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교회
▲중국의 한 삼자교회 모습. @자료사진

[기독일보·선교신문=중국어문선교회] <상(上)편에 이어서> 현재 삼자교회를 포함해 중국교회는 과거 모습에서 많이 벗어났다. 도시화가 급속히 이뤄지면서 농촌, 여성, 저학력자 중심이라는 틀에서 벗어났다. 도시 신흥가정교회가 늘어나 대학생 등 고학력자가 많아졌고 집회방식도 매우 활기가 넘친다. 해외유학파, 기업가, 교수, 문화예술 종사자도 대거 교회에 유입됐다. 다양한 단체(團契)가 만들어지는 등 교회 또한 조직화된다. 가정교회의 경우 교파 개념이 없이 보수 신학을 유지해오던 데서 오순절주의, 칼뱅주의(개혁주의), 복음주의 등 교파 및 신학노선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주일헌금, 십일조, 건축헌금 등 목적헌금을 드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담임목사뿐 아니라 분야별 전문 사역자를 초빙하거나 예배당 건축을 고려하는 등 상당한 재정능력을 갖춘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등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데도 관심을 보이는 기독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복음이 중국으로 들어왔으니 이제는 복음을 중국 밖으로 내보자”고 외치며 선교사 파송단체까지 설립해 자체 훈련을 진행하는 가정교회도 있다. 다른 가정교회와 일절 교류하지 않은 채 순혈주의를 고집해왔던 가정교회들이 기도네트워크 결성, 연합집회 준비, 사역자 교육 및 신학훈련의 공동 진행 등을 시도하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삼자교회도 많이 변했다. 성경공부, QT, 일대일, 아버지학교 등 해외교회의 각종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하려고 애쓰고 가정교회와도 공동 집회를 개최하는 등 질적 성장에 힘쓰고 있다. 각 성 양회를 이끄는 목사들은 목회자보다는 정치가에 가까울 수 있지만 각 지역교회 목사들은 정치가보다는 목회자에 가깝다는 관점도 생겨나고 있다. ‘노삼자(老三自)’, ‘신삼자(新三自)’로 나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노삼자와 신삼자는 딩광쉰(丁光訓)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중국판 신학사상건설’에 따른 신학적 갈등과 목회자(사역자)에 대한 일관된 훈련 부족, 해외교회와의 협력사역 확대 등으로 내홍을 겪었다. 노삼자는 1950년대 자아비판을 통해 주님을 배반하고 정치학습을 통해 세계관이 개조된 상태에서 공산당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신삼자는 겉으로는 당의 종교정책을 옹호하지만 진심은 다른 데 있다. 문제는 노삼자와 비해 신삼자가 정치적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기회주의적인 기질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삼자는 해외교회로부터 예배당 건축이나 각종 교육과 훈련 등에 필요한 경제적 도움을 받으면서 삼자원칙을 지키지 않고 공산당을 은근히 비판하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교회다. 더 이상 삼자교회냐 가정교회냐 이분법적 사고로 중국교회를 재단하던 태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중국교회는 일단 ‘중국인의 교회’, ‘중국인에 의한 교회’, ‘중국인을 위한 교회’가 돼야 한다. 종국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가 돼야 한다. 한국교회는 중국과 중국인, 중국교회를 바라보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중국교회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중국교회 원로지도자의 조언을 되새겨보길 바란다. “중국인과 중국교회의 정서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고 생명력 있는 영성을 갖춰야 한다. 중국 기독인들이 성경공부와 신학훈련, 목양훈련, 차세대 사역, 가정 사역 등을 체계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적 상황에 적합한 출판, 미디어 사역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교단 교파를 이식시키지 말고 올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의 토대 위에 중국교회가 세워지도록 지원해야 한다.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를 위한 선교의 동역자가 돼야 한다.”

또 다른 지도자의 말을 옮겨본다. “그동안 중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에 사로잡힌 기독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 해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교회에 대한 중보기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게 됐다. 왜냐하면 중국교회가 급속하게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단의 확장이 자칫 교회를 사교집단으로 인식시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린도후서 1장 24절 말씀이다. 현장 사역에 대한 사도 바울의 태도이다. 오직 중국교회와 중국 기독인들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주관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의 태도가 한국교회와 한국 기독인들에게 요구된다. <끝>

글ㅣ왕빈 중국전문가 <중국어문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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