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신학단상' 은 평신도들의 신학적 소양 함양(涵養)을 위해 각종 행사 등에서 신학자 및 목회자들의 발제문을 뽑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창신교회에서 개최된 한국복음주의 실천신학회(회장 박상구 박사) 제29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발제한 웨스트민스터신대원 교수 김선일 박사의 발제논문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김선일 교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3. 선교적 교회론의 실천적 의제들

선교적 교회론이 일반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준 데에는 현장 중심적 저술가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한국에서 선교적 교회론은 상당히 구체적인 교회 사역의 모델로 먼저 소개되었다. 마이클 프로스트와 앨런 허쉬는 이머징-선교적 교회라는 통합적 윤곽으로 카페, 해변가, 일터 등에서 일어나는 비형식적이고, 비제도적 기독교 공동체들의 출현을 소개하고 해석했다. 그 리고 이들은 끌어 모으는(attractional) 유형과 성육신적 유형(incarnational)이라는 기존의 전통적 교회 및 현대의 구도자 교회들과는 대비되는 세상과 일상 속으로 침투하는 공동체로 서 선교적 교회를 제시한다. 이들은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을 기독론에 정초시킨다. 즉, 성부로부터 보냄 받으신 예수께 헌신하는 제자도(기독론)가 세상에서 증인의 삶을 구현하는 선교를 파생시키며(선교론), 이러한 선교적 사명이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는 것이다(교회론). 더 나아가 두 사람은 기독교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시대에 선교적 교회를 세우고 사역을 진행하는 일을 신앙의 모험으로 제시하며, 역사의 모든 혁신적 변화들은 위험을 감수하 는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교회를 구심점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성육신적 사 역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론에서 특이했던 점은 신자 개인이나 교회 내 아웃리치 그룹으로서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가는 수준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회중의 삶과 리듬 자체가 세상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최근 선교적 교회 사역자들의 실천은 선교적 비전을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체화시키는데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장소, 이웃됨, 일상, 몸, 보냄 받음이라는 추동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1) 장소로서의 선교

개혁주의 철학자인 제임스 스미스(James K. Smith)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 사역에 기 여하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간의 역사적 조건성, 지역적 의존성을 상기시킨 것이라 고 한다. 인간은 역사와 전통을 통해서 내려오는 이야기로 자신을 형성하고, 신체적 접촉인 성육신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념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포스트모던시대의 성육신적 관점이 "시간과 전통을 진지하게 다루고, 몸과 공간의 선함을 인정한다면 장소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취급해야 한다."11)고 주장한다. 예를 들자면, 공간적으로는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이자, 역사적 전통적 신앙고백을 충실히 계승하며, 예전과 같이 몸으로 경험하고 참여하는 의식을 살려내고자 하는 교회가 이러한 사역에 부합 될 것이다.

기독교 사역에서 장소의 중요성은 최근에 새롭게 제기되었다. 근대적 기독교 신앙이 관념적 원리로 전유되었고, 교회 또한 탈 지역화 되면서 현대인의 필요와 문화적 취향에 사역의 초점이 모아졌다. 자신이 사는 지역과 연결되지 않은 교회만의 공간에서 종교적 욕구를 채우는 소주의적 신앙양식이 확산되고, 교회 또한 그 교회가 자리 잡은 인근 지역과는 무관하게 다방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도록 세련된 시설과 프로그램 및 주차장을 구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신앙은 일상생활 및 지역의 이웃 관계와는 크게 연루 될 필요가 없었다. 이는 삶과 분리된 피상적 신앙, 프로그램화된 종교적 소비주의를 양산시 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과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선교적 사역의 회복 은 신앙의 전인성과 교회가 실제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데 중요한 통로가 된다.

