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오 목사ㅣLCMS 한인담당 부목사   ©미국시온루터교회(LCMS)

성서에서 유대인들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모습으로 묘사된다. 구약성서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었다. 반면 신약성서에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그를 십자가형에 처한 살인자로 묘사된다.

유대인에 대한 성서의 이러한 상반된 진술은 초대교회 유대인 이해의 기초가 되었다. 이는 초대 교회의 신학을 집대성한 어거스틴(Augustine)의 진술에서 잘 드러난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유대인들에 의해 구약성서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거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장 중요한 메시아의 오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자비의 은혜를 교회에게 보여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도 '저들의 넘어짐은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음을 의미한다(롬 11:11)"고 말한다. 유대인에 대해 비우호적인 어거스틴 전통은 중세 시대에도 계속되어 당대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살인자로, 거부된 자로, 자신들의 악한 목적을 위해 기독교인 아이들을 살해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루터 역시 이러한 기독교 전통 안에서 살아왔다.

그의 생애 초기 유대인에 대한 이러한 비우호적인 유산을 물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그들을 친절하게 대해야 하고, 그들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등 매우 우호적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기독교로 회심할 가능성도 있다고 믿었다. 루터의 이러한 이해는 1532년 출간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나셨다"(That Jesus Christ Was Born a Jew)에 나타난다.

여기서 루터는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회심할 것이라고 희망했다. 루터에게 있어 구원은 오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에 달려있는데 유대주의 추종자들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없다. 그래서 만일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친다면, 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이 되고, 그들의 아버지와 예언자와 족장들의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리아 찬가'(Maginificant)에 대한 주해에서도 루터는 "유대인들 가운데 미래의 기독교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친절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고 말했다.

초기(1536년까지) 유대인에 대한 이러한 우호적인 태도는 그의 생애 후기에 접어 들면서 정반대로 바뀐다. 루터는 유대인들을 급기야 악마로 표현하며, 그들을 박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1543년에 저술한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하여"(On the Jews and Their Lies)에서 다음과 같이 유대인을 다루도록 세속 당국자들에게 강하게 권고한다.

"그들의(유대인들의) 회당과 학교는 불태워야만 한다. 그들의 집은 파괴되어야만 한다. 그들의 모든 기도서들, 탈무드 저작들을 빼앗아야만 한다. ... 고리대금업을 금지시키고 돈을 빼앗아야만 한다. ... 이러한 권고를 시행하는 것이 세속 당국자들의 의무이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해 가르칠 의무가 있다."

유대인에 대한 루터의 이러한 급진적인 주장은 19세기 들어 독일 나치(Nazi)의 유대인 학살과 연관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마치 루터가 독일과 유럽 사회에 불어 닥친 반 유대주의(anti-semetism) 및 나치의 600만 학살(Holocaust)의 사상적 근원을 제기한 장본인으로 오도되기도 했다.

신학자들은 유대인에 대한 후기 루터의 이러한 급진적인 주장을 변호하고자 했다. 교회역사가이자 예일 대학 교수였던 롤란드 베인튼(Roland Bainton)은 유대인에 대한 루터의 이러한 입장은 "전적으로 종교적이지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성공회 루터란 학자인 고든 룹(Gorden Rupp)도 "중세 후기 가톨릭 교회 내에 반 유대인 정서가 팽배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박고도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와 기독교 사회의 한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비난하고 있었다. 루터는 단지 이러한 유대인에 대한 당대의 정서를 표현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고 말한다. 여기에 덧붙여 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와 히틀러 사이의 연관성은 없다. 나는 히틀러 루터의 저술을 읽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며 유대인을 향한 루터의 적개심은 나치의 인종차별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학자들은 루터의 이러한 급진적 태도가 로마 가톨릭, 터키인, 유대인 등 그가 냉대했던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묵시문학을 사용했을 때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버드 대학 교수인 에드워드(Mark Edward)는 "루터는 교황을 성서에서 묘사하는 적그리스도로, 터키를 곡으로(Gog: 마곡 땅의 통치자로 에스겔 38~39장에서 악의 세력의 지도자로 나타난다-필자 주), 유대인을 하나님의 분노 아래에서 거부된 자들로 분류한다. ... 루터가 가톨릭, 터키인들, 유대인들, 그리고 '열광주의자들'을 비난할 때, 그는 단지 사람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거짓된 교회 안에 숨어 이러한 적대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사탄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학자들이 루터의 입장을 변호하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세계 루터교회는 후기 루터의 유대인에 대한 급진적 태도에 대해 반성하고 유대 공동체와의 협력을 모색하고자 노력했다. 그 첫 단계로 루터교 세계 연맹(Lutheran World Federation)과 국제 유대교 위원회(International Jewish Committee)는 1981년 상호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1983년 루터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루터, 루터란이즘, 그리고 유대인들"(Luther, Lutheranism, and the Jews) 이라는 제목 하에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위로하고 인종과 종교의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 상호 노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 결의문을 채택했다. 1988년 LWF는 "유대교와 기독교 대화를 위한 에큐메니컬 성찰" (Ecumenical Consideration on Jewish Dialogue)이라는 문서에서 "일부 기독교 전통에서 유대인과 유대교를 경멸하는 가르침이 있어왔음을 인정하고, 교회가 다시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바른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을 배워야 한다고"고 말했다.

이러한 반성은 미국 루터교회 내에서도 일어났다. 1983년 미국 루터교회(LCMS)는 "유대인에 대한 적의적 태도"에 유감을 표명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CLA)는 '유대교 공동체를 위한 선언문(Declaration to the Jewish Community)에서 루터의 반 유대주의 견해를 공적으로 인정하고, 수세기 동안 자행된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폭력에 기독교가 연루된 데 대해 회개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사랑과 존경에 기초해서 유대인들과의 연관성을 만들어가기로 결의했다.

물론 유대인에 대한 후기 루터의 이러한 태도에 다소 실망스러운 점이 있다. 종교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복음에 대한 루터의 확신도 점점 더 굳건해져 갔고, 그럴수록 복음을 따르지 않은 자들, 가령 가톨릭, 터키인들, 유대인들과 열광주의자들에 대한 분노와 실망도 더 해져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유대인 이해로부터 한 가지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또한 참된 복음 위에 서지 않을 때 유대인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오고, 오직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시는 은혜로만 구원 받음을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구원의 은혜를 거부하고, 우리의 행위로 구원 받으려 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외면하고 탐욕을 행할 때, 우리도 유대인처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가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들일지, 아니면 예수를 죽인 살인자가 될지는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올바른 복음을 믿고 따르는데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인 정진오 목사는 루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Research Fellow와 예일 신학대학원 Visiting Scholar를 거쳐 현재 미국 시온루터교회(LCMS) 부목사 및 한인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연락은 전화 618-920-9311 또는 jjeong@zionbelleville.org 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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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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