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머리말

케직운동의 영성은 영국 서북부 지방에서 개혁신앙의 유산을 가진 목회자와 신학자들 중심으로 시작된 성결운동으로 웨슬리의 영향도 받았으나 개혁신앙의 바탕에서 그가 주장한 완전주의는 받아들이지 않은 개혁신앙 전통에 서 있는 성결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에서 1870년 들어 성결운동이 쇠퇴하게 되자 보드먼(W. E. Boardman)과 스미스의 주도로 성경연구(Bible Study)와 성결(holiness)을 강조하는 집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고상한 생활운동이 시작되었다. 영국 서북부 지역 컴브리아(Cumbria)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자랑하는 자그마한 마을 케직(Keswick)에서 "성경적 성결의 증진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 연례 천막집회로 1875년 시작된 케직 운동은 141년 동안 영국 및 전 세계 교회에 영적 활력을 제공해 온 전통적인 부흥운동이다.

 케직 사경회(Keswick Convention, 1875)는 개인적인 성경을 위한 운동을 만들어 냈다. 케직 사경회는 성결과 봉사를 위한 초교파적 모임이었으나 이를 주도한 목회자들은 대부분 개혁신앙을 토대로 한 영국 성공회 소속의 목회자들이었다.

1. 말씀을 사모하는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141년의 역사가 지났어도 그 말씀은 변함없이 전파되고 있다. 케직 사경회는 누구나 성령의 감동으로 열려있는 강단이라고 생각한다. 무디(D. L. Moody, 1837.~1899)도 평신도(구두수선공)에 불과했으나 성령의 충만을 받고 시카고에서부터 미국 전역과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수백만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존 웨슬리(1703~1791)는 영국을 영국되게 한 복음전도자였다. 이렇듯 영국은 미국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여서 교회가 세워지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케직 운동은 지난 141년 동안 영국은 물론 세계교회에 영적 활력소를 제공해 온 전통 있는 부흥운동으로 “성경적 성결”을 주제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를 표어로 삼고 있다. 설교자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경청하고자 한다. “성경적인 성결”, “성경적인 헌신의 삶”과 “그리스도 안에 하나됨”을 강조한다.

2. 지금 영국은 복음의 위기에 접해있다.

2005년 7월 영국 런던 한복판에 테러가 있었다. 그것은 엘더스게잇의 열차 폭발 테러였다. 이는 영국에 이슬람교가 세력을 얻게 되면서 과격한 이슬람교도에 의한 폭력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영국인들이 복음을 떠난 데 대한 주님의 심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6년 현재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유럽의 복지제도가 이슬람 테러범들의 생계수단이 되고 있다. IS 추종과 테러를 선동한 이슬람 성직자가 영국 정부로부터 매년 3천만 원의 실업수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에서 가장 악명높은 급진 이슬람 성직자 안셈 초다리는 "미국과 오바마 대통령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집회와 온라인을 통해 극단주의 무장세력 IS 추종을 선동하고 지하디스트를 양성한 혐의로 징역 5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9·11 테러 기념일에 미국 대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불태워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가 주도한 과격 시위에 참여한 뒤 테러에 나서거나 IS를 지지하게 된 인물이 1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런던 경찰청 대테러본부의 딘 헤이든 총경은 그가 "테러조직 지원을 선동했다. 수많은 테러활동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테러 선동가의 생활비는 1년에 2만 파운드, 영국 정부가 준 실업수당이었다. 지난 20년간 50만 파운드, 우리 돈 7억 3천만 원을 챙긴 초다리는 실업수당을 '지하드 수당 즉 성전 수당'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교회들이 술집으로 변하고 스코틀랜드의 성스러운 건물들이 스탠드 바로 변하고 있다. 이제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는 너무 분명하다. 이런 어두움 가운데서도 약하지만 빛을 비추는 케직 사경회야말로 영국 교회의 그루터기라도 할 수 있다. 초라한 도시에 불과한 케직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용한 말씀운동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3. 존 스토트 목사도 케직 운동에서 은퇴하고 별세했다

유명한 선교학자요 복음전도자인 존 스토트(1921~2005)는 2005년 케직 사경회에서 마지막 말씀을 전하고 은퇴했다. 그리고 그는 2005년 별세했다. 복음주의의 '교황'이라는 별명에 어울릴듯한 그의 생애는 말씀과 복음으로 지탱되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권위나 교리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케직 운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오늘날 탈기독교화되고 있는 영국과 세계기독교를 향하여 케직 운동은 141년전 시작 때보다 오늘날 더 절실해지고 있다. 전 세계기독교가 말씀을 묵상하고 내면성의 경건으로 되돌아 가는 운동을 일으킬 것을 요청받고 있다.

4. 한국교회와의 관계

한국복음주의 운동은 김명혁 박사가 밑걸음이 되어 정진경, 박종렬, 김준곤, 김창인, 이만신, 조종남 목사 등이 앞장서서 교회의 정치화, 세속화에 반대하여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를 만들기 위하여 시작하였다.
이는 1970년대에 확산된 급진적 자유주의 신학이 한편으로는 사회비판의 기능을 하였으나 다른편으로는 너무 세속화 되어, 기독교의 영성을 상실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직운동은 오늘날에도 축복과 성공과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성결한 삶과 헌신을 기원하는 것이다.

케직 영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성경적인 삶” 특히 “성경적인 성결”과 “성경적인 헌신의 삶”을 강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강조하는 매우 귀중한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영성이었다. 초기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들이 강조했던 그런 영성이다

한경직은 제1회 서울 케직사경회에서 첫째는 성경 중심의 신앙, 둘째는 성경 중심의 생활, 셋째는 성경 중심의 설교, 넷째는 성경 중심의 심방, 다섯째는 성경 중심의 교회 행정, 여섯째는 성경 중심의 교회 사업을 강조하였다.

맺음말

오늘날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성결”과 “헌신”과 “하나됨”의 영성을 많이 상실하고 불결하고 분열된 모습들을 지니게 된 것은 너무 부끄럽고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서 “성결과 헌신의 삶”을 사는데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면서 교회 성장에 몰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케직영성은 개혁주의 영성을 한국교회에 구현하고자하는 기독교학술원이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계승하고 발전시켜야할 위대한 유산이다.

/글=기독교학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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