미국에서 가장 세속화된 도시인 시애틀에서 지역 공동체 사역을 활발하게 모색하는 폴 스파크스(Paul Sparks), 팀 소렌스(Tim Soerens), 드와이트 프리즌((Dwight Friesen)은 선교적 교회 운동이 세상을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점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선교적 운동이 장소의 회복 없이 추진될 경우 시대의 이슈에 함몰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이들은 교회가 지역이라는 장소로부터 이탈된 현상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데, 처음 교회는 장소 안에 있는 교회(The church in)로서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가 지역 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증언하였다. 그 뒤로 기독교가 제국의 공인을 받은 후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지역 권력에 속한 교회(The church of)가 되었다. 식민지 확장 시대가 되면서 다른 지역을 향한 교회(The church for)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타자를 정복하고 기독교로 동 화시키고자 했다. 최근에 등장한 교회의 모습은 장소와 무관하게 비슷한 취향이나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The church with)다. 이와 같은 진단을 기초로 이 저자들은 지역의 특정 장소에 신실하게 현존(faithful presence)하는 새로운 지역 공동체(the new parish)15) 교회를 운동을 제시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선교적 실천은 지역의 장소에 '의도적으로'(intentionally) 뿌리 내리고 이웃과 함께하는 유형으로서 함께-안에서, 그리고 안에서- 함께(The church within& in-with)하는 교회다. 지역의 구체적 장소라는 역할에 충실한 교회에 대한 개념은 선교적 교회 운동가들로 하여금 이웃과 교류하고, 이웃이 되는 과정을 사역의 중심 주제로 삼게 하였다.

2) 이웃됨의 선교

선교적 교회 운동가인 알란 록스러버(Alan Roxbourgh)는 스콧 보렌(Scott Boren)과의 공저에서 '선교적'(missional)이 된다는 것을 우리의 이웃과 지역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이 하 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본다.17) 그는 이를 위해 선교적 상상력을 요청하며, 두 가지 핵 심 질문을 제기한다. "하나님이 우리 이웃들 속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더 이상 교회를 삶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 우리의 지역 공동체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변해야 하는가?" 록스버러는 선교적 사역의 현장을 구체적이고 지역적인 이웃이라 는 일상적 삶의 반경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누가복음 10장의 예수께서 70제자를 파송하는 사건을 선교적으로 해석하면서 '매일 삶의 구체성'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로마식 사상 체계에서는 관념 속에서 세계를 구상하였지만, 성경적 사고는 구체적이 고 지역적인 차원에서 세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적 의미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파송되는 선교적 실천은 먼저 이웃과 지역의 삶에 천착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웃과 지역을 위해서 교회가 준비한 아웃리치 사역을 제공하는 것이 선교적 실천이 아니 다. 이웃을 사역의 대상으로 보기 전에, 먼저 동등한 이웃이 되어서 함께 거하며, 이웃의 이 야기를 들으며, 이웃과의 삶을 나눔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프로스트와 허쉬는 선교적 실천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말고 그냥 머무르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사역 방식의 문제는 교회가 이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미리 가정해 놓고 이웃에게 접근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점이다. 록스버러도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 사마리아 마을들로 파송된 제 자들에게 전대나 가방을 지지 말라는 명령을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이나 계획을 갖고 지역 공동체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의미의 창의적 해석을 내놓는다. 여정의 짐을 가볍게 하라는 말씀을 제자 파송의 핵심 요소로 보는데, 그 동안 대부분의 교회들이 지역을 상대로 사역을 펼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그러나 록스버러는 과거의 준비된 사역 방식은 하나님 이 이웃 가운데서 어떠한 일을 하시는지를 발견하지 못하게 막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한 다.21) 즉, 지역과 이웃을 향한 우리가 준비한 짐을 내려놓고 환영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나그네와 같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22) 따라서 선교적 교회 사역의 이처럼 근접한 이웃됨은 추상적인 의제나 프로그램화된 봉사 프로젝트가 아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몸으로 이웃의 삶에 참여함을 요구하게 된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미리 고안된 계획표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공유하며 삶의 리듬을 함께 함이라는 과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3) 일상의 선교

