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신학 단상' 은 평신도들의 신학적 소양 함양을 위해 국내 신학자 및 목회자들의 발제문을 뽑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2월에 열린 한국실천신학회 제20회 정기총회 및 제55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신학자들의 논문을 일부 연재합니다. 첫 순서로 이화여자대학교 윤은주 박사의 '한국사회의 융합과 통섭' 관련 논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윤은주 박사ㅣ이화여자대학교

3. 한국교회의 북한인권운동
인권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로 일차적으로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생존권과 신앙이나 정치적 의사표현 등 자유권을 추구하는 가운데 확립된다. 인권은 역사적으로 자유권과 사회권, 평화권 등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본 연구에서는 생존권과 자유권으로 축소시켰는데 이들 인권은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어도 어느 한 쪽의 권리만으로는 총체적 인권을 실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북한인권문제에 있어서도 동일한데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한국교회의 북한인권운동에는 생존권 보호를 위한 대북지원활동과 북한 민주화를 추구하는 북한인권법제정운동이 모두 포함된다. 대북지원에 있어서 군대전용을 우려하는 퍼주기 논란이 있는 반면 북한인권법제정운동에 대해서는 실효성 논란과 남북관계 현실론의 문제제기가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백안시하는 일은 인권추구의 원칙에서 어긋난다. 본 절에서는 한국사회 인권운동이 민주화운동과 통일선교로 확장되었던 사례와 마찬가지로 북한인권 추구가 북한민주화운동과 통일선교로 이어지는 원리를 밝히고 분단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선교가 갖는 공통된 목표를 찾아보고자 한다.

1) 북한인권운동
◆ 대북지원 = 한국교회의 대북지원은 전문적인 대북지원NGO를 통해 이루어지거나 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같은 연합기구, 혹은 개별 교단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 처음 시작은 1990년 3월 사랑의쌀나누기운동이라 할 수 있는데 북한으로 직접 전달되지 못하고 홍콩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쌀 1만 가마가 전달되었다. 1993년 4월 27일에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남북나눔운동이 설립되었고 1994년부터 본격적인 지원활동을 하였다. 이후 1998년 민간 대북지원 활성화 조치, 1999년 민간단체 대북지원 창구다원화 조치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북정책에 힘입어 한국교회의 대북지원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시기별로 보면 1990년부터 현재까지 4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1990년부터 1995년까지를 초창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 영향으로 민간차원의 남북관계에 물꼬가 트이고 소련의 개혁개방조치와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등 냉전질서가 허물어져 가는 가운데 정부의 공식 승인 하에 남북교회가 교류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1991년 곽선희 소망교회 목사방북에 이어 1992년에는 NCCK 권호경 총무가 방북하여 남북교회 교류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남북나눔운동, 한민족복지재단,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등 전문적인 대북NGO들과 기장 등 교단차원에서 대북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대북지원 확산기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 김일성 사망 이후 연속적인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대량아사가 발생하고 전염병이 확산되는 등 최대 위기의 시기였다. 국제기구들의 대북지원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한 민간지원이 이루어졌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진 창구다원화 조치는 다양한 대북지원주체들의 출범 배경이 되었다. NCCK, 한기총, 복음주의협의회 등 연합단체들과 기장을 비롯한 기감, 예장통합 등 교단차원에서 대북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유진벨재단, C.C.C.북한젖염소보내기운동 등이 대북지원NGO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는 두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과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를 계기로 대규모 대북지원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장기에 걸친 대북지원 결과 긴급구호 일색의 지원으로부터 지역별 개발지원사업으로 대북지원이 본격화되는 분화기라고 할 수 있다. 식량난과 자연재해로 인한 긴급구호가 여전히 요청되는 상황에서 주택개량, 마을회관, 창고, 텃밭, 편의시설, 빵공장 등 마을개발사업과 의료보건 및 교육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협동농장 개발사업도 이루어져 종자개발, 유제품 생산 등이 이루어졌다. 교단 차원에서는 예장통합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주도로 평양신학원 교육관 건축과 봉수교회 온실설립이 이루어졌다. 2008년에는 봉수교회가 증축되기도 했다. 기감에서도 평양신학원의 운영을 지원하고 가정교회, 농장, 공장 등을 지원하였고 2007년 총회에서는 칠골교회 재건축을 의결하기도 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이하 기하성)는 NCCK를 통한 지원이나 자체적인 NGO 굿피플을 통해 지원하거나 직접적으로 조용기심장병원 공사를 시작하였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는 정체기로 나눌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비판하며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후보시절부터 기존의 대북정책 전환을 공언했다. 