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2시부터 신촌성결교회(담임 이정익 목사) 성봉채플 채움 3실에서 케리그마신학연구원 논문발표회에서 이윤석 목사가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오상아 기자

케리그마신학연구원(원장 김재진 박사)이 창립 19주년을 맞아 본 회퍼와 같은 젊은 한국 신학자 양성을 취지로 진행한 '교회를 위한 바른 신학 컨퍼런스'를 위해 모집한 논문 중에서 이윤석 목사가 쓴 '칼 바르트 예정론의 신학적 특징'이 채택됐다.

18일 오후 2시부터 신촌성결교회(담임 이정익 목사) 성봉채플 채움 3실에서 이윤석 목사(길교회 담임, 장신대 박사과정)는 논문을 발표하며 "예정론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며 "오늘 이 시대 교회들은 말씀이 아닌 다른 전제로부터 출발한 예정론에 근거해 있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다른 전제에 해당되는 사안으로는 교회 전통, 실천적 유용성, 인간의 경험, 추상적인 절대 의지에 근거되어 있는 예정론을 들 수 있다"며 "예정론이 실용적 관점에 근거를 둔다면 각자의 실용적 관점에 따라 예정론에 두는 가치가 다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선택과 버림에 대한 인간적 경험에 상응하는 전제를 가지고 성서를 경험적 사실에 대한 사후적 적용으로 취한다면 그 판단은 인간의 판단에 불과한 것이 된다"며 "예정에 대한 판단은 우리 인간의 경험 영역이 아니라 오직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서가 말하는 예정론은 예정은 개인의 삶을 규정하지만 인간의 판단에 따라 각 개인이 이미 선택 혹은 버림받은 자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며 "또 하나님을 절대 통치자와 같은 추상적인 법칙으로 여겨 예정론을 이해한다면 성서가 말하는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사변적인 예정론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르트는 이런 예정론의 오류에 빠져 있는 현대 교회의 상태를 정서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규정하시는 하나님을 말하며, 예정론적 근거를 성서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안착시키고 있다"며 "바르트는 예정하시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예정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정론이 시작되고 마쳐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소개했다.

이윤석 목사는 바르트가 주장하는 예정론에 드러난 신학적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예정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소개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은총의 선택'으로서의 예정론은 용어상 올바로 인식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전통적 예정론이 갖는 모호한 인식은 '은총의 선택' 또는 '예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잘못된 연상 작용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러한 연상 작용 중에 먼저는 어떤 '격앙된 비인간성'에 대한 반감에 해당된다. 즉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기를 원하는 심리 작용 때문에 발생하는 복수심이 있다"며 "둘째로는 변증법적이고 양면적이 위협에 대한 반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버리신다는 절대 권력에 대한 반항심에서 발생된 연상이다"고 전했다.

▲한국칼바르트학회장이자 케리그마신학연구원장인 김재진 목사가 칼 바르트의 육성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소개하고 있다.   ©채경도 기자

그는 "마지막으로 가장 모순된 연상 작용은 예정론이 단순히 '중립적 이론'일 뿐이라는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며 "전통적 예정론은 선한 의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모순들로 둘러 싸여 있어서 사람들이 거부할 수밖에 없는 왜곡과 혼란을 일으켜 왔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전통적 예정론의 참된 의도를 정당화하려면 '은총의 예정'이 복음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예정론의 복음은 복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면서 "예정론의 복음은 단순한 중립적 가치가 아니며 '예'와 '아니오'라는 중립적인 피안에 있지 않다. 예정론의 복음은 '아니오'가 아니라 오직 '예'이다"고 말했다.

그는 "예정론의 복음은 '예'와 '아니오'를 혼합한 유사복음이 아니라 예정론의 복음은 그 본질과 근원과 서술에 있어서 오직 '예'만을 선포하는 복음이다"고 말했다.

이윤석 목사는 '은총의 선택'이라는 예정론의 복음에 담긴 전적인 긍정을 진술한 교회사적 사례들을 소개하며 "아우구스틴은 성도들의 예정은 예지 즉 하나님의 선하신 행동을 예비하는 것인데, 그 행동에 의해 자유를 얻을 사람은 누구나 가장 확실하게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루터는 '예정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따라서 결의를 실행하시는 의지인데, 그것은 계획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의지이다라고 예정을 정의했다"며 또 "칼뱅은 말하기를 '예정은 아무런 유익이 없이 마음을 피곤하게 하는 논쟁이나 곤란한 사변이 아니라 경건훈련을 위해 매우 적절하고 유익한 고려사항으로서 오히려 신앙을 올바르게 세우고,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좋은 것들에 대해 우리가 탄복하고 깨어나 기념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슴에 새기는 저 예정이 하나님의 영원한 변하지 않는 좋은 의지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폭풍, 사탄의 어떤 조롱, 육신의 어떤 연약함에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관하여 듣는 것보다 우리의 신앙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고 소개했다.

