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

[기독일보=칼럼] 이번 주에는 찌는 폭염 아래 많은 분들이 휴가를 떠나고 도심의 한가한 모습을 보면서 항상 이렇게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신학교 동기 모임이 있어서 모처럼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전날 허리에 이상이 생겨 이번에도 또 한 번 부도를 내고 말았다.

‘참여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어느 친구한테서 ‘이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잠시 후 다른 친구가 ‘평생 목회만 한 사람에게 회개는 무슨 회개냐’고 빈정대는 글이 올라왔다.

문자를 보고 생각해 보니 진짜 회개해야 할 일들이 고구마 순을 걷으니 고구마가 따라 나오듯이 솔솔 솟아나온다.

평생 목회의 길만 걸어온 본인이 회개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회개한 줄 아는 착각은 아닌가? 의문 부호가 따라 온다.

인간이 아무리 ‘박학’, ‘다식’하고 ‘고매하고’ 또 ‘부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존재에 비하면 극히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우쭐대지는 않았나? 더구나 글을 좀 쓴다하여 외지에 나가면 ‘신문에서 글을 잘 읽었노라’는 말에 마치 작가가 다 된 것처럼 행동했던 일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주제넘은 일들이었던가?

사도 바울은 고전3:21-23절에서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하였다.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 상황은 교회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뼈아프게 느낀 바울은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 것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자랑이란 있을 수 없다. 만약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랑이 있을 뿐 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바로 쥐꼬리만 한 지식과 명예를 자랑하지 않았던가? 때로는 신성한 강단에서 침소봉대한 적은 없었던가? 막상 남이 과장해서 간증하는 것은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그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들 이러한 착각 중에도 심각하고 두려운 착각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 재인지 모르는 것들) 부유하고 큰 교회 목회자는 작고 가난한 목회자 앞에서 상대적 의를 자랑 할 위험성이 있다.
건강하고 잘 지내는 이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 할 위험성이 있다.

현재 평안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죄가 많은 사람으로 취급 하고 자신은 의롭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라는 주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비판받지 아니하려 거든 비판하지 말라’ 예수님이 비판하지 말라고 한 것은 공평하고 온전하고 건설적인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는 냉정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용하는 법, 자신에게 비추어 볼 때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 데도 타인에게만 있는 줄 아는 심각한 착각이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3:34절에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예루살렘 사람보다 죄가 더 많은 게 아니라고 하시면서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신다.

변죽만 올리는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가슴을 치는 세리의 기도가 요구된다. 더구나 수많은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허리에 통증을 허락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밤은 깊어만 간다.

글ㅣ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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