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석궁

평화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통일의 의의는 바로 자유와 인권의 보장이다. 남과 북이 분단상황으로 인해 겪고 있는 각종 폭력과 인권 유린, 그리고 개인의 자유의 억압은 하루 빨리 해소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예배하고 복음을 전파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각종 구금시설과 수용소, 산간 오지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의 현실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은 단순히 장기적인 이익을 보기 위한 행위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록 힘들고 손해보고 대가를 지불하는 일이라 할 지라도 희생을 감수하고 추진해야 할 과업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그 자유가 없는 체제 가운데서 박해 받고 억압받는 북한 성도들과 주민들에게 향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송인호는 잠언 24장 11-12절 말씀을 인용하여 통일이 우리에게 큰 불이익이 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당장 통일을 이루기 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잘 준비하자는 논리로 통일을 미루자 이야기하는 것은 경제적 궁핍함과 심각한 인권 유린 상황 속에 있는 북한의 주민과 성도들이 하루빨리 자유를 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손익만을 계산하는 이기심의 발로라고 지적한다.

준비의 중요성을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각 영역에서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가는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특별히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통일을 원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고 점검해보아야 한다. 물론 통일로 인해 더욱 진취적이고 발전되는 나라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통일로 인해 겪을 어려움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통일 초기 비용으로 인한 불이익과 사회적 혼란,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부담스러워 한다. 통일로 인해 지출되는 비용과 기대 효과에 대해서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통일은 장기적으로는 분명 경제적인 이득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통일 초기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시기에 겪을 어려움의 정도와 이러한 어려움이 지속되는 기간의 길이에 대한 문제이다. 분단이 길어지고 남과 북의 경제력의 차이가 벌어지고, 남북의 이질화가 심각해질수록 통일 비용이 증가할 것임은 명백하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분단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통일 비용을 줄이는 나은 방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통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켰고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이전의 죄인의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태어나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또한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그간 우리 안에 있었던 모든 차별을 벗어 던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3:26-29)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성도들은 통일이 하나님의 복음이 아무런 차별 없이 북한의 동포들에게도 전파되어 남과 북이 함께 주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거룩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북한 주민들도 하나님의 귀한 축복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약속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듣고 믿고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통일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중요하다. 아니,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통일보다도 우선한다. 통일 여부와 상관 없이 복음은 지금 이 순간이라도 증거되어야 하는 긴급하고도 피할 수 없는 사명이다.

지금 선교 현장에서 어려운 가운데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듣는 비판 중 하나는 ‘괜히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그들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고 책임을 지지 못할 일을 한다’ 라는 것이다. 사실 제3국에서 복음을 듣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들 중에 순교하신 분들에 대한 소식도 들리기도 하고 또 북한 당국이 강제 송환 과정에서 한국인 선교사와의 접촉여부 및 기독교 신앙을 가졌는지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고문하고 발각될 경우 끔찍한 처벌에 노출된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왜 무리하면서 복음을 전하는가에 대해 일부 기독교인들도 비판의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복음의 중요성과 가치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렇게 복음의 전파가 막혀있는 때일수록 복음을 전할 방법을 찾고 이를 위해 애써야 함을 알 수 있다. 체제의 통제 속에 이 땅에서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였는데 영적으로도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고 죽어간다면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보실 때, 또 우리 한국 교회를 보실 때 같은 민족이요 억압받는 북의 형제, 자매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으실까?

북한의 주민들을 불쌍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활동하신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그들에게 주고 싶어하실까? 우리는 친구의 도움으로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와서 치유를 구했던 한 중풍병자에게 육체의 치유보다도 먼저 죄사함을 선포하셨던 (막 2:3-12) 그리스도의 마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선포로 인해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공격 당하시는 등 곤란함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에 개의치 않으시고 먼저 죄사함의 복음을 전하셨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복음적 통일은 복음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통일이어야 함과 동시에 바로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는 통일이어야 한다.

통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칫 정치적인 관점, 이념적 관점, 또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쉽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를 계산하는 데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통일은 하나님의 관점과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비록 어려움과 역경이 앞에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우리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통일 문제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쉽게 통일을 위한 동기와 열정을 잃어버리고 어려움이 올 때 넘어질 수 밖에 없다. 2017년을 맞이하는 이때, 우리의 마음의 동기를 다시 한번 점검하며 하나님의 눈으로 이 한반도와 통일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하며 나아가자.

/출처=오픈도어선교회 2월 박해소식지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북한선교현장 #박해소식 #통일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