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인간은 늘 죽음 앞에서 패배한다. 현대 과학조차도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조그만 실마리도 여전히 찾지를 못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 W. B. 예이츠는 ‘사람이 죽음을 창조했다’는 의미심장한 구절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죽음이 전부는 아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히 9:27)고 했다. 즉 이 심판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같은 상식을 무너뜨리는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바로 죽은 사무엘이 땅에서 올라와 사울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사무엘 상 28장에 나오는 이 엔돌(Endor)의 신접한 여인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낸 장면은 성경의 난해 구절 가운데 하나다. 학자들 간에도 일치된 견해가 없고 그 해석이 갈라지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을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난해구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사울은 하나님이 금한 강신술(降神術)을 활용하는 큰 죄를 범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성경은 모든 종류의 강신술, 강령술, 마법사, 점쟁이, 신접한 자들의 행위에 대해 무섭게 경고한다(신 18: 9-12; 출 22: 8-18; 레 19: 21-26, 31; 20: 2, 27; 26:2; 렘 27: 9-10). 따라서 사울은 어떤 경우에도 이 같은 행위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최근 한국교회 안에 선지자로 예언 은사를 받았다 주장하며 예수 이름으로 점치는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그런 행위는 전혀 성경이 말하는 예언 은사가 아니다. 사울만도 못한 유사(類似) 강신 행위나 점치는 일들을 벌이는 자들일 뿐이다.

둘째 죽은 사무엘은 신접한 여자의 능력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신접한 여인은 사무엘을 불러올리고 자신이 스스로 놀라 큰소리를 질렀다. 신접한 여인은 설마 사무엘이 정말 나타날 줄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놀라 큰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신접한 여인의 능력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린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럼 이들 앞에 나타난 사무엘은 과연 누구였을까?

먼저 이들 앞에 나타난 인물은 사무엘의 모습이었다. 성경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1) 성경은 그 모습이 분명 선지자 옷을 입은 노인처럼 겉옷을 입은 선지자 사무엘이라고 말한다(삼상 28: 12-14절). (2) 사울도 사무엘인 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14절). (3) 또한 사무엘도 어찌하여 자신을 불러 올려 나를 번거롭게 하느냐고 책망하는 장면이 있다(15절).

그렇다면 이들 앞에 나타난 인물은 정말 참된 죽은 사무엘이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바른 성경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강신술은 성경이 금하는 큰 죄악이다. 따라서 신접한 여인의 강신술로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강신술이든 유사 강신술이든 어떤 경우에도 이 같은 행위를 금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이 주는 일차적 경고이다.

(2) 그렇다면 사무엘이 직접 나타난 것이 아닌 이상이나 환상으로 그렇게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만약 이상이나 환상이었다면 이것조차 하나님의 섭리요 허용하신 경우라 할 수 있다.

(3) 하나님께서 허용하지 않았다면 죽은 사람을 신접한 여자가 불러올릴 수는 없다. 따라서 죽은 사무엘이 나타난 사무엘상 28장의 모든 정황은 신접한 여인과 사울이 스스로 속은 속임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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