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사장
기독일보 사장 김광수 장로

서양 수학이 '없음'을 뜻하는 숫자 '0'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인류의 역사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기에 이미 곱셈을 위한 구구단이 존재했고, 나일강의 홍수를 겪으며 측량을 위한 기하학도 발전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0'을 사용한 시기는 16세기경이다. 숫자 '0'의 첫 발견은 7세기 무렵 인도에서 이뤄졌다. 힌두 철학의 영향으로 '무'(無)의 개념을 쉽게 발견한 인도에서 만들어진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13세기쯤 유럽에 전해졌지만(존 그리빈, 최주연 역, 『과학의 역사 1』 에코리브르, 2005, p. 41. 참조. 주: 인도-아라비아 숫자의 완성과 사용 시기는 고증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음) '충만함의 신학'이 강조되던 십자군 시대의 기독교에서 '비어 있음'의 개념은 설 자리가 없었다. '없음-비어 있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넘어서는 다른 수준의 철학적 사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선교 1세기 만에 5,000만 국민의 20%를 개신교인으로 만들고, 전국에 6만 개에 달하는 교회당을 세운 나라,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조국의 독립운동, 근대화, 민주화, 교육·복지사업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했던 자랑스러운 기억도 남아 있다. 그리고 2016년 인구센서스 결과 기독교는 대한민국 1위 종교에 올랐다. 그러나 문제는 60% 이상의 국민이 1위 종교인 기독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 "2017 한국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목회자 및 개신교인 인식조사" 인용)

세계 선교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부흥했다고 자랑할 만한 한국교회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부흥이 세상 변화에는 복음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 수학이 '비어있음'을 받아들인 뒤에야 비로소 획기적인 문명의 발달이 이루어졌음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교회 연합기구의 통합과 존재 이유

2018년을 시작하면서 「기독교사상」은 '교회 연합기구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2018년 1월호, 권두언) 한국교회 연합기구 분열의 역사는 주지하듯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24년에 출범하여 한국교회의 대표 연합기구로 자리매김을 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1989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 등장하였다. 이 배경에는 당시 정권의 정치 목적을 위한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한기총은 내부 문제로 분열하면서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더 만들어졌다. 이렇게 나뉜 연합기구들은 교단들의 견해가 엇갈리면서 교단의 회원 가입과 탈퇴가 반복되어 계속 바뀌는 과정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교단장협의회는 2017년 가칭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을 구상하며 한국교회연합(한교연)과의 통합 추진을 선언했다. 이후 한교연이 협상 도중에 법인 명칭을 교단장협의회가 구상하던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으로 먼저 변경하면서 교단장협의회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으로 이름을 바꿔야만 했다. 두 기관의 주도권 다툼이었다. 주도권 다툼은 지난 10월말 협상대표들이 한기연의 법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공표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여기에 그동안의 부채 청산과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위한 퇴직금 정산이라는 비용 부담이 더해지자 통합 총회를 갖기로 한 합의는 불과 보름 만에 없던 얘기가 되었다.

통합선언 당시 두 단체는 "이대로 통합에 또 실패할 시, 세상은 우리를 양치기 소년으로 볼 것이다"라고 했었다. 말처럼 양치기 소년이 되어 버린 두 연합기관 통합 무산의 여파는 한기총과의 대통합도 어렵게 만든 셈이다. 더구나 한기연은 가입 교단에서 이단으로 지목한 교단이 한기총에 가입해 있는 한 통합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에 한기총은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속한 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회 연합기구 존재의 이유는 또 다시 해를 넘겨 찾아야 할 숙제로 남게 되었다.

교회 내 성 문제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성직자의 부적절한 성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가 '모해위증죄'로 기소된 목사가 법정 구속되고, 청년들에게 스타로 불리던 목사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청년 세 명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6년 형이 확정되었다. 이처럼 교회 내 성 문제가 사회 법원으로 가면 범죄 사실이 명확히 가려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어물쩍 넘어가는 사례가 많다.

'성교육'을 한다면서 복수의 여성 교인을 추행한 어떤 목사는 소속 노회에서 징계를 받지 않고 '사직'으로 마무리되었다. 교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대형교회 부목사도 총회의 헌법에 따라 해임으로 마무리되었다. 교단의 대처도 미온적이다. 미투 운동이 교회에서도 시작되었지만, 관련 처벌 규정을 만들거나 결의한 교단은 '성 윤리 강령'을 제정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관련자를 엄벌에 처하기로 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여의도총회 두 교단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논란거리인 동성애 문제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입장이 명확히 구분된다. NCCK는 지난 10월 말에 성 소수자의 인권을 배려하자는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다른 종교단체와 연대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에 비해 보수적인 연합기구들은 조직적으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기총, 한기연, 한교총, 한장총(한국장로교총연합)은 지난 8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과 차별금지법에 순교적 각오로 거부·저항할 것을 천명한다."라고 선언했다.

