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개혁파신학연구소장)   ©기독일보 DB

봄부터 한 여름인 지금까지 온 국민의 마음에 고통과 슬픔을 남겨준 사건이었다. 한 나라를 침몰시켰다고 할 만큼 엄청난 충격을 주었기에 국민들이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일 사건으로 이렇게 국가적으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전쟁 말고는 없지 않을까.

사건이 일어난 후 세월호를 실제로 운영해온 모기업의 총수에게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당국은 세월호의 실소유주인 그를 찾아 나섰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실소유주의 재산형성과정과 운영실태가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들로 재산을 모았고 기업을 운영했다. 게다가 철저하게 종교를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방편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에 경악케 했다.

하지만 수사가 시작된 후 그의 종적을 찾지 못한 채 수사기관은 조롱을 당하고 있었다. 국민들 역시 수사기관의 무능한 모습과 함께 의구심을 가지기까지 했다. 평소에 준비했던 비자금을 갖고 추종하는 사람들을 거느린 채 유유히 수사기관과 국민들의 눈을 조롱이나 하듯 숨어다녔다. 오리무중인 그의 행적 때문에 수사기관은 국민적인 질타를 받았다. 게다가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민심마저 흉흉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유언비어들은 피해자들과 국민들을 더 힘들게 했다.

간혹 전해지는 수사기관의 소식은 그가 어디에 숨어있을 것이라는 둥,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둥, 밀항을 시도하고 있다고 하는 것 등이었다. 결국 영장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검찰은 사법부 사상초유인 5개월 기간의 영장을 재발급 받아서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한 주검에 대한 소식이 불쑥 전해졌다.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의 주검에 대한 신고가 있어서 신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 주검이 세월호 실소유주로 지목되어 체포하기 위해서 몇 달 동안 검찰과 경찰이 뒤쫓고 있었던 바로 그 사람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해당 경찰서장이 직접 발표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허탈감은 다시 의구심으로 이어졌다. 정말 그의 주검이 맞는가 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발표가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검경이 나름 혼신의 힘을 쏟아 쫓았던 인물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심정일지 모른다. 어떻든 수사기관의 최종적인 발표에 의하면 그는 죽었다. 결국 검찰이나 경찰은 물론 국민도 체포해서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을 원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살아있어야 하는 그가 주검으로 발견됨으로써 수사기관은 더 큰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책임소재를 확인하고 밝혀서 피해보상을 위한 재산을 환수해야 하지만 정작 그 대상자가 주검으로 발견되었으니 구상권을 청구할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책임을 묻는 것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국민적 고통을 안겨다준 사건의 중심에 있는 최종적인 책임자가 죽은 상태에서 과연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다른 문제로 남게 되었다.

그는 일반인들은 감히 넘보지 못할 재산을 소유했고, 종교를 이용해서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최소한의 기업윤리조차 저버린 채 돈을 버는 능력을 발휘했던 신출귀몰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들 집단에서는 사실상 교주로서의 위치에서 절대자였다. 때문에 그가 도피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를 극진히 보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도피자금 역시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이 갖고 다녔다.

지금까지 그가 야산기슭에서 홀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뿐 언제, 어떻게, 어디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확인한 상황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또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교주로서 제왕처럼 지내온 그였지만, 그리고 도피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돈을 갖고 추종자들과 함께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끝내 혼자였다. 돈도, 추종자들도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부러울 것 없었고, 부족한 것 없었던 그의 삶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그의 마지막 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그의 죽음은 동정조차 받지 못한 채 쓸쓸히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그가 지배해온 종교집단 역시 국민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소위 구원파로 일컬어지는 집단의 모습은 제도적 교회를 부정할 때 동반될 수 있는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구원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 언제든지 동반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구원파적 신앙과 집단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의 선대 지도자가 죽은 후 흩어진 집단들은 독자적으로 각각 다른 집단을 형성한 채 또 다른 구원파로 자생하고 있고, 거기에는 사실상 각각의 교주가 있다. 때문에 사교화 되기가 쉬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종교가 사교화 되었을 때 교주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선과 악의 양면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그의 죽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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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전교수 #유병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