선교적 교회론에서 그리스도인과 기독교 공동체가 지역 사회에서 이웃이 되어야 함을 강조 한다면 이는 날마다 접하는 일상의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을 교회와 일요 일이 아닌 세상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에서 구현해내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지 속되어왔다. 선교적 교회론은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음을 강조하기에 이러한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의 일상성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킨다. 더군다나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진지 한 논의가 오간 것은 기독교가 서구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탈 기독교 세계 (post-Christendom) 현상과 깊이 맞물려 있다. 탈 기독교 세계에서 신앙의 표현은 게토화 된 종교구역으로 축소되거나 아니면 과감하게 세상 속에서 기독교가 재발견되는 두 가지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팀 체스터와 스티브 티미스는 교회됨을 일상에서 구현하고 경험하는 과제를 실제적으로 제 기한다. 이들은 이제 탈 기독교화된 세계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종교적 권위자가 주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말씀에 대한 헌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 한다. 또한 이러한 일상의 공동체가 선교적 힘과 자연스럽고 상호적인 목양의 자원이 된다고 한다. 교회개척과 전도도 더 이상 전문인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사 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서 더욱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 이들은 가시적 이고 제도화된 모습을 갖추지 않으며 일상에서 느슨하고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기독교 공동체를 가리켜 '스텔스 교회'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즉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교회의 형태로 부터 시작되지 않고, 일상의 관계망에서부터 시작되는 기독교 공동체를 말한다.

일상은 우리의 평범한 삶이 반복되는 곳이며 이웃과 우발적으로 만나는 현장이다. 일상은 계획과 의도 안에서 조성되는 곳이 아니라, 매일 같이 반복되고 돌발되는 삶 그 자체다. 일 상은 지금 여기서의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선교적 실천이 다름 아닌 세상 속에서, 그리고 일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라면 이는 바로 여기, 바로 지금 경험되어야 한 다. 선교적 교회 사역이 우리의 일상에 주목하고, 일상의 다양한 영역들을 선교적 정신으로 채워 나간다면,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의 가정, 일터, 이웃과의 관계, 동네 생활 등과 같이 가장 직접적이고 친숙한 공간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25) 또한 일상은 이처럼 친숙한 공간에서만 경험되지 않는다. 때로는 낯선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만남도 사소한 일상이 될 수 있다. 공항 대합실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도서관 옆자리에서 낯선 자와의 만남도 선교적 실천의 현장이다. 앨런 허쉬와 랜스 포드(Lance Ford)는 이를 평범한 삶의 여백과의 만남 (meeting the extra in the ordinary)이라고 부른다. 일상의 스치는 만남에서 선교적 실천이 접목되려면 첫 인상, 표정, 스몰 토크와 같은 사소한 표현들도 의도적으로, 의미 있게 시행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종종 종교적 행위 속에서 일상이 갖는 영적 의미를 놓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찬 예식에서 분병과 분전은 준수하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나누는 식사라는 관습은 무시한다는 것이다. 분병과 분전은 공동 식사라는 더 큰 일상적 관습의 틀 안에서 시작되었고, 그 초점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그의 백성이 하나 됨을 경 험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적 교회론은 몸의 회복과 역할을 강조하게 된다.