취임 이후에는 2008년 7월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과 2009년 5월 북한의 제2차 핵실험,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등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특히 5.24조치로 인해 남북교류가 극히 제한되자 대북지원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또한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남북관계는 더욱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정부차원의 대북지원이 급격히 감소함과 더불어 교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거둔 지원금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대북지원 사업은 현재 최대의 위기국면을 겪고 있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간 신뢰프로세스를 진행하겠다는 공언이 있었지만 5.24조치가 여전한 가운데 민간차원의 남북교류 역시 정체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 북한인권법제정 = 2004년 10월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발효된 이후 12월 워싱턴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국내에서도 한기총과 기독교사회책임 등 보수적 개신교 단체들에 의한 북한인권법 제정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인도적 지원과 탈북자 난민지위인정, 북한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지원, 외부세계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 지원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NCCK는 2005년 6월 13일 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법 결의문을 발표하였는데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민간 비영리기관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외부행위자를 통해 북한 체제 변화를 꾀하기 때문에 주권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을 폈다. 또한 대북 인도적 지원에 있어서 감시와 접근성을 향상시킬 것을 조건으로 한 규정이 현실적인 지원을 불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고 하여 반대 입장을 표하였다. 아울러 분단 상황을 고려하여 평화권과 민족자주권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미국의 북한인권법과 유사한 법안을 추진중이었던 한기총과 기독교사회책임의 입장과 대립되는 주장이었는데 12월 1일 한기총과 NCCK의 토론회에서 이러한 입장 차이가 확인되었다.

이에 한기총은 북한동포의 인권과 지유를 위한 정책세미나를 연이어 열고 인권과 평화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북한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인권보다 평화정착이 우선'이라는 교회협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북한인권법제정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것은 2010년 9월 10일 북한인권법제정을위한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면서부터이다. 한기총, 기독교사회책임,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모퉁이돌선교회, 기독탈북인연합, 부산기독교총연합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등 보수적 개신교단체들이 중심이 되었다. 이 단체 사무총장을 맡은 정베드로 목사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해 기독교사회책임의 김규호 목사, 서경석 목사와 협력하며 국회의원 190명의 지지 서명을 얻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2011년 3월 17일에는 북한의 종교자유와 인권회복을 위한 국제기독교기구가 설립되었다. 종교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자유권운동을 위해 시작되었는데 성경을 소지하거나 개신교인과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지는 북한 현실에 우려를 표하며 국내 교회뿐만 아니라 해외 한인교회들 포함하여 국내 교역자 38명과 미주한인교회 교역자 16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2012년 6월 21일에는 탈북난민과 북한구원을 위한 한국교회연합(탈북교연)이 창립되었고 10월에 열린 특별기도회를 개최하면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북한인권법제정을 위한 운동은 이후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기독교유권자연맹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북한정의연대 대표 정베드로 목사, 선민네트워크 대표 김규호 목사 등이 중심이 되었다. 출범 선언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운동의 목적은 특정 법안을 지지하는 개신교 유권자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기독 국회의원들이 전체 의원의 3분의 1이나 되면서도 개원 초기부터 한국교회가 강력하게 요구했던 북한인권법, 사학진흥법 등은 아직도 표류하고 있으며, 수쿠크법을 비롯해 국가와 사회에 혼란을 가져올 악법들은 아무런 여과 없이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다수 기독 국회의원들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유권자연맹은 "뜻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기독 정치인들의 국가관, 윤리관, 신앙관을 점검하고 그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가를 검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2012년 3월 26일 구성된 한국기독교공공정책위원회 역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각 정당에 북한인권법 제정을 요구하는 등 여론 형성을 통해 정치운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 시기 북한인권법제정운동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법안통과를 위한 여론을 형성하는 정치운동으로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통일선교와의 관련성
◆ 북한인권과 민주화 =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가 정치화 하며 북한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유엔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발효시킨 2004년부터이다. 유엔에서는 1993년 제49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부터 북한인권 실태에 우려를 표명해왔는데 1997년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4개항의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북한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탈퇴한다고 선언했지만 유엔이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 2003년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부터 3년 연속 대북인권결의안이 채택되었고 2004년에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임명되었다. 