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13일 장신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상아 기자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튀빙엔대학교 명예교수가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김명용 박사, 이하 장신대)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3일 오전 10시30분 장신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진행된 수여식에서 장신대는 위트만 몰트겐 박사에게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공헌했으며 한국의 제자들을 많이 길러내 한국 신학에 공헌"한 점을 들며 10인 이상 교수의 추천으로 학위를 수여한다고 밝혔다.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이날 "학위수여는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이다"며 "한국과 가졌던 오랜 관계의 역사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역사는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는 역사였으며 점점 깊어가는 우정의 역사였다"고 말했다.

"감사의 표시로 그간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며 그는 "한국과 저의 인연은 1970년 케냐 나이로비의 세계개혁교회 연맹 총회에서 시작됐다. 그때 박봉랑 교수(조선신학교 초기 교수, 한신대 명예교수)가 내게 와서 한국으로 초대했다. 그와는 많은 서신을 주고 받았고 그는 자신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을 튀빙엔으로 보내서 제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했다. 그 사람이 연세대 교수 되신 김균진 교수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후에 1975년 한국으로 처음 오게 됐는데 당시 저는 '국민의 투쟁 안에 있는 희망'이라는 아주 위험한 강연을 준비해왔다. 당시 한국 국민은 군부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었으며 그 고통과 응어리을 쏟아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때 한신대에서 민중신학을 발전시킨 안병무 교수와 교도소에서 방금 풀려났거나 연금된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강제로 삭발 당했다고 말했다"며 "그 중에 한 학생에 대해서 얘기를 들었는데 교도소 안에서 7명의 동료 수감자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 사형선고 받아서 그를 위해 변호했지만 (정부로부터)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사면됐고 일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 그때 장신대 이종성 학장님과 마펫 학장님을 만났다"며 "아주 추운 날씨라 낡은 난로에 손을 녹이며 나무로 된 판잣집에서 1975년 설교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당시 제3세계 국가였고 지금처럼 하이테크 국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신앙과 신학에 대한 배고픔이 대단했다"며 "이 신학교에서 저 신학교로 옮겨가며 강연을 했다"고 기억했다.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다음 나에게 중요한 방문은 1981년이었다"며 "서울 중심지에서 강연을 하도록 요청 받았는데 금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이화여대로부터 해임됐던 서광선 교수와 함께 학생들과 함께 경주로 가서 경주 관광을 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1981년 정치범으로 수감된 사람들의 어머니들이 검은띠를 두르고 시위를 했으며 안병무 교수는 투옥됐고 김지하 시인은 사형선고를 받았다"며 "병원에 있는 부상 당한 장로교 목사들을 방문했고 독일에서 '한국 눈물과 희망의 나라'라는 글을 썼다"고 했다.

이어 "1984년 한국 교회들이 백주년기념행사를 하면서 저를 초대해 기장 총회와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화해에 관한 강연을 했다"며 "그것은 예상치 못한 영광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몰트만 박사는 "저만 한국에 온것이 아니라 한국이 튀빙엔으로 왔다"며 "9명의 박사 과정의 학생 가운데 김명용 교수, 김도훈 교수가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튀빙엔대학교와 장신대가 상호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튀빙엔대학교와 장신대 총장 다 내 제자이다. 독일에서는 '박사 아버지'라고 하는데 박사 아버지는 매우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학에 있어서 한국과 독일의 협력은 참으로 중요하며 특별히 많은 결실을 거두게 될것으로 보인다"며 "또 저는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신학적 확신을 갖고 돌아간다. 이러한 공동체를 저는 언제나 깊히 느껴왔다"고 했다.

이날 축사한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광선 박사는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첫번째 신학책 '희망의 신학'은 제가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할때 디트리트 본회퍼의 '옥중에서 보내온 편지'와 함께 애독한 신학서적이었다"며 "몰트만 박사와는 1971년 아시아 태국 방콕에서 열린 WCC 선교대회에서 만나 신학적인 친구가 됐다. 그는 1975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박정희 유신 군사 독재정권에 항거해서 민주주의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기본권리를 위하여 투쟁하던 그 험난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몰트만 교수는 한국신학자들과 한국교회와 한국의 기독교 지성들과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었다"며 "그의 신학은 우리의 희망의 신학이 되었고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 "몰트만 교수의 정치신학은 오늘의 우상이 절대적이며 독선적인 정치권력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돈과 맘몬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야말로 교회와 세계의 우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었다"며 "그의 정치신학 맘몬과 정치권력에 저항하고 타파하는 십자가의 신학이었다"고 강조했다.

서 박사는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진도 앞바다의 춥고 어두운 깊은 바다 한가운데서 엄마와 아빠를 부르며 숨져간 아이들을 건져내지 못하고 슬픔과 분노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왜 우리를 버리시나이까'절규하고 있다"며 "몰트만 교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우리와 함께 그 자리에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오늘 우리 한국의 어른들이 한국의 교회가 돈과 맘몬에 눈이 어두워서 권력 그 자체를 위해서 허둥거리고 무책임과 무능으로 아이들의 귀한 생명을 바닷속에 버렸다"고 말하며 "우리의 아들딸,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이 오늘의 시대 십자가를 지고 엄마 아빠를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며 물속으로 사라져갔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는 "이 비극의 봄, 우리의 4월과 5월은 우리 역사상 가장 잔인한 달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잔인한 봄으로 기억될 것이다"며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절규하는 물음에 몰트만 교수님은 저 바닷물 속에 진도 앞바다 뱃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과 함께 계신다고 말한다"고 했다. 또 서 박사는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씻고 다시 부활의 희망을 가진다. 그 희망을 위해서 우리는 힘을 내고 다시 일어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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