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월 게이바
▲1969년 9월 촬영한 스톤월 게이바 전경. ©Wikipedia

[기독일보=칼럼] 1969년 6월 뉴욕의 스톤월 게이바(Bar)에서 동성애자들이 경찰의 단속에 항의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이는 경찰의 단속과 형사 처분을 받지 않기 위한 권리투쟁운동이었다.

미국은 2003년까지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는 나라였다. 동성애 단체들은 1969면 11월 2일 스톤월에서 있었던 폭동을 기념하면서 퍼레이드를 시작했고, 국회의원과 법원이 그 퍼레이드를 후원하며 정례화 되었다. 그 퍼레이드가 바로 ‘퀴어축제의 근원’이다.

당시 동성애자들의 퍼레이드는 지금과 달리 아주 얌전했다. 퀴어축제는 미국 전역으로 알려지고 유럽, 남미, 아시아 등지에도 전파되었다. 매년 6월이면 스톤월 폭동을 기념하는 동성애 퍼레이드가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다.

1) 퀴어축제는 축제가 아니라 음란성 시위
"법제화 꾀하는 동성애 옹호진영의 전술임을 알아야 한다"

1990년대 성정체성 혼란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젠더이론’에서 다양한 변태적 성욕도 정상으로 포함시키는 이론을 정립하였다. 그때부터 게이 퍼레이드가 노출증, 가학피학성애, 성전환증, 이성의상선호자 등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의 행사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위를 축제로 포장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였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변태적 성적취향을 정상이라고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퀴어축제는 음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성적 소수자를 배려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면의 목적은 다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인정되는 이성애적인 사회제도를 와해시키고 모든 성도착적인 성욕을 정상이라고 명명한 법제화를 노리고 있다. 그것이 진짜 목적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퀴어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시위이며, 동성애 법제화를 위한 국민정서 전환을 꾀하는 ‘동성애 옹호진영의 전술’이다. 퀴어축제가 정착되면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인권조례, 인권교육법의 제정, 학교 성교육 교과서 등으로 동성애와 기타 비정상적인 성욕들이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권)라는 이름으로 교육될 것이다.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반윤리적이라는 명목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고로, 서울광장 사용 허가제로 환원해야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시민들과 교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개최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서울시가 2010년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용신고만 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퀴어축제를 불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7월에는 신천지 유관단체에서도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신청했을 정도다. 광화문 광장이나 청계 광장과 달리 서울광장만 신고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2009년 참여연대가 서울광장 이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서울광장조례개정주민발의안’을 만들어 서울시 의회에 제출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2010년 서울시의회가 서울광장만 신고제로 개정했다. 내년에 다시 서울광장에서 퀴어축제가 열리는 것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허가제로 환원시키는 ‘서울광장 이용에 대한 조례개정’이 필요하다.

2016년 서울광장 퀴어축제
▲지난 6월 열린 서울광장 퀴어축제 현장. ©자료사진

2) 동성애와 질병과의 상관관계 보도금지?
"인권보도준칙 하루빨리 개정되어야"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전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행진한다. 여러 차례 시민들을 경악시킨 음란 시위성 이벤트다. 안드레아 윌리암스(영국 변호사)와 새라김 사모(미국 차세대 운동가)는 “이러한 동성애 축제가 세계관과 문화에 영향을 주고, 최종적으로는 동성애 법제화의 도구로 쓰이기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들의 엄중한 경고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언론은 퀴어축제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다루고, 시민과 정부에게 공익적 자세를 공고히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언론은 퀴어축제의 위험성과 시민들이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지 않을까? 퀴어축제 전후로 실시된 인터넷 투표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96퍼센트가 퀴어축제를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왜 퀴어축제가 건전하지 못하고, 좋지 못한 저의가 숨어있는 행사라는 것을 함구하는 것일까? 퀴어축제가 열리는 서울과 대구가 에이즈 환자 증가율이 탁월하게 높다. 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필연이라면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동성애(Homosexuality)는 동성과의 성애 혹은 성관계라는 뜻이다. 한국말로는 동성연애 혹은 동성성애라고 했었다. 미국 질병본부는 남성 간 성관계자가 감염이 많은 이유는 항문 성관계(ANAL SEX)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동성혼이 허락된 나라이다. 그 나라에서 동성커플과 이성커플의 수명을 연구한 자료가 있다.

