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

[책소개]

종교 간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때, 『알라』의 저자인 미로슬라브 볼프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두 종교의 신이 같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신을 예배한다고 주장한다. 볼프는 삼위일체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에 대해, 삼위일체는 신의 ‘상호 내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독교가 여러 신을 믿는다는 그들의 이해는 틀렸으며 신적 본질은 절대 나뉘지 않는다고 변론한다.

반대로 이슬람의 알라가 ‘폭력적인 신’이라는 기독교의 이해도 틀렸으며, ‘사랑의 신’이라는 신의 특성에 대해 두 종교 간 차이점보다 유사성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거를 바탕으로 각각 다른 종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같은 신을 믿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볼프는 각 종교가 서로의 차이를 내세워 대립하고 배타하기보다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성’으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소개]

미로슬라브 볼프
저자 : 미로슬라브 볼프
저자 미로슬라브 볼프는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전 세계 신학자와 종교 지도자들의 주목을 받는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현재 예일 대학교에서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면서, 예일 신앙과문화연구소(THE YALE CENTER FOR FAITH AND CULTURE) 소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예일 대학교에서 “신앙과 세계화”라는 주제로 공동 강의를 했고, 『알라』에도 그 내용이 담겼다. 그가 쓴 『배제와 포용』(IVP)은 「크리스채너티투데이」(CHRISTIANITY TODAY)가 선정한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종교 서적 중 한 권으로 손꼽혔다. 『광장에 선 기독교』 『기억의 종말』(IVP), 『삼위일체와 교회』(새물결플러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국제제자훈련원), 『베풂과 용서』(복있는사람), 『노동의 미래』(한국신학연구소) 등을 썼다.

역자 : 백지윤
역자 백지윤은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술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리젠트 칼리지에서 기독교 문화학을 공부했다. 현재 밴쿠버에 살면서,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 종말론적 긴장, 창조와 재창조, 인간의 의미 그리고 이 모든 주제에 대해 문화와 예술이 갖는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땅에서 부르는 하늘의 노래, 시편』『십자가와 부활을 사는 일상 영웅』『신약의 모든 기도』(IVP)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프랑스 연쇄 테러,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무슬림 미국 입금 금지 발언’
이슬람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한 할랄 식품 반대 기도회….

이슬람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 생각이 무엇이든, 이 책을 읽은 후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우리 시대 평화와 화해의 신학자 볼프가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존을 위해 피해 가지 않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기독교(21억, 31%)와 이슬람(16억, 23%)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믿는 종교로서 그 숫자와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두 종교 간 오해와 반감 나아가 증오의 골은 깊고 이는 종종 테러 혹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드러난다. 신학 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연쇄 테러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가 무슬림 미국 입국 금지 발언을 하는 등, 이슬람이 세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슬람권 음식인 할랄 푸드 등장, 할랄푸드테마파크 조성 계획 등에 대해 일부 기독교인이 이슬람 세력이 확장되는 걸 막아야 한다며 할랄 반대 기도회를 여는 등,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종교 간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때, 볼프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두 종교의 신이 같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신을 예배한다고 주장한다. 신에 대한 묘사(유일성, 창조주, 비교 불가, 선하심)와 신의 명령(신 사랑, 이웃 사랑)의 유사성이 그 근거다. 공통의 신을 믿는다고 해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핵심 교리(삼위일체, 신의 속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이에 대해 볼프는 삼위일체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에 대해, 삼위일체는 신의 ‘상호 내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독교가 여러 신을 믿는다는 그들의 이해는 틀렸으며 신적 본질은 절대 나뉘지 않는다고 변론한다. 반대로 이슬람의 알라가 ‘폭력적인 신’이라는 기독교의 이해도 틀렸으며, ‘사랑의 신’이라는 신의 특성에 대해 두 종교 간 차이점보다 유사성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거를 바탕으로 각각 다른 종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같은 신을 믿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볼프는 각 종교가 서로의 차이를 내세워 대립하고 배타하기보다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성’으로서 서로...(하략)