4) 몸의 선교

프로스트는 현대사회의 탈 육체적(excarnate), 실재로부터의 이탈적(disengaged) 현상을 비판적으로 논하며 선교적 삶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기술문명으로 인한 사이버 공간과 이미지의 만연, 빈번한 이동성 등으로 인해서 더욱 심화된다. 탈 육체적인 풍조는 단지 자연과 사물 뿐 아니라, 결국에는 사람을 객관화시켜서 대상이나 관념으로 취급할 위험이 크다.28) 실재를 관념적,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유대-기독교적 접근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적 이원론에 가깝다. 성경은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성육신하신 하 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기에 기독교 사역에서 몸과 물리적 실체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사상에 침투한 이원론적 영향으로 인해,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몸으로 구현하는 예전이나 실천 보다는 정서적 감응의 자극을 받아 상상과 관념 속에서 일 어나는 영적 경험에 훨씬 더 높은 의미를 부여했다.29) 몸과 영혼을 분리하는 이원론은 그리스도인의 실제 삶에서 편협한 영적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직장인 신우회나 성경공부 모임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일터에서 어떻게 신앙을 구현하며 살 것인가를 함양 받기보다 직장 동료들을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는 식이다. 이러는 가운 데 그들이 몸을 담고 있는 일터와 일 자체는 기독교적 의미와 멀어지게 된다.

프로스트는 우리는 몸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곧 몸임을 강조한다.30) 몸으로부터 분리된 영혼에 집중하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몸과 분리된 영혼의 고양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친히 팔레스타인 땅에 거하시며 구체적인 장소에서 구체적인 사람들과 몸으로 접촉하시면서 사역하셨다. 예수의 부활은 인간의 궁극적 정체성이 몸을 지닌 상태에 있음을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적 교회의 사역은 상상과 감정과 같이 내면의 상태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관계와 같이 몸으로 접하는 현장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프로스트는 2008년 리더십 네트워크의 조사를 인용하며 현대 대형교회들의 예배와 집회들이 주로 사람들의 감정을 고취시키며 친숙한 시각적 분위기를 돋우는데 집중함으로 사람들에게 영적인 유사 만족감을 주는 것은 오늘날 의 탈 육체 시대 풍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31) 이러한 시대 풍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인간을 몸과 영혼이 통합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인간이 몸을 입고 살아가는 전 영역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바탕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몸과 영혼이 분리된 이원론적 틀에서 인간 삶의 영역은 자율적으로 세분화되고 교회마저 그 가운데 일부가 되어 버린다. 이는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을 분리시키며, 그 결과 구체적인 일상에서 선교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시킨다.

반면 몸의 접촉과 실천을 사역의 중심으로 본다면, 이는 우리 몸의 지체와 기능에 대해서도 더욱 진지한 고찰을 하게 한다. 돈 에버츠(Don Everts)는 그의 책 Go and Do에서 선교적 그리스도인이 됨을 몸의 지체들을 직접 움직여서 참여하는 것으로 흥미롭게 설명한다. 그는 선교적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인체 해부를 기술한다.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눈은 세상의 어둠과 허무함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맑은 눈 (sober eyes)이어야 하며, 손은 섬기는 손(servant hands)으로서 약한 이들을 돕고 불결한 발을 씻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준비된 발(ready feet)은 거칠고 낯선 곳으로 기꺼이 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야 한다.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발은 타문화권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 라, 인생의 모든 구석구석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인식하며 주변을 충실히 살피는 것 도 포함된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compassionate heart)은 인간의 아픔과 시련을 애통해 한다. 이러한 마음은 단순히 선천적으로나 선험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순종할 때 발견되고 고양된다. 에버츠는 이를 '부드러운 마음'(heart of flesh), 즉 살덩어리와 같은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끝으로, 기뻐하는 영혼(joyful soul)은 위의 지체들이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도전을 이겨내는 원천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삶에 기쁨으로 임재하실 때, 위의 모든 사역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 보냄 받음(Sentness)