그 자료에 따르면 동성끼리 결혼한 커플은 그렇지 않은 커플보다 24년이나 수명의 손해를 본다고 한다.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의 공통점은 동성혼이 인권으로 인정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동성애자들의 헌혈이 금지된 나라라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죽을 때까지 헌혈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남성 간 성관계를 한 이후 1년 동안만 헌혈이 제한된 국가다. 1년 안에 동성과 성관계를 한 적이 있으면 피를 받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의 헌혈이 금지되어있는 이유와 그들의 수명이 24년이나 줄어드는 사례만 봐도 동성애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알 수 있다. 질병의 원인, 예방과 대책, 전염병의 전파 경로, 나라별, 지역별로 유행하는 질병, 질병의 실태 등 의료보건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알아야 할 내용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6년 서울광장 퀴어퍼레이드
▲2016년 서울광장 퀴어퍼레이드 한 장면. ©자료사진

이를 위하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 세계에 24시간 내내 자료를 공유하는 기구들이 있다. 보건국, 질병관리본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산하에이즈관리국(UNAIDS) 등이 바로 그 기구다. 그런데 이 기구들의 홈페이지 내용을 인용했을 때도 인권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막은 준칙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 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도하여 만든 인권보도준칙이다.

보건당국들의 객관적 통계를 의료인 혹은 기자가 출처를 밝히고 인용하여 기사화를 할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제한하고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합법적인 인용의 자유마저 제한하는 희한한 언론통제를 하고 있다. 미국질병관리본부와 WHO(유엔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통계를 바탕으로 남성 간 성관계자의 건강실태나 질병상황을 그대로 인용할 경우에도 인권보도준칙을 어기는 것이 된다. 인권보도준칙이 성소수자를 특정질환과 연결하여 기사를 써서 보도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질병관리본부는 게이(gay)와 양성애자(bisexual)가 간염과 에이즈 매독 등에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일반인과 그들의 건강 코너와 구분해서 관리하고 있다. 성소수자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인용의 자유조차 없는 엄청난 언론 통제국가를 멈춰야한다. 어느 한 기자는 “퀴어 축제에 대한 과도한 미화기사만 다루어지는 이유가 인권보도준칙에 있다”며 호소했다. 동성애와 질병과 관련된 통계에 대한 인용과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의 건강과 생명과 직결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조속히 동성애와 질병과의 상관관계를 보도할 수 있도록 인권보도준칙이 개정되어야 한다.

3) 퀴어축제 이전에 미리미리 동성애의 폐단에 대해 미리 알려야 한다

김지연 대표
▲김지연 대표ㅣ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각종 방송과 신문사가 이것을 부지런히 알려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신경 안써도되는 인권보도준칙을 과도하게 인식한 언론과 방송사들 대신 우리가 직접 유인물이나 소책자등을 찍어서 알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부지런히 그러한 일들을 감당해 내야한다. 퀴어 축제를 하는 장소 주변의 시민들과 학교, 상가들을 부지런히 깨우고 그런 퀴어 문화자체가 어떤 위험함을 내포하는지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알리고, 캠페인 하여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공중에 떠다니는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신발을 신고. 구두를 신고, 운동화를 신고 이 땅을 걸어 다녀야 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신앙이 입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반응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한숨만 쉬어도 반응하시는 인격적이신 분이다. 또 부활하신 능력의 주님이시다. 이제 우리가 주님께 반응할 때다. 그분의 탄식에 반응하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 12:4).

글ㅣ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김지연 대표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 전문위원ㅣ성과학연구협회 교육국장ㅣ대한약사회 소속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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