이와 더불어 2004년 10월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발효되자 국내에서도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그러나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유엔총회에서 지속적으로 대북인권결의안이 통과되었으나 북한당국은 이를 정치적 공세로 일축하며 외부세력의 위협에 대한 체제방어논리로 맞서고 있다. 2014년 11월에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는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울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북한정부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인권보장 실효성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국제사회 다양한 행위자들의 북한인권 개선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상황이 전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첫째 외부 행위자들에 의한 북한인권개선 노력의 한계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북한인권에 있어서 보호 당사자는 누구보다도 북한주민들이다. 또한 북한당국에게는 국가의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주민들의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개선해나가야 하는 일차적인 의무가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북한정부와의 협력이 이루어지거나 북한주민들과의 직접적인 관계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국제인권레짐을 통해서는 북한당국에 대한 인권보호를 강제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ICC에 북한인권책임자를 제소하는 방식도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이지 않다. 미국과 유럽연합 차원에서의 제제 역시 직접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외부행위자들에 의한 북한인권개선 움직임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현실은 지난 10년 넘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둘째, 북한당국의 인권인식에 대한 한계문제가 있다.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인권문제제기를 국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며 '인권은 곧 국권이다'는 자주성 테제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인권정책에 대해서는, 이라크 전쟁에서와 같이, 적대국에 대한 체제붕괴 혹은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가의 자주권이 상실되면 인권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에 입각해서 체제안보의 관점으로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수령제에 입각한 동심원적 사회구조와 가부장적 정치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북한의 사회구성체 특성상 이 같은 논리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강력한 체제유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또한 집단주의적이고 계급적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헌법은 북한당국이 내세우는 '우리식 인권'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정권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의 인권의식에 있어서도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추구하는 개인적 인권추구를 상정할 수 없고 서구적 인권관에서 볼 때 여전히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북한의 인권의식이 단시일 내에 변화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정권이 내세우는 안보논리를 무력화하려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같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간차원에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동하기 원한다면 한국교회가 장기에 걸친 대북지원과정에서 형성한 직접 교류방식을 더욱 개발하여 접촉을 통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셋째, 북한주민들이 중심이 된 시민사회의 존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이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를 체제안보와 관련된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주민들의 개별적 인권의식 역시 분절화 되어 있거나 조직적이지 못하다. 북한의 국가적 운명을 결정할 권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있다. 북한주민들에 의한 자발적 민주화노력을 통해 인권개선이 이루어져야 함은 민주주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탈북민 인권의식조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북한주민들은 인권에 대한 개념형성이 미비할 뿐 아니라 공론장 또한 형성되어 있지 않다. 북한이 폐쇄적인 사회체제를 고수하면 할수록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시민사회는 출현하기 어려운 형편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탈북민 증가와 더불어 외부세계의 직접적인 영향이 늘어나고 있지만 북한정권은 여전히 3대 세습을 유지할 수 있는 통제력을 지니고 있다. 북한주민들에 의한 자발적 인권추구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한 정보가 공급되어야 하고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물적 토대가 갖추어져야 한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이 같은 목적으로 관련 단체 지원을 위한 예산을 배정해 놓고 있다. 우리도 국회에 유사한 내용을 담은 북한인권법안이 상정되곤 했지만 아직까지도 법제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정치적 반발을 사기 마련인 법안통과가 여야를 불문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 싼 국제관계의 복잡한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대북전단지 살포를 전담하는 북한인권단체들의 활동이 해당 지역의 안보에 또 다른 위협이 되면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는 부작용도 감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북한인권문제의 근본 해법은, 국제사회 행위자들의 많은 관심과 노력과는 별개로, 궁극적으로 북한정권과 북한주민들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문화라 할지라도 강제로 이식할 수 있는 능력과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당한 행위자 문제와 관련, 누구보다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사회는 분단의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남북한주민들의 평화권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북한인권을 다룰 수 있다.