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는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가 지난해 11월 25일 개최된 '초기한국성결교회 인물연구 프로젝트' 제1회 길보른기념강좌에서 서울신대 목회신학연구원 원감 박문수 박사(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가 발제한 '어니스트 길보른(Ernest A. Kilbourne)의 생애와 선교사역'을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박문수 박사(사진 왼쪽)가 발제하고 있다. 논평자로 나선 허명섭 박사(오른쪽)©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 박문수 박사는 마지막 부분에 서론에 제기한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논의에 답변을 시도하기도 했다.

박 박사는 서론에서 "최근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그 발단은 선교학자인 모 교수가 한국성결교회는 미국 만국성결교회의 직계자손이며, 만국성결교회와 한국성결교회는 모자관계이고, 동양선교회는 만국성결교회의 산하기관이라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였기 때문이다"며 "이에 대해 성결교회 신학을 연구해 온 서울신대 전 총장 목창균은 이런 입장을'동양선교회 기원설의 변형'이라고 평가하고, 한국성결교회 역사적 기원에 대한 다음의 두 가지 입장을 소개하면서 양자 택일이 아닌 양자 종합이라는'통전적 관점'을 제시하였다"고 소개했다.

첫째는 1970년대 후반 제기된 김상준과 정빈이"외국 선교사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성결교회를 창립했다는 자생적 기원설로, 이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서울신대 전 총장 강근환과 성결대학교 전 총장 정상운을 들었다. 강근환 박사는 자생사적 관점에서 볼 때 성결교회는 외국 선교사에 의해 이식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에 의해서 한국 땅에서 시작된 자생적 교단이라고 주장했다고 박문수 박사는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실, 이 견해의 결정적 약점은 '자생'(自生, 저절로 남)이란 용어선택 자체에 있다. 강근환은 동양선교회와의 관련성을 제기하는 여러 비판에 직면하자 '자생'이란 '성결교회가 교단화된 때'를 가리킨다고 급히 수정하였다"고 덧붙이며 "정상운도 한국선교를 요청한 것은 동양선교회 선교사들이 아니라 김상준과 정빈 등의 한국유학생이었으므로 자생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고 전했다.

박문수 박사는 "그러나 이 주장도 역시 역사적 논거가 빈약하다. 왜냐하면 동양선교회 창립정신은 단지 일본만이 아닌 전 동양에 순복음을 전하려던 비전에 따른 것이었고, 이미 1904년 동양선교회 창립자 중의 한 사람인 나까다 쥬지가 종군목사가 되어 한국에서 순복음 전도활동을 하였으며, 그 결과 동양선교회와 교분이 있던 고명우라는 한국인 의사가 김상준과 정빈을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도록 추천하였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성결교회는 자생교회가 아니라 동양선교회가 세운 교회라는 동양선교회 기원설, 즉 '자생설에 대한 반론'의 입장은 서울신대 전 학장인 조종남이 한국성결교회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자 제시한 견해라고 소개했다.

박문수 박사는 "조종남은 이명직이 『성결교회약사』에서 '1907년은 동양선교회가 조선 전도에 착수한 해'라고 명시하였고, 성결교회의 초기 『헌법』에도 '본 교회는 주 강생 1901년 미국인 카우만과 E. A.
길보른 양인이 하나님의 크신 사명 하에 동양 여러 나라에 그리스도의 순복음을 전하고자 함에 기원'하였다고 밝혔으며, 그리고 1907년 김상준과 정빈이 동양선교회의 임명을 받아 귀국할 때 카우만과 길보른이 동행했으며 복음전도관 설립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동양선교회 기원설을 주장하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목창균은 이런 동양선교회 기원설이 김상준과 정빈의 능동적 역할을 외면하고 있으며, 그 논거로 제시한'자료본문에 대한 부정확한 읽기'라는 약점이 있다고 평가하였다"며 "목창균은 위의 두 견해의 단점들을 보완하고 양자 종합의 접근법을 시도하려고'통전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대표적 학자로는 서울신대 교회사 교수인 박명수를 들었다"고 했다.

박명수 박사는 이른바, 한국성결교회 태동의 직접적 기원은 1907년 김상준과 정빈이 동양선교회의 후원 아래 서울에 세운 복음전도관이고, 간접적 기원은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카우만과 길보른의 일본선교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고 소개했다.

박문수 박사는 "그러나 이런 분석에는 비약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박명수는 인용문의 머리글에서 명백하게 '한국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제하였기 때문이다.그런데 목창균의 결론은 한국성결교회는 1907년에 김상준과 정빈이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종로 염곡에 세운 복음전도관에서 시작하였으나 배후에서 후원하고 교리와 신학에 있어서 도움을 준 것은 동양선교회라는 조금 애매한 결론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왜냐하면, 그가 논리적 근거로 제시한 여섯 가지가 모두 자생적 기원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동경성서학원에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했다고 한 것, 이장하가 스스로 찬송가 번역에 나섰다는 것, 김상준과 정빈이 카우만에게 한국에 성서학원을 설립해 달라고 간청했다는 것, 카우만과 길보른이 김상준과 정빈의 귀국길에 동행한 것은 그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며, 김상준과 정빈이 카우만 일행이 돌아간 후 자발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고, 동양선교회만이 아니라 김상준 자신도 재정적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이 능동적 참여를 했다는 것이다"며 박문수 박사는 "이런 주장 역시 한국인들의 자발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양선교회의 기여에 대해서는 인색한 자생설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문수 박사는 "그렇다면, 자생적 기원설이 타당한지 동양선교회 기원설이 타당한 지에 대한 연구는 한국성결교회의 정체성을 밝히려는데 있어서 매우 중대한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국성결교회의 정체성을 밝히려는 다양한 연구방법들이 모색되고 있는데, 주로 교단 신앙잡지인 「활천」이나 <성결교회 역사와 문학연구회>, 〈교단 역사편찬위원회〉, 그리고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를 중심으로 개별교회 역사에 대한 기술이나 성결교회 인물연구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박 박사는 "'자생적 기원설이냐 동양선교회 기원설이냐의 논의는 명확히 할 것이 있는데, 자생설은 '기원'(originality)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한국성결교회 역사의 독특한 '성격'(character)의 문제일 뿐이다"며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기원은 동양선교회에 뿌리가 있다. 왜냐하면, 자생설의 주장과는 달리 어니스트 길보른이 보았던 동양선교에 대한 환상, 초기 한국성결교회 명칭이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이었던 사실, 동양선교회의 선교정책이나 정신이 직접전도를 위한 토착민 전도자 양성에 있었고, 처음부터 동양선교회는 교단을 지향하지 않았던 초교파단체였던 사실, 그리고 1925년에 작성한 길보른의 교리와 조례와 이명직 목사의 성결교회 약사, 그리고 교단 헌법에 명시된 내용들을 살펴볼 때, 만국성결연맹 기원설이나 자생적 기원설과의 연관성보다는 동양선교회 기원설이 더 가치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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