그동안의 조사 자료를 보면 동성애에 대한 긍정 인식률은 17.5%에서 22.8%로 증가했다. 특히 20대의 경우 2명 중 1명이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나타냈다.(한목협, 앞의 조사 결과 재인용) 때문에 보수 교단의 경계심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의 성 추문은 내부 안정을 구실로 용납하면서, 동성애 문제는 혈서까지 쓰면서 극한 저항을 선언하는 것에 대해 '자기모순'이라는 세간의 지적도 들린다.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는 교회의 탐심 '세습'

마르틴 루터의 500년 전 종교개혁 정신을 이야기하던 바로 그 주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장로교회인 명성교회가 세습을 결행했다.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2018년 한 해 동안 개혁을 표방하는 장로교회의 사유화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명성교회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되돌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새해에도 명성교회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처럼 사회 문제로 확대되는 교회 세습은 교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뤄지는가 하면 절차도 없이 교인들의 박수로 통과되기도 한다.

지난 1월 1일 교인 1만 명에 달하는 경기도 안양시의 새중앙교회는 황덕영 목사(사위)에게 세습을 감행했다. 또한 지난 2월에는 세습은 없다고 수없이 공언했던 순복음부평교회(장희열 목사)가 '사위 세습'을 확정했다. 교인들이 다 모이는 시간이 아닌 금요일 철야예배 시간에 사위 이기성 목사를 단상에 세운 뒤 발표하고, 교인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공동의회는 열리지도 않았다.

지난 10월에는 해오름교회(예장 백석대신)가 교회를 개척한 최낙중 목사의 둘째 아들 최진수 목사를 2대 담임목사로 세웠다. 청빙 안건이 공동의회에서 두 차례나 부결되었지만, 당회는 끝까지 밀어붙여 세 번 만에 청빙안을 통과시켰다. 최낙중 목사는 무리수라는 비판에 대해 "담임목사 청빙은 개 교회 권한이며 세습을 비난하면 안 된다."라고 항변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담임목사가 되고, 다시 그 동생이 담임목사가 된 교회도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시은소교회(예장 합동)이다. 시은소교회는 1975년 김성길 원로목사가 개척해 지금은 3,000여 명이 출석하는 대형 교회이다.

심지어 교단장까지 지낸 목회자의 교회 세습도 모두 58곳으로 확인된다. 이 가운데는 세습 금지 규정이 없는 기독교대한침례회가 11곳으로 가장 많고, 예성 7곳, 합동 6곳이며, 세습 금지 규정이 만들어진 기감도 6곳, 통합도 2곳이다.(교회세습반대운동연합 집계)

세습한 교회를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 교회 비중이 높다. 경기도(29.3%), 서울(26.4%), 인천(14.2%) 순이다. 교회 세습과 재정 상태의 연관성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교회 세습은 탐심에서 비롯된 '사유화', 중세기적 '왕국화'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역사적 교회인 새문안교회와 영락교회, 연동교회는 물론 3대 담임으로 이어지는 소망교회도 새로운 담임목사가 부임했지만, 세습은 상상 속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 신정동 목민교회는 지난 9월 '담임목사 청빙'을 공고하면서 이미 위임목사로 시무 중인 목사의 지원은 사절한다고 한 것이 이슈가 되었다. 다른 교회에 대한 배려였다. 또한 교인 1,000명이 모이자 교인들 간의 더 깊은 관계를 위해 5개로 분리 독립하는 교회도 있었다. 서울 대광고등학교에 있는 나들목교회(김형국 목사)이다.

교회의 공공성과 3·1절 100주년

한국교회의 신뢰도 하락의 원인으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실패'가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특히 한국교회가 도덕성을 잃게 된 것은 신앙의 무속화, 자본주의적 경쟁, 차세(此世) 중심적 세계관 때문이라고 손봉호 교수는 오래 전부터 제기하였다.(「기독일보」, 2014년 3월 22일 보도 재인용) 여기에서 '차세적'이란 교회와 성도의 세속적 경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성장주의의 번영신학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공적(公共的)이어야 할 교회, 한국교회에 '탐심'(貪心)이 자라난 배경이다.

서양 수학이 숫자 '0'을 사용한 것은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음에 주목하고 죽음에서 깨어나는" 신학적 각성에서 비롯되었다. 비로소 '없음'의 개념을 이해하고, 이슬람 전파라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받아들인 숫자 '0'은 그리스, 아랍의 문헌 번역작업과 상호 작용함으로써 수학은 물론 과학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문명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2019년은 마침 3·1절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 교단은 신년사에서 "2019년에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절을 계기로 삼일정신을 되살리자."라고 말했다. "1919년 당시 기독교인이 1.3%에 불과했지만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투옥된 9,458명 중 2,087명(22%)이 기독교인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정의(正義)와 공공(公共)을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기독교인의 덕목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2019년 새해에는 서양 수학이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음'에 주목했던 것처럼, '공심'(公心)으로 협력하는 교회 연합기구와 기관, 단체, 그리고 한국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 위 내용은 <기독교사상. 2018년 12월 호, 통권 720호>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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