자식을 꽁꽁 묶고 제단에 올려놓는 그 시간까지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칼을 들고 내려찌르는 그 순간, 그때에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 번이나 급박하게 부르시면서 신적 개입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강력한 하나님의 공급은,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실오라기 하나라도 완전히 맡기는 전적 위탁의 자세가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아사 왕처럼 100만 대군의 적 앞에서, 앞뒤 좌우가 막혀서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주 밖에 도와줄 자가 없나이다”(대하 14:11)라고 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손길이 나타나 구원의 역사를 온 몸으로 체험케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내 발이 미끄러지고 있습니다”하는 그 절박한 순간,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절실한 기도를 통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케 하는 ‘신앙의 역설’을 보여주십니다.

올해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함께 피 흘려 죽을 수 있는 동지 3인만 있으면 나라도 세울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정파와 이념을 초월하여 신앙의 동지의식을 갖고 아브라함처럼 결사적으로 ‘믿음의 기도의 대장정’을 감행하십시다. 민족을 향한 목자의 심정을 갖고 싸울 날을 위해 기도의 마병을 예비합시다(잠 21:31). 그럴 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의 큰 강물이 이 민족을 덮고 은혜의 만조(滿潮)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오늘 이 기도의 자리 때문에 조국의 역사가 소망의 역사로 새롭게 집필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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