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남북한주민들의 인권을 동시에 추구하며 북한인권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간이 주도하는 인도주의적 접근은 인권문제의 정치화로 반발하는 북한당국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 북한을 어떤 상대로 보는가에 대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 '적과 동포'의 이중 정체성이 병립하는 가운데 국내 정치의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북관 태도 여하가 긴밀하게 조응하며 정치적 배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한반도 전체차원의 인권을 고려함과 동시에 분단구조를 변화시켜나가는 통일선교 관점에서 남북한 인권과 통일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과거의 예에서 보듯 남북한 정권이 공통적으로 체제안보를 최우선시 하며 냉전시대의 논리를 지속하려 때 이를 뛰어 넘는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민족 화합을 도모하는 역할이 교회에 요청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III. 나가는 글

남북의 분단은 남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한계상황이다. 해방과 분단 70년 동안 민족의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지불한 사회적 비용은 상상할 수 없이 막대한 수치일 것이다. 1970년대 인권운동이 분단 해소를 위한 통일운동으로 이어진 배경에는 정권유지를 위해 안보담론을 내세우며 독재를 정당화했던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의지가 있었다. 남한 주민들의 인권의식이 각성되고 발달하자 분단구조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엄혹한 이데올로기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를 이룩해냈던 시민사회의 힘은 통일운동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진보적 선교활동은 무엇보다도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북한인권과 관련해서 한국의 보수적 교회들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 대결주의를 극복하며 대북지원에 앞장서 왔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일회성 지원이 아닌 장기적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전문적 지원사업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권 운동에 있어서도, 비록 국내의 정치적 당파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국제사회와 국내에서 일관되게 문제를 제기해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진보적 입장에서나 보수적 입장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접근하며 각기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인권의 불가분성과 상호보완성을 고려할 때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의 접근은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에 모아져야 한다. 우리사회 인권운동을 통해 밝혀진 바와 같이 궁극적인 인권은 분단의 해소와 더불어 실현될 수 있고 이는 북한인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폐쇄적인 독재체제 하에서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인권개념조차 형성되어 있지 않은 북한주민들과의 접촉을 넓혀가는 데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통일선교적 접근은 중요하다. 민간차원에서 진행되는 종교인 간의 교류와 지원은 북한정권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며 북한주민들과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벌이고 있는 자유권 중심의 북한인권운동은 그런 면에서 한계가 있다.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들과의 직접적인 관계 형성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정권을 통하지 않고 직접교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요청된다 할 수 있다.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서만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은 피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보다 강력하게 자유권 보호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인권담론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정파적 이해득실을 우선시하는 정치권의 오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경계하며 북한주민들을 위한 북한주민들에 의한 인권개선 방법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차원에서 시작한 인권운동이 통일선교로 발전한 역사적 경험은 북한인권운동에 있어서도 교훈이 된다.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노력 역시 통일선교와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분단이 남북한인권 추구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구조적 제약을 가하는 현실임을 기억하면서 정치적 접근이 아닌 민간차원에서의 인도적 접근을 펼쳐야 한다. 남북한 정권이 독재체제를 정당화 하면서 공통적으로 활용하는 안보논리를 초월하여 남북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곧 통일선교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위해 시작된 진보적 선교활동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보수적 교회는 일반사회 보수층과 달리 소위 퍼주기 논란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하게 대북지원을 해왔다. 교류와 협력이 지속될수록 대북관에 있어서도 유연한 태도를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자유권 중심의 북한인권운동에 있어서도 보수적 교회가 다양한 현장을 바탕으로 앞장서고 있다. 인권의 총체적 성격을 고려하면서 인권운동 주체들 간에 전략적으로 역할을 분담한다면 진보적 입장과 보수적 입장의 남북한 인권운동 모두는 통일선교를 위해 소중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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