선교적 사역의 위와 같은 주제들은 교회와 신앙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것을 요청한다. 현 시대의 소비주의 사상은 신앙생활의 양식에도 스며들어왔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를 통해서 종교적 욕구를 채움 받는데 집중하게 만든다. 킴 해몬드(Kim Hammond)와 대런 크렌쇼(Darren Crenshaw)는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소비 주의적 그리스도인과 구별시킨다. 교회가 사람들이 스스로 설정한 인생 의제를 지원해주는 수준에서의 종교적 기능을 하는 것은 소비주의적 그리스도인을 양산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두 저자는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보냄 받은 소명을 부각시킨다. "자신 의 보냄 받음을 망각한 사람들은 교회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들을 돌봐주고, 그들을 기분좋게 해주겠다는 약속만 기대하게 된다. 이들은 소비자 교회에 대한 대안으로 '보냄 받은 백성'의 교회를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과 같이 예수께서 우리를 그의 사역을 지속하고 그의 생명을 나누도록 보내셨다는 사실에 기초한다고 한다. 따라서 보냄 받은 백성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소비하는 것이 아닌 섬기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보냄 받음에 대한 강조는 선교적 교회론의 대표적 주제인 세상 속에 성육신한다는 개념과 일맥상통하지만 이를 단순히 담론적 구호가 아닌 개개인 그리스도인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 서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보냄 받음(sentness)은 타문화권이나 원거리의 선교지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의 삶에서부터 적용이 시작된다.35) 그리스도인 모두가 보냄 받았으며, 또한 보냄 받음은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DNA이며, 하나님의 선교에서 맥박을 이루 기 때문이다.36) 선교적 교회론은 이런 의미에서 일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관한 근원적 문제 제기를 하게 된다. 돈 에버츠는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하는 유형을 안전한 그리스도인, 성공적인 그리스도인,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분류하며 이와 대비되는 참된 신앙인의 범주로 선교적 그리스도인을 제시한다. 앞서 인용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전인적 감각이 선교적 체질(맑은 눈, 섬기는 손, 준비된 발, 긍휼히 여기는 마음, 기뻐하는 영혼)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냄 받음에 관한 인식은 더 나아가 선교적 정체성에서 가정과 자녀양육을 조명하게 만들고, 교회 내의 소그룹을 선교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즉, 그리스도인의 총체적 삶을 증인으로 보냄 받은 사명이라는 인식 아래서 볼 수 있다. 영성이 나 경건의 훈련도 개인적 수양을 위한 정체적인 성격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 서 더욱 풍성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최근 선교적 교회론의 실천적 흐름은 단순히 사회 속 의제에 참여 하거나 지역을 대상화시키는 아웃리치 프로젝트가 아닌 구체적인 지역에 동등하게 참여하여 이웃이 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배후에 의도된 프로그램을 숨기고 이웃의 삶에 참여하는 것 이 아니라 이웃 자체가 되는 것이 목적이며, 이러한 이웃됨은 우리의 몸으로 일상에서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삶을 위한 어느 양육 프로그램에서도 하나님의 선교에 관한 기본개념을 가르친 뒤에, 실천 단계에서는 '이웃을 알고 사랑하기', '환대의 삶을 살 기', '제 3의 공간에 참여하기' 등을 거쳐 선교적 공동체를 세우는 청사진을 제시한다. 정치, 경제적인 거시 차원의 공적 의제들에 참여하여 특정한 압력 집단과 연대하는 실천 보다는 지역 교회와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인접한 이웃과 관계적이며, 인격적인 방식으로 교류하는 실천을 더욱 요청하고 있다. 이는 선교적 교회론을 적용하며 실천하는 사역자들의 관심과 방향을 잘 보여준다. 이 점이 복음주의 운동에 왜 중요한가? 사실 복음주의 교회들 은 근대사회의 대중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에 적응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지역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전인적 진리로 표현하고 경험하는데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론은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개인의 기호와 취향, 그리고 실용적 효과에 따라서 교회 사역을 구상하던 습관을 극복하며 자신들이 위치한 지역사회에서 보냄 받음을 자각하고 기독교를 구현하는 프락시스를 형성해줄 수 있다. 모든 실천에는 세상에 증인으로 보냄 받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저를 이루 고 있다. 이처럼 지역적이고 일상적이며 성육신적인 흐름은 복음주의적 실천을 적용할 수 있는 적합한 장을 이루리라 전망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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