[책속으로 추가]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신에 대한 다음 여섯 가지 주장에 서로 동의한다.
1. 신은 오직 한 분이시다.
2. 신은 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창조했다.
3. 신은 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과 완전히 다르다.
4. 신은 선하시다.
5. 신은 우리의 모든 존재를 다해 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6. 신은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 여섯 가지의 주장에 대한 동의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예배 대상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가져온다. 신을 묘사하는 처음의 네 조항은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예배하는 대상이 동일하다는 주장을 입증해 준다. 신의 핵심 계명을 집약하는 나머지 두 가지 조항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강화한다.
_5장. 공통의 신과 믿음의 문제

좋은 행위와 그릇된 행위는 그들이 실제로 예배하는 신을 보여 주는, 믿음보다 더 정확한 지표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이 세상의 거짓 신을 예배할 수도 있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있다.
_6장. 공통의 신과 실천의 문제

만약 무슬림이 기독교와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이유들이 타당하다면, 그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 대신 우리는 무슬림이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본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이 논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그것이 무슬림에게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본질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념에 덧붙여진 선택 사항에 불과한가? 자동차 옵션을 선택하듯, 유대인과 무슬림은 기본 옵션만 장착한 단일주의 버전의 하나님을, 기독교인은 동일한 하나님의 ‘풀 옵션’인 삼위일체 버전을 선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 전체에서, 선택적 부가사항이 아닌 가장 중심이 되는 교리다. 하나님의 본성에서 삼위일체를 제거해 버리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믿는 기독교인의 믿음이 무너지고, 이는 곧 기독교 신앙 전체의 괴멸로 이어진다. 삼위일체는 덧붙여진 추가 사항이 아니며 유일하신 하나님의 충만한 실재다. 이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고도 예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기독교인은 그렇게 단언한다), 그것은 언제나 불완전한 예배다.
_7장. 유일신과 성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을 향한 사랑과 모든 창조물에게 베푸는 자비 ?우리는 이 두 가지 큰 틀 안에서, 꾸란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들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구분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랑이 많은 자비’는 하나님의 본성이기에,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자비롭다. 친절함을 통해서든, 엄격함을 통해서든, 꾸란에 따르면 하나님의 자비는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까지도 하나님에게 돌아오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은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도 자비롭다고 볼 수 있다. 무슬림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에 동의하는 한, 기독교인들이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이 문제에 대해 둘 간에는 상당한 공통 기반이 생기는 것이다.
_9장. 영원하며 조건 없는 사랑

쾌락 추구를 중심축으로 돌고 도는 인생을 사는 것은 중대한 문화적 위기를 잘 보여 준다. 문제점은 주로 서양 ‘문명’에서 드러나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화의 날개를 타고(동일한 날개를 타고 엄청난 양의 제품이 운반되는 것처럼!) 세계 각지로 퍼지고 있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단순한 쾌락 추구의 무익함과 파괴성을 폭로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며 진정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일을 위해 서로 동지가 될 수 있다.…교회 첨탑은 모스크의 미나레트가 아니고, 모스크의 미나레트는 교회 첨탑이 아니다. 비록 첨탑과 미나레트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비슷하게 이해하는 그들 공통의 신을 서로 다른 모양으로 가리키고는 있지만, 적어도 단순한 쾌락 추구를 좋은 인생의 표지로 삼는 것으로부터 돌아서 있는 것만큼은 동일하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동시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함께 저항하는 것이, 각각 가장 이롭다고 믿는 것을 위해 서로 싸우는 것보다 훨씬 낫다.
_11장. 편견, 개종 그리고 협력 관계

많은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다음의 세 가지 명제에 헌신되어 있다.
1. 유일하고 자비로운 신과 모든 사람의 관계는 동등한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2. 이웃 사랑은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가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자유를 다른 이들에게도 허용하도록 요구한다.
3. 신앙의 문제에서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이 세 가지 명제를 따른다면, 논리적으로 그들은 정치적 다원주의를 따르는 것이다. 그들이 종교적 배타주의자냐 종교적 다원주의자냐 하는 것은 어떤 차이도 가져오지 못한다. 이러한 명제를 받아들이는 종교적 배타주의자는, 그가 일관적이기만 하다면 정치적 다원주의자일 것이다.
_12장. 두 신앙, 공통의 신, 하나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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