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훈회 강사가 발제하고 있다.©오상아 기자   ©오상아 기자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기독교의 '공공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이 때, '사회 복음주의'의 정신으로 살았던 미국 감리교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산동 한국기독교역사학회에서 열린 제327회 학술발표회에서 '웰치 감독(Bishop H. Welch)의 생애와 사회적 복음주의'(Social Evangelism) 사상 이해'를 주제로 발제한 송훈회 세계선교신학대 강사는 초창기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나라의 시련을 해결하고자 힘썼던 것을 말하며 지금은 "사회 밖으로 밀려나와 '설 자리'와 '낼 목소리'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 복음주의' 정신을 갖고 1890년 미국 감리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48년까지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 총장, 한국과 일본의 감독 등 다양한 역할로 넓은 지역에서 활동했던 웰치 감독을 소개했다.

그는 " 웰치 감독은 교회의 사회할동 참여에 관심을 자기고 적극적으로 사회를 향해 복음을 전하며 활동했던 인물 가운데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며 "그는 남북전쟁이 발발했던 시기에 태어난 인물로, 미국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활발하게 진행했던 시기에 교육을 받고 목회활동을 했던 인물이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빈민문제 등 여러가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며 "미국과 아시아, 그리고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대학 총장과 미감리회 감독, 해외구제위원 등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하고 넓은 활동 범위를 갖고 살며 사회 곳곳에서 활동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웰치 감독은 1916년 한국과 일본을 관리하는 감독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송훈회 강사는 "이때 한국은 일본에 의해 영토와 주권을 상실한 암흑의 시대였다"며 "이러한 나라에 두 나라를 관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이어 "웰치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를 하는데 있어 커다란 이정표를 제공해 준 자료는 웰치가 직접 서술한 자서전이다"며 "거의 자서전 목차를 살펴보면 중요한 삶의 기로에서 자신의 생각과 선택에 관한 심층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저자의 목회적 삶의 핵심 주제인 '사회적 복음주의'의 개념, 형성 과정, 그리고 활동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고 했다.

웰치 감독의 '사회적 복음주의' 형성 과정에 대해 소개하며 그는 "1891년 미국에서 만난 영국 감리교 목회자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 1902년 영국에서 보낸 1년의 삶을 기록하면서 '사회적 복음주의'와 관련한 생애를 한 장에 할애했다"며 "이는 저자가 '사회적 복음주의'가 자신의 생애 전반에 걸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고 평했다.

또 "그가 사회적 기독교, 사회적 교회, 사회적 복음주의를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송훈회 강사는 웰치의 자서전 6장에 설명된 웰치가 생각하는 사회적 복음주의 개념을 인용했다.

"(강한)신념은 십대 시절에 나의 마음에 뿌리 내려진 몇몇 방법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첫째는 기독교 종교는 필수적으로 '도덕'과 연결되어야 한다. 둘째는 기독교 종교는 '선한 삶'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선한 삶이란 선한 행동, 선한 인격, 선한 사회를 말한다. 셋째는 인류를 향한 관심과 선한 의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고귀한 예배를 위해 두 번째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1891년 에큐메니컬 회의에 참석했던 영국 감리교 젊은 목회자들의 사회 목회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됐고, 1902년 영국에서 1년을 보내며 '사회적 복음주의' 전체 개념을 형성했다. 송훈회 강사는 "웰치의 사회적 복음주의 사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복음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감리회 총회와 위원회를 통해서 더욱 확고해졌다"며 "미감리회는 1908년 (총회에서) 기독교 가운데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익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한 '사회 신경'(Social Creed)을 채택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웰치는 감리교회의 사회신경을 세우는데 크게 공헌했다"며 "그는 당시 감리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종교인 비종교인 구분하지 않은 25명의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다.

송훈회 강사는 "이 모임에서 상정한 계획의 결과인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의 현실화'에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는 성령의 중생, 지성의 계몽, 단체의 발전, 정치적 삶의 개혁, 인간구원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라우셴부쉬의 사회복음주의 신학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며 "이 모임에서 웰치는 회장이 됐다"고 했다.

그는 "감리교회의 사회신경은 33개 개신교 교단의 초교파 연합체인 교회협의회(Federal Council of Churches: 1950년부터는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이하 NCC)에도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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