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금년 5월 5일은 제95주년 어린이 날이다. 올해도 세계 16개국 12개국 아이들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최하위였다고 한다. '외모'에 대한 불만이 12세들의 행복도를 끌어 내렸다고 한다. 외모 중시의 풍토가 아이들 행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를 향한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예수께서 자신에게 데리고 오는 아이들을 제자들이 꾸짖는 것을 보시고 노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 10:14-16).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에 분노하셨다. 예수께서 어린이를 존중하는 모범을 보여주신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어린이들은 늘 기아와 질병의 최전선에서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타를 비롯한 각종 학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심지어 어른들이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매매의 수단으로까지 여겨졌다. 오늘날은 어린이를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어린이 학대 이야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정말 어린이 존중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혹시 제도적 보호로부터 유기된 어린이들은 없는가? 하는 고민을 하도록 만든다. 오늘 우리는 1957년 아동문학가 마해송, 강소천 등 7인이 발표한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反芻)하도록 하는 귀중한 역사적 유산이다. 샬롬나비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다음 네가지 명제를 천명하고자 한다.

1. 어린이는 인격체로서 존중하여야 하며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소파 방정환이 만든 "어린이"라는 말에는 "아이를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훗날 유명한 동시인이 된 윤석중 선생은 어린 시절 어느 날 방정환 선생의 뒤를 따라갔을 때, 방정환 선생께서 뒤 돌아보며 "왜 저를 따라오시는 거죠?"라며 존댓말을 하셔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이렇듯 어린이 존중의 실천은 언어에서 시작된다. 존중하는 말을 듣고 자란 어린이들이 자신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게 된다. "비방을 받으며 자란 어린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적대와 미움을 받고 자란 어린이는 적대와 증오를 배우지만, 격려 받으며 자란 어린이는 신뢰를 배우고, 칭찬 받으며 자란 어린이는 감사하는 마음을 배운다"는 도로시 놀트(Dorothy Law Nolte)의 문장은 어린이 양육의 핵심을 교훈해준다. 존중의 언어를 듣고 자란 어린이가 장차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사랑하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자.

2. 어린이는 튼튼하게 낳아 가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어린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서 부모에 위탁된 존재로서 가정에서 보호를 받으며 따뜻하게 자라야 한다. 작년에 발생한 "원영이 사건"은 어린이 인권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건이었다. 원영이는 만 4세도 되지 않은 2013년 10살 된 누나와 함께 친모의 품을 떠나 양육권을 획득한 친부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대변을 잘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계모에게 온갖 학대를 받은 끝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어린이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는 고사하고 성인도 버티기 어려운 처참한 학대를 당하다가 4년도 되지 않은 짧은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소견에 따르면 숨질 당시 원영이의 몸무게는 15.3 kg, 키는 112.5cm에 불과했다다. 또래 성장치 보다 키 9cm, 몸무게 9.1kg이 미달된 저성장 상태였다. 친부의 월수입이 5백만원이었으나 친부의 무관심과 계모의 학대 속에서 죽어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제2의 원영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원론적 제안 두 가지를 할 수 있다. 첫째, 부모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혼이 최후의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쉬운 수단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이 말은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남녀 당사자에게 이혼은 서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자녀들에게는 말 할 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어린이들에게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가에서 미취학 어린이들의 실태를 조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국가의 보호로부터 사각지대에 있는 어린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지역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짐으로써 보호 사각지대에 있는 어린이들을 찾아 국가와 지역의 보호를 받도록 도와야 한다.

3.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하고,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여러 곳을 다녀야 하고 저녁 식사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해결하며, 거의 자정이 되어야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것이 요즘 어린이들의 현실이다. 1995년 가수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Childhood)이라는 노래"를 발표하며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반추한 적이 있다. 그는 가수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불행한 일생을 살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과 오늘날 우리 어린이들의 현실에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자녀들이 행복한 삶을 포기하는 대가로 성공을 거두도록 강요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자녀들이 장차 성공한 삶 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어느 미국인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백인 아이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자신의 답안지를 가리려고 하였지만, 같은 반에 있던 인디언 아이들은 둘러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백인 어린이들에게 시험은 "다른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었지만, 인디언 어린이들에게 시험은 "서로 둘러앉아 대화함으로써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인디언 어린이의 대화 모습은 한국 어린이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가정은 자녀들에게 서로 도움으로써 어려움을 해결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4.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공으로서 위험한 때에 맨 먼저 구출되어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어린이 우선"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건이었다. "학생들은 나오지 말고 안전한 객실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어른의 목소리를 방송으로 들으면서 학생들은 차분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어른들의 약속을 믿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구조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는가? 구조된 사람은 몇몇 어른들 뿐이었다. 어른들의 당부를 믿고 기다린 학생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선실 내에서는 미래의 주인공들이 두려움에 울부짖으며 죽어갔다. 팽목항에서는 자식을 살리지 못한 부모들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이념문제로 몰고 가며 진실 규명을 소홀히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 부재와 구조적 부패 속에서 소중한 생명들이 죽어간 사건이다. 정부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철저히 하고 재난 구조 시스템 또한 철저히 보완함으로써 더 이상 미래의 주인공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재난시 "어린이 우선"이라는 절차가 맞이하여 우리 정부당국자들, 우리 사회 각 기관, 우리 가정과 어른들의 뇌리에 다시한번 깊이 새겨지기를 바란다.

2017년 5월 3일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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