이어 "물론 칼뱅은 어떤 관점에서는 무시무시한 법령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진술이 추가되어야 한다"며 "저 두렵게 하는 어둠으로부터 이 가르침의 유익뿐 아니라 달콤함 열매가 맺어진다. 우리가 저 영원한 예정의 소식을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긍휼의 샘으로부터 넘쳐흐른다는 것을 결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 본문들은 교회의 역사에서 발췌된 예정론의 복음에 대한 내용을 버림받음과의 관계 안에서 설명하는 동시에 긍정적인 부분들을 인용했다"며 "예정론은 선택이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그 그림자에 해당하는 유기라는 부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한 예정론의 복음에 대한 교회사적 사례들은 구원의 내용을 포함하는 복음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윤석 목사는 또 "우리는 예정론의 복음이 포함하는 선택과 관한 긍정적 측면을 온전히 이해하여야 한다"며 "루터의 신앙일치 신조는 바른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며 소개했다.

"절망의 정서를 자극하는 예정론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론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일 수 없다. 성서가 말하는 예정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회개하도록 권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권유한다"

그는 "만일 예정론이 참된 위로 대신에 절망감을 불러 일으키며 거짓된 안전감을 준다면, '예정론은 하나님의 의지에 따른 규범이 아니라 눈먼 인간의 이상적 판단에 따르고 마귀의 충동과 사주에 의해 왜곡되게 가르쳐진 것이며, 성령을 거역하여 성서를 이해하고 해석한 결과이다'"고 강조했다.

또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에게 선택과 버림의 이중 예정이라는 잘못된 예정론의 이해를 덮어씌우는 것은 아주 심각한 오해이다"며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은 잘못된 예정론을 말하지 않았지만 예정론의 복음이 담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루터파가 오해할만한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예정의 복음'에 대한 성서적 증거를 설명하며 '선택'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예정(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예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수한 축복과 선물을 더하신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성서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의 예정에 대하여 확고하게 증언하고 있다"며 "우리는 '선택'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최종적인 '예'의 선언에 해당되는 마지막 긍정으로부터 바른 개념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선택의 내용과 목적은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긍정의 말씀이다"며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긍정의 말씀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좋으신 행동들이다"고 강조했다.

또 신약성서에 여러 차례 나온 '생명책'(빌 4:3, 계 3:5, 계 17:8)에 관해 언급하며 "생명책은 오직 선택만이 기록된 한 권의 책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롬 8:28, 9:11, 엡 1:11)도 구원으로의 선택(예정)하는 것이며 선택되지 못함이나 버림받음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예정론의 복음에 대한 오해는 바로 이 '생명책'과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유기를 마치 두 개의 상호 종속된 동질과 동급의 하나님의 행위인 것처럼 말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를 마치 하나의 공통된 상위 개념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고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문제의 어둠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책 안에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는 식으로 잘못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성서가 말하는 본래적 의도와는 동떨어진 잘못된 복음 이해가 퍼지게 되어 예정의 복음이 왜곡되어 이해되었다"며 "성서적인 예정의 복음은 전적인 긍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생명책'과 '하나님의 뜻'안에는 구원을 위한 선택만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찰스 마쉬 교수의 '기이한 영광: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Strange Glory: A Life of Dietrich Bonhoeffer)'   ©자료사진

이어 이윤석 목사는 예정의 복음을 오해한 교회사적 증거들을 언급하며 "칼뱅의 예정론은 이중 예정론으로서 평행적이고 중립적이며 대칭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예정의 복음은 평행적, 중립적, 대칭적으로 이해하면 복음적 이해에서 벗어나게 된다"며 "복음적 이해는 선택과 버림, 축복과 저주를 대등하게 병렬하는 이중 예정의 구도 안에서는 올바르게 자리를 잡을 수 없다"며 그러한 병렬 구도 안에서 예정론은 중립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중립적 구도에서 말하는 예정론 이해는 하나님의 '예'와 '아니오'를 같은 수준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예' 옆에 하나님의 '아니오'를 함께 기재하는 것이 중립적인 복음 이해이다. 대칭적인 복음 이해는 하나님의 '예'에 유리한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구도 안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아니오'를 강력하게 듣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아니오'만 듣게 된다. 사람들은 긍정보다는 버림과 저주라는 부정적 측면에 훨씬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며 "사람들은 이러한 이중 예정의 구도고 인해 예정을 하나의 복음이 아니라 두 개의 복음으로 이해하고 경악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예정의 복음을 '나쁜 소식'으로 이해하고 내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거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예정의 정의에 있어 1619년 도르트레히트(Drdrecht) 공회의 고백서가 뚜렷한 장점을 갖고 있다며 "이 고백서는 예정을 설명할 때 하나님의 유기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예정은 유기를 어떤 독립적인 진리로써 포함하고 있지 않고, 예정 곁에 유기가 있는 것으로 보지도 않으며, 오히려 선택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말하면서 긍정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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