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충원 박사(샬롬누리영광교회 담임목사 및 평택샬롬나비 학술위원장 겸 성명서위원장)
서충원 박사(샬롬누리영광교회 담임목사 및 평택샬롬나비 학술위원장 겸 성명서위원장)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11월 13일 로마서강해 주일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오늘의 시국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네비게이션이 고장난 자동차를 모는 것과 같다. 일제강점 하에서는 교회가 세상의 대안이 되었는데 오늘날에는 누구도 교회가 시대의 대안이라고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주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탄식하면서 부르짖어야 한다.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이 지금 상황에 대한 유일한 해결의 길이다. 따라서 기도가 애국이다." 이 목사의 설교는 다수의 한국의 경건한 신자들의 관점을 대변한다.

'고장난 네비게이션'? 맞는 말이긴 하다. 우리 정치의 네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가 모호하다. 이 목사는 우리 상황을 기도해야 할 네비게이션이 고장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자동차처럼 되었다고 보고 있는데, 기도하려면 상황인식이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목사의 설교에 지금 사태의 위기의 본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이 설교는 로마서강해로 율법을 다루는 강해인데 정작 율법의 정의가 무너진 현 상황에 대한 예언적 통찰은 없다. 지금 정치가 네비게이션이 고장나 있다면, 현재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서, 예언자들처럼 이것의 원인에 대해 영적인 통찰을 드러내주고, 이런 파국을 가져온 기득권층의 이기심과 욕망에 대해 비판적으로 설교해야 하지 않는가? 이 설교에 이런 비판적 인식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단지 위기로만 보아야 하는가? 촛불집회에서 정의가 회복되는 희망을 보아야 하지 않는가? 기도한다면 단지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함을 볼 뿐 아니라 율법의 정의가 무너진 현 상황에 대한 심각한 비판의식이 일어나고 이에 대해서 비판하는 촛불에서 희망을 예감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촛불에서 새로운 희망을 읽지 못한다면 그건 상황을 제대로 보는 안목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찬수 목사는 지금 교회가 회개하고 주의 긍휼을 부르짖어야 한다고 했다. 기도가 애국이라는 말은 맞다. 교회는 기도해야 한다. 교회는 회개해야 한다. 주님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교회가 대안이어야 하고 기도하며 국가의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뭔가 상황에는 잘 안 맞는 것처럼 여겨진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기도 못지않게 이성적 숙고와 책임 있는 실천이다. 라이홀드 니버는『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현대 정치상황 속의 개인은 도덕적이지만 사회는 비도덕적이라고 했다. 이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만 사회의 비도덕성에 대해서 거의 선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엄정한 통찰이다. 공적 영역에 대한 이성적인 통찰이 결여된 기도는 사적 경건에로의 도피가 될 위험이 있다. 국가의 문제가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은 채, 단지 교회가 문제이고 우리가 할 것은 기도뿐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야 한다고 하는 논리는 상당히 영적인 것 같지만 정작 교회가 해야 할 사회정의를 위한 역할은 놔두고 사회정의의 책임을 개인경건의 책임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복음주의적 교회들 안에 이런 경건주의적 해결이 상당히 만연해 있는데 이런 접근은 오늘의 국가적 위기에 대한 진정한 해결이 아니다.
막연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긍휼을 베푸셔야 한다고 하고 교회가 책임이고 회개해야 한다고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율법에서 명시한 사회정의의 회복이다. 지금 우리 정치상황에 정의의 길이 폐기되고,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불의와 불법과 거짓에 앞장섰다. 교회가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불의에 침묵하고 방관하고 동조하고 축복했다. 철저한 회개와 회개에 따른 실천이 필요불가결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양심의 무디어짐과 악한 정권에 대해서 비굴하게 타협하고 순응해 왔음을 회개하고 탄식하며 정의를 폐기한 교회와 국가를 위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해야 한다. 개인경건이 사회정의의 대체나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설교자가 시국에 대해 말할 때 나이브하게 접근하면 안 된다. 더구나 교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좀 더 깊이 연구하고 책임적이고 통찰력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현실에 대해 영적으로 발언한다는 미명 아래서 사회현실에 대한 무지를 은폐하고 있고, 그 무지가 영성의 모습인 양 생각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금 기도하고 부르짖는 것보다 목회자들에게 더 크게 결핍되어 있는 건 정치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책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더 열심히 인문학 공부를 하고 사회과학적인 안목을 키워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통찰을 갖추고, 이것을 말씀과 기도의 영성에 매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평신도들의 모범으로서 권력의 불의에 항거하고 이 권력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야 한다. 이것이 제자들을 세우는 목회자들을 향한, 오늘의 주의 부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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