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홀 일기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양화진문화원은 한국에서 2대에 걸쳐 77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 가족 중 가장 먼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육필일기 『로제타 홀의 일기 2』를 부활주일에 맞춰 출간했다. 양화진문화원은 "이 책을 출간한 것은 한국교회사와 선교사의 사역을 연구하는 학자, 한국 근대사와 교회사 관련 도서관, 그리고 로제타 홀과 관련이 있는 기독교 기관들의 연구에 보탬을 드리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로제타 홀 일기』출판 경과 및 향후 계획

『로제타 홀 일기』(도서출판 홍성사 간)는 한국에서 평생을 헌신한 첫 번째 여성의료선교사인 로제타가 한국으로 파송된 1890년부터 의료선교사로 함께 헌신했던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소천한 1894년까지의 약 5년 동안의 기록이다. 『로제타 홀 일기』 로제타의 선교사역을 기록한 일기 4권과 두 자녀(셔우드 홀과 에디스 홀)의 육아과정을 기록한 일기 2권 등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제타 홀 선교사의 유족(손녀 필리스 홀 킹과 에드워드 킹 부부)은 2015년 4월 이 일기 원본 6권을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부설 양화진기록관에 기증했다. 양화진문화원은 이 일기에 담긴 내용이 100여 년 전 한국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생각과 당시 한국의 선교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고 6권 모두를 번역 출간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일기에는 100년 전 로제타 선교사가 펼쳤던 구체적인 선교 내용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던 선교사들의 모습, 한국 여성들이 서양의사의 치료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로제타 선교사가 우리나라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를 만나 그녀에게 의학을 가르치는 과정, 여메리 전도부인의 우리나라 전통 결혼식 장면, 양반집 부인과 가난한 여인들을 똑같이 치료하는 모습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일기에는 100여 년 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자신이 구매하거나 사용한 물건과 관련된 영수증이나 카탈로그, 티켓, 주고받은 편지가 실물로 첨부되어 있으며, 후일에 로제타 선교사가 일기 내용을 보완하거나 정정하여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양화진문화원은 2015년 9월에 1권을 출간한 데 이어 이번에 두 번째 일기를 출간하였으며, 2017년 말까지 6권 모두를 출간할 계획이다.

일기 원 이미지와 번역문, 영어 원문 함께 수록

『로제타 홀 일기』의 특징으로 일기의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각각의 페이지를 사진으로 촬영하여 수록하고, 그 아랫부분에 번역문을 실어 일기를 읽는 현장감을 극대화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로제타 선교사는 일기를 단순히 글자로만 채운 게 아니라 다양한 모습의 사진과 편지, 실물 자료 등을 첨부하였고, 특히 두 자녀의 육아일기에는 머리카락, 해 입힌 옷감이 실물로 붙였으며, 아이들이 커가며 변화하는 모습을 알 수 있도록 아이들의 손 모습을 그대로 그려 넣는 등 다양한 시각 이미지를 추가했다.

양화진문화원은 이 일기가 이처럼 매우 독특하게 구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기의 모든 페이지를 원래 모습 그대로 보여주기로 기획했다. 아울러 필기체 영어로 쓰인 일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확하게 일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기 뒷부분에 영어 원문도 타이핑하여 수록했다. 즉, 연구자와 일반 독자 모두를 감안한 디자인과 편집체제로 출간한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는 여정과 내한 이후 6개월의 사역을 담은 제2권

이번에 출간한『로제타 홀 일기 2』에는 1890년 9월 24일부터 1891년 5월 17일까지, 약 8개월 동안의 일기가 담겨 있다. 로제타가 중간 기착지 일본에 머물렀던 동안의 모습,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오기까지 약 한 달의 여정과 서울에서의 약 7개월 동안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 요코하마에 1890년 9월 24일에 도착하여 보름 동안 여러 곳을 방문했던 일과 10월 9일 일본을 떠나 부산과 제물포를 거쳐 10월 14일 선교목적지인 서울에 들어 온 일, 그리고 한국말 공부를 병행하며 시행했던 약 7개월 동안 의료 사역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일기 속에 담긴 몇 장면을 소개한다.

