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신대 조성돈 교수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드리는 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다.
실천신대 조성돈 교수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드리는 예배에서 '죽음'을 주제로 설교하고 있다. ©조성돈 교수 페이스북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오는 2017년 4월 16일 부활절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지 만 3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모든 국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던 이 사건, 일상에 젖은 우리는 어느새 잊고 지냈던 것은 아닌지. 조성돈 교수(실천신대)가 최근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SNS를 통해 공개해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조성돈 교수의 말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들은 주일 저녁과 목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알려져 있다시피 사건 이후 많은 가족들이 교회를 떠났다"고 말하고, "섭섭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교회에서 뛰놀던 아이들 생각도 더 나고 그러니 떠났다고 한다"면서 "그래도 가족들이 자기들끼리 보듬으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이 사정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SNS를 통해 이들에게 설교자가 필요하다는 글을 봤고, 전에 학교에 초청했던 故 유예은 학생의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에게 연락을 해서 13일 설교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찾아가보니 컨테이너이긴 하지만 참 아름답게, 그리고 마음을 포근하게 해줄 수 있게 예배당을 안산 화랑유원지 분향소 앞에 꾸며 놓았다"고 전했다.

예배에서 조 교수는 꽤 고민을 하다가 '죽음'을 주제로 해서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는 "강의에 가까운 설교였는데, 목회사회학이 전공이다 보니까 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서 "가족들이 고맙다고 은혜 받았다고 했는데,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한 달을 기다려서 한 설교인데 오해 없이, 거리낌 없이 받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예배 후에는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 교수에게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교회에 가서 아픈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들어주지 않고 위로만 해 준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좀 털어놓고 싶은데 자기 얘기 들으라고, 말씀만 전해주고, 찬양해 주고 그래서 소통이 안 되었다고 하더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조 교수는 "슬픈 자에게 손 한 번 잡아주고, 마음으로 한 번 안아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그리고 기다리면 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준비한 이야기를 쏟아놓기 마련"이라며 "주저리 주저리 떠들다 보면 듣는 사람이 알아서 선택해서 자신에게 위로되는 말을 건질 것이라는 심산인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그는 "같이 갔었던 광성교회 크로스로팀과 라이프호프 사역자들에게서 자신들도 위로 받고 은혜 받았다면서 문자가 왔다"면서 "저 역시 저를 받아준 그들에게 감사했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더불어 "이런 은혜가 유가족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에 동일하게 내리기를 기도해 본다"고 전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서. ©조성돈 교수 페이스북

다음은 조성돈 교수가 SNS를 통해 공개한 유가족과 함께 드린 예배의 설교 전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2017.02.12)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골 3:3-4)

저는 LifeHope.기독교자살예방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제가 자살예방활동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참 중요한 일 한다고, 교회가 꼭 해야 할 일을 한다고 격려해 줍니다. 하지만 함께 동참하자고 하면 거기서 발을 뺍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자살한 사람의 구원문제에 대한 논란에 끼기 싫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죽음에 대해 교회에서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긍정적인 것, 밝은 것만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죽음이나 죄에 대해서는 이제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죠. 한국교회에서는 긍정적인 신앙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도를 넘어서 긍정이 신앙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살, 죽음을 이야기하면 마치 신앙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자살과 죽음을 이야기하면 신앙이 없다고, 복음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긍정적 신앙이 아니라 긍정이 신앙이 된 것이죠.

