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구재원 목사 '가정의 달' 시리즈 설교
▲초대교회 구재원 목사 '가정의 달' 시리즈 설교

■제목 :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1) - 인정하는 말
■일시 : 2017.04.30 초대교회 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장 46~51절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요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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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원 목사(초대교회‧한국예배기획연구원)
▲구재원 목사(초대교회‧한국예배기획연구원)

[기독일보=설교] 오늘부터 5주 동안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시리즈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수백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인 게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설교로 준비하여 전하려 합니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가정의 모습과 관계를 회복하여 가시는 모든 가정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먼저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인정하는 말’입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인 나다나엘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의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남 유다 예루살렘 지역에서 볼 때, 북부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은 시골 동네였습니다. 큰 도시 출신인 나다나엘의 편견에 북부 변두리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어떻게 랍비가, 메시아가 출현할 수 있겠느냐며 되묻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의 부정적인 대답에 빌립은 아주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와 보라!”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보기도 전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였고,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다나엘을 만난 예수님의 반응은 완전히 다르십니다.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알고 있다 라는 것은, 그의 장점도, 단점도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으십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도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인정하고, 그의 장점을 칭찬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 예수님에 대해 큰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만나는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하실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칭찬과 인정하는 말을 예수님께서 전하십니다. 나다나엘은 어리둥절하여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시나이까?”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48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러 갔을 때,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아를 고대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예수님이 보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무화과나무 아래’는 기도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나다나엘, 편견이 무너지고, 마음이 열립니다. 이미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지켜 보고 계셨고, 나다나엘에 대하여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말씀이 그의 마음을 열어 제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칭찬과 인정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감동되어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49절.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이후 율법과 말씀에 능하였던 신실하고, 냉철한 실력자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인정하는 말, 칭찬하는 말이 감동을 일으키고, 사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마크 투웨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 칭찬을 받으면 두 달간은 잘 지낼 수 있다.” 마크 투웨인의 말대로라면 1년에 6번 칭찬을 받으면 일 년 동안 사랑의 그릇의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잘 지낼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히브리 지혜 문학의 최고봉인 솔로몬은 잠언 12장 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인정하는 말이, 선한 말이 얼마나 사람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더욱 좋은 관계를 만들어 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한 여성이 게리 체프먼 교수의 방을 찾아 왔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문제가 있음을 고민하며 상담합니다. 문제는 남편에게 침실 벽에 페인트칠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9개월이 지나도록 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시간이 있어도 침실벽에 페인트칠은 하지 않고, 세차를 하거나 다른 일은 한다는 것입니다.

채프먼 박사는 부인에게 두 가지 제안을 합니다. 첫째, 침실에 페인트칠을 해달라는 말은 다시 하지 말라 는 것이었고, 두 번째 제안은,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줄 때마다 많이 칭찬해 주라는 말이었습니다.

만약 남편이 쓰레기를 버려주면, “여보, 이렇게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라고 말해야지 절대 “쓰레기를 버리는 데 이렇게 꾸물거리니 날아다니는 파리가 당신 대신 그것을 치우려 들 거예요.” 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무슨 좋은 일을 할 때마다 칭찬의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과연 그 방법이 통할까 하는 표정으로 불만족스럽게 채프먼 박사의 사무실을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3주일 후에, 그 여성은 다시 채프먼 박사의 사무실로 찾아와서, “정말 박사님 말씀대로 그렇게 되었어요.” 하면서 남편이 침실벽 페인트칠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계속 지적하고, 조르는 말로는 9개월 동안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칭찬하는 말, 인정하는 말로 단 3주 만에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말이 아닌, 사랑하는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해줄 때, 내가 원하는 것 또한 얻게 되고, 관계 또한 더욱 좋은 관계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24절입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여러 인정하는 말 가운데 먼저 ‘격려하는 말’입니다. “격려하다”는 “용기를 불어 일으키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 일으킬 수 있는 말을 전한다면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녀의 내면에 있는 잠재력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배우자나 자녀가 “이번 여름을 위해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격려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이때, “그거 맨날 해서 다이어트가 되나?” 이런 말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사랑하는 배우자, 자녀에게 격려의 말을 전해야 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꼭 성공할거야. 내가 뭐든 응원하고, 도와줄게.”

격려하는 말은 사랑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과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격려의 말의 달인이십니다. 신명기 31장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는 두 번째 말은 ‘온유한 말’입니다. 사랑은 온유합니다. 사랑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고 싶으면 온유한 말을 써야 합니다.

퉁명스럽고, 째려보는 눈을 가지고, 날카로운 말투로 한다면 관계는 나빠질 것입니다.

잠언 15장 1절입니다. 쉬운 성경 버전입니다. “부드러운 대답은 화를 가라앉히지만, 과격한 말은 노를 일으킨다.”

오늘 집에 가셔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의 말투를 담아 말씀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나의 기쁨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오늘 저녁은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이 가득할 것입니다.

인정하는 말의 마지막은 ‘겸손한 말’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부탁하는 것이지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바라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겸손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예수님은 직접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가장 사랑하지만, 편해서 함부로 대하는 대상이 바로 가족입니다. 특히 자녀들에게 강제로 요구하거나 고압적인 자세를 계속 보인다면, 자녀들도 부모님의 요구를 무시하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인 겸손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람들에게 나아가십시오.

사이가 가까울수록, 편할수록 더욱 정중하고, 존중하면서 표현해 주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첫 번째 ‘인정하는 말’ - “격려하는 말”, “온유한 말”, “겸손한 말”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천국의 작은 모형 가정을 세우시고, 이루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구재원 목사(초대교회‧한국예배기획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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