로제타는 그녀의 임지였던 서울의 관문, 제물포에 들어오던 날의 소회를 이렇게 기록했다.

길고 길었던 뭍과 바다에서의 여행은 끝나고, 힘써 일할 사역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이르렀다. '여호와의 눈'이 나를 살피고 계심을 느낀다. 그가 나의 모든 여정을 인도하셨고, 나를 위하여 할 일을 '선택'해 주셨으며, '모든 걱정과 염려'를 맡아 주셨다. 이제 그가 나를 '행하며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다. 어찌 내가 행복하지 않겠는가?(1890년 10월 13일)

로제타 선교사는 당시 감리교 선교 책임자였던 아펜젤러로부터 의료 활동을 줄이더라도 한국어 공부에 진력할 것을 지시받기도 했지만 로제타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나는 일 년에 몇 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몸을 치료하기 위해온 사람들에게 영혼을 치유하시는 분을 만나게 하려고 온 것이다. ... 그렇지만 거대한 것들을 꿈꾸지 않고 그때그때, 매일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언어를 다 습득할 때쯤이면 다른 곳으로 가야할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나은 자세인 것 같다. (1891년 3월 7일)

이 책에서는 한국에 온 직후부터 차별대우를 받는 조선의 여인들의 처지는 물론 남자 의사에게는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모습과, 남성들에게 버림받는 여인들을 지켜보며 매우 큰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로제타를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점동을 처음 만나는 장면과 그녀에게 의학을 가르치며 느낀 로제타의 소감도 읽을 수 있다.

점동은 튼튼하고 건강한 열네 살 소녀이며 영어도 잘 구사한다. 재빠르고 영리하며 훈련시키고 싶도록 탐나는 학생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 저년 그녀 스스로 나를 도와주기로 작정했다고 말했다. ... 두 소녀를 맡아 훈련시킬 생각이다. ... 나는 그들을 선택함에 있어 바른 인도를 받았다고 믿는다.(1890년 10월 24일 일기)

로제타가 한국에서 지낸 추수감사절을 회고하는 기록은 그녀의 깊은 속마음까지 보여준다.(이 내용은 원래 그날의 일기로 쓴 것이 아니라 1915년 아들 셔우드에게 말한 한국에서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회고담입니다. 이 회고담은 그녀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추수감사절이었던 1890년 11월 27일자 일기에 덧붙여져 있다.)

1893년-우리 아들이 11월 10일에 태어났다. 아기가 3주가 될 때까지 아빠가 우리와 함께 지내실 수 있어서 이 해의 추수감사절은 최상의 행복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과 아들 모두가 내 곁에 함께한 추수감사절이었다.

1894년-월 24일 홀 박사가 한국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1898년 또 한 차례 나의 작은 위로자였던 에디스 마가렛을 잃었다. 이 두 해가 지난 사반세기 동안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추수감사절이다.(1890년 11월 27일 일기)

『로제타 홀 일기 2』에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순간순간마다 만난 하나님과 나눈 마음의 대화를 통해 선교사로서 자세를 늘 새롭게 다짐하는 로제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의 문장은 로제타가 어떤 태도로 선교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우리 선교사들의 완벽한 본보기이다. 예수님께서는 늘 마음으로 자기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임을 의식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위하여 행동하지 않고 보내신 이를 위해 행동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기준으로 나를 본다면, 나는 얼마나 멀리 있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전파하는 일에 얼마나 게으른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 만약 주님께서 내 머리에 주입시켜 주지 않으셨다면 내가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을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으스대면서 말이다. (1891년 5월 17일 일기)

한편 <로제타 홀 일기>는 미국 에스더재단의 협력 아래 출간됐다. 재미교포 의사로서 로제타와 감점동(박에스더)의 헌신에 감동하여 에스더재단을 설립한 김현수 박사와 강현희 이사는 이 일기의 원문을 영어로 재입력하였고, 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했다.

양화진문화원(원장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양화진)의 관리․운영을 위해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이사장 강병훈 목사)이 창립한 100주년기념교회(담임목사 이재철) 부설 기관이다. 양화진에 안장된 선교사 및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에 대한 자료 수집 및 연구, 그리고 문화로 교회와 사회를 잇는 소통을 목적으로 2005년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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