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비서구세계 선교 연합 운동을 선도했던 조동진 박사   ©기독일보DB

[기독일보·선교신문 이지희 기자] "20세기 후반부터 교회관이 변하고 있습니다. 제2차 대전으로 서구 식민지 선교가 공백을 이루면서 제도권 교회 밖 그리스도인의 사도적, 원시적 가정교회 시대가 재현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서구의 식민지 선교 방식을 지적하고 비서구에서의 사도적 선교 방식을 주창하며 비서구세계 선교운동에 크게 이바지한 조동진 박사는 "사도 시대와 속사도 시대에는 제도화된 교회가 없었고 다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무리들의 모임이 있었을 뿐"이라며 "이제 서구의 제도적 교회는 종식되고 비제도적, 사도적 신앙공동체로의 교회관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조동진선교학연구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KEMS)·GMS(예장합동 총회세계선교회) 공동학회에서 '비서구세계 선교운동의 역사적 조망'을 주제로 발제한 조 박사는 "한국 선교지도자들은 21세기 기독교가 사도 시대, 원시기독교 사회 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제도적 교회 선교의 울타리를 넘어 원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의 새로운 교회 시대에 적응하는 선교정책과 전략을 펼쳐나가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조동진 박사의 비서구세계 선교활동

그는 1966년 제2차 대전 후 최초의 선교대회인 세계전도대회와 1969년 아시아태평양지역 전도회의에 참석하면서 아시아 선교지도자들의 상호 협력을 추진해 1973년 서울에서 범아시아선교지도자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조 박사는 서구 식민지 선교와의 단절, 사도적 선교 원리 계승, 비서구 선교세력의 단결과 협력을 주장했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국제대회에서도 그는 서구 제국주의 세계에서 식민지를 향하는 선교구조를 버리고, 동과 서, 남과 북, 세계 모든 민족으로부터 모든 세계를 향해 흩어지는 선교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서구 선교세력 개발을 위한 그의 이러한 노력은 1975년 아시아선교협의회(AMA) 창립으로 결실을 맺는다. 또한 AMA 대회에 참석한 현지인 지도자들을 통해 1978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선교협의회, 1982년 브라질선교협의회, 1986년 라틴아메리카 선교공동체(COMIBAM) 등이 조직됐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선교 지도자들이 참여한 1986년 제4차 AMA 대회를 계기로 1989년에는 제삼세계선교협의회가 창립돼 초대회장을 맡았다.

그가 1967년 설립한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은 1973년 이후 30년 가까이 비서구세계 선교운동을 개척, 연구, 개발하는 일을 담당했다. 조 박사는 "내가 말한 서구 식민지 선교와의 단절은 결코 서구 선교지도력을 제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2000년 역사는 헌신적이며 역동적인 서구 선교지도력이 이끌어온 역사로, 서구 선교지도력이 축적해 온 지혜와 지식이 비서구세계 선교지도력 개발에 사용되도록 동서가 함께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며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이 이런 과업에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 '사도적 선교원리' 계승

한편 AMA는 200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8차 대회에서 아시아선교학회(ASM) 조직을 요청, 2007년 방콕에서 ASM 선교학술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선교학자들의 발표 후 서구 선교학자들의 평론이 이어졌는데, 조나단 봉크 박사는 아시아 신학과 선교학이 콘스탄틴 황제 이전 시대에 뿌리를 가진 기독교 신앙, 사도적 선교신학으로 돌아갈 수 없느냐고 논평했다. 조동진 박사는 "콘스탄틴 황제의 312년 밀라노 칙령 이후의 기독교는 사도적 신앙에서 크게 멀어진 황제의 교회, 황제의 선교라는 정복과 지배의 선교로 변질됐다"며 "서구선교는 콘스탄틴 이후 오염되고 변질되어 교황의 신성로마제국의 세계 정복을 위한 가톨릭 선교와 서구 기독교제국들의 식민지 선교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나단 봉크의 말대로 우리 아시아인의 선교학은 콘스탄틴 이전의 사도적 선교원리로 회귀해야만 한다"며 "비서구선교가 서구선교와 차별화 되는 것은 사도적 속성에 기초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사도적 선교원리에 대해선 "사도들은 나라 없는 망국 백성으로 태어나 나라 밖으로 두루 다니며 자신들을 지배하는 로마 제국 영토에 흩어져 있는 난민이었다"며 "피압박 민족으로 나라도 없고 거주의 자유도 없이 박해받고 쫓겨나 흩어진 무리들이 시작한 것이 사도적 선교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곧 사도적 선교는 강하고 부유하며 힘 많은 나라의 선교가 아닌, 약하고 가난하며 힘없는 나라들의 선교라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서구선교는 강하고 부유한 기독교 국가들이 자신들이 정복한 식민지에 선교사를 보내는 식민지 선교였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그는 "일본 군벌에 나라를 빼앗긴 피압박 민족으로, 1910년 한국교회가 시작한 중국 산동성 선교는 사도시대 선교처럼 나라 없고 가난하며 압박받는 민족이 세계 최대 국가인 중국을 향한 선교였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이처럼 한국 민족 선교의 역사적 배경에는 사도적 선교 DNA가 존재한다"며 "한국교회 초기 선교운동은 사도적 선교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은 선교였고, 한국이 이어받은 사도적 선교의 DNA는 비서구세계 선교운동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도적 선교의 DNA①박해받는 백성들(oppressed people)이 흩어져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한 선교운동 ②나라 잃은 민족들(stateless people)로서 떠돌아다니는 유랑민들의 선교운동 ③강대국에 정복되고 압제 받는 힘 없는 민족(powerless people)의 선교운동이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④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선교지를 찾아다니는 순회선교(itinerant mission) ⑤다시 오실 예수를 예언하는 종말론적 선교(eschatological mission) ⑥복음을 위한 순교정신이라고 설명했다.

■ 사도적 신앙공동체로의 '회귀'

조동진 박사는 월드 크리스천 엔사이클로피디아의 2000년 통계자료를 인용해 오늘날 제도적 교회 밖의 그리스도인이 2억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인도에는 2,410만 명의 힌두문화권 속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있고, 아프리카에는 제도적 교회 밖의 작은 신앙공동체를 이룬 그리스도인이 5,200만 명을 넘는다. 중국의 삼자교회 밖의 비제도적 가정교회 그리스도인의 수도 7,000만 명 이상이다. 조 박사는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제도적 교회에 대한 인식 때문에 프리 크리스텐덤 시대의 신앙공동체로서의 순수한 교회관에 생소해졌다"며 "새 시대는 20세기를 지배하던 개발과 프로젝트 중심의 선교에서 신약성경이 계시하는 종말론적 사도시대의 선교 원리로의 회귀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제도와 구조를 탈피한 신약성경의 역사적 원형인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공동체(Believers' Fellowship)로서의 신약성경의 원형적 교회를 창출하는 선교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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