세월호 유가족들이 쓴 수기나 인터뷰를 보니 비슷한 경험들을 하신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세월호 문제를 꺼내거나, 옷에 노랑리본을 달고 가면 교회가 구박해서 이렇게 변방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죽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아, 구원 받고 천국 간다는 단순한 복음도 잃어 버렸습니다. 단순한 것이 아니라 아주 본질적인 것인데 이런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믿고 축복 받는 생각만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으니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신앙과 삶이 혼동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앞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 스럽습니다. 자살예방교육을 하면 가장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 LifeHope와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하는 캠페인이 있습니다. 서로 안부를 물어보자는 것이죠. ‘괜찮니?’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부를 묻고는 상대가 ‘실은 많이 힘들어’하고 속마음을 터놓으면 사람들은 도망을 갑니다. 한국 사람들은 좀 진지한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진지하게 왜 그러냐고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죽고 싶니?’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죽으려고 약을 사거나, 줄을 사거나 준비한 것은 없니?’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으면 이 사람을 자극해서 자살할까봐 겁내 하는데 실은 이들은 이렇게 물으면 이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는 신뢰가 생겨나 속마음을 내어 놓는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마음으로 여러분들 앞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의 문제로 인해서 삶이 변했을 것입니다. 죽음이 여러분들의 삶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이전에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과 삶이 변했을 것입니다. 세월호의 사건은 단순히 자식을 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여러분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모든 사회나 종교는 죽음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나라는 죽음을 대하는 독특한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죽음과 친해지려 합니다. 옛날 어르신들을 보면 장롱 위에다 자신의 수의를 놓고 삽니다. 자신이 직접 죽으면 입어야 하는 수의를 만들어 놓고는 매일 보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뭐라 하면 이래야 오래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은 죽음에 익숙 하려는 마음인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신의 묫자리를 마련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좀 더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관이 들어갈 자리를 파 놓습니다. 곽을 만든다고 하는데요. 직접 그 자리를 미리 파 놓는 것이죠. 심지어 꼼꼼하신 분들은 그 자리에 누워도 봅니다. 그리고 마음이 편한 것이 참 자리가 좋다는 말씀도 하시죠.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동행 하다가 돌아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매주 주일 저녁과 목요일 저녁 예배 드리는 작은 컨테이너 안 공간.
세월호 유가족들이 매주 주일 저녁과 목요일 저녁 예배 드리는 작은 컨테이너 안 공간. ©조성돈 교수 페이스북

둘째 우리나라의 독특한 죽음 이해는 유교적인 유산으로 제례를 통해서 ‘기억과 재현’의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가족으로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조상이 죽으면 천국으로 떠나가거나 죽어서 신이 됩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죽은 조상들은 신, 즉 가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죽은 이도 함께 사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함께 사는 이로 여겼습니다. 옛날 큰 집들은 집안에 사당을 지어놓고 조상을 모셨습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공양을 올리고 인사를 했습니다. 제사나 차례도 마찬가지죠. 특히 차례라는 말이 재밌습니다. 차를 함께 마시는 예라는 것이죠. 제사나 차례 중에 보면 ‘흠향’이라는 순서가 있습니다. 조상이 밥을 먹는 시간이죠. 귀신이니까 향을 맡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서가 끝나면 음복을 합니다. 참여한 식구들이 조상이 물린 상을 받는 것입니다. 한 상의 식사를 나누는 것이죠. 그러면서 식구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억과 재현을 통해 돌아가신 분은 그 가족과 함께 살며 영생을 하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대해 기독교에서는 몇 가지 묘사가 있습니다. 그 중에 저는 골로새서의 말씀을 좋아하고 믿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안을 의미합니다. 닭이 병아리를 그 품에 품듯이 하나님의 품 안에 감추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품은 평안과 사랑, 그리고 평화와 정의 등의 하나님의 의미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죽으면 그 품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말씀은 누가복음 20장의 말씀입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가르지만 하나님에게는 산 자도 죽은 자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자리에 있는 자도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저 자리에 있는 자도 그의 자녀인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구별이지 하나님의 구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그 사랑 안에, 그 평안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이든 죽음이든 구별함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믿는 사랑의 하나님 그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도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서 이루어져야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생과 사를, 선함과 약함을, 구원과 패망을 가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하나 되어 그 분 안에서 다시 죽을 수 없는 존재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평안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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