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지하1층 새가족부실에 마련된 방지일 목사의 빈소.   ©오상아 기자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지난 10일 새벽 소천한 고(故) 방지일 목사가 마지막까지 몸 담았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교회(담임 임정석 목사)의 12일 주일은 더 특별했다. 이날 이 교회에 마련된 방 목사님의 빈소를 지키고 있던 여전도회 총무 김정진 권사로부터 생전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 권사는 방지일 목사를 회고하며 영등포교회를 비롯해 이 지역 화평교회·노량진교회·소망교회·신촌교회 등 5개 교회 집사, 권사들이 모인 초교파 선교회인 루디아어린이선교회 명예회장으로 작년 10월까지도 매주 목요일 오전 성경공부를 인도했던 때 얘기를 들려줬다. 

사랑의 기억들은 정말 한도 끝도 없을 듯 하지만, 한 토막이지만 방지일 목사의 삶의 단편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김정진(가장 왼쪽) 권사와 영등포교회에 마련된 고 방지일 목사의 빈소에 조문 온 외부 조문객들을 섬기는 여전도회 회원들.   ©오상아 기자

김정진 권사는 "3층까지 올라와야 해서 힘드셨을텐데도 (방지일 목사님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하는 성경공부에 한번도 시간을 어긴 적이 없으셨다"며 "끝나는 시간도 12시로 정확했다"고 말했다.

김 권사는 "작년 개강 때까지도 말씀을 서서 전하셨다. 무릎이 굉장히 안좋으셔서 저희가 앉아서 전해달라고 하면 '하나님 말씀을 앉아서 가르치노'라며 앉지 않으셨는데 공부하시는 집사, 권사들이 '그러면 저희도 서서 듣겠습니다'하니 작년 봄부터는 앉아서 하셨다"고 말했다.

또 "(방 목사님은) 우스운 소리도 잘 하셨다. 저는 손자가 있으니까 '젊은 할매 왔수' 하시면 다들 웃고 참 재미있게 공부했다"며 김정진 권사는 "이제는 목사님 말씀을 못 들어 아쉽다. 목사님이 100세가 넘으셨는데 성도 입장에서는 더 전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올해 6월에 월례회 때 말씀 전해 주셨는데 (이렇게) 못 뵐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겨울방학이라고 쉰다고 내년 봄에 만나자고 하셨는데 몸이 안좋으셔서 못 오시고, 올해 6월 월례회에서 말씀 전해주신게 마지막이다"며 "저희가 매달 월례회로 모일 때마다 방 목사님 위해서 기도했는데..."라며 "어제도 각 교회에 루이다어린이선교회 권사님들이 오셔서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김 권사는 이어 "방지일목사님기념사업회에서 초등학교였던 2층 건물을 사서 운영하는 영수원에서 올해 1박2일로 말씀을 듣기도 했는데 너무 좋았다. '내년에 또 와' 그러셨는데..."라며 "거기는 저희 교회 성도 부부가 섬기고 있는데 2층에는 목사님 주무시는 곳도 있고 공기도 좋아 목사님께서 참 좋아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말을 이은 김 권사는 "지금 교회가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데 건축하고 입당예배 드릴 때까지 방 목사님이 함께 계시기를 기도했는데... 저희끼리는 '이 교회 떠나기 싫으셔서 지금 가셨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고 방지일 목사에 대해 회고하며 그는 "목사님이 이북분이라 냉면을 좋아하셨다"며 "이북분들은 꿩고기 냉면을 많이들 좋아하시는데 방 목사님도 좋아하셨다"며 또 "성경공부가 끝나고 저희가 갈비탕을 사드리면 디저트로 팥을 곱게 갈아 만든 단팥죽이 나왔는데 참 좋아하셨다. 단것을 좋아하셔서 커피도 커피 한스푼에 설탕 7~8스푼을 넣으셨다"고 기억했다.

김정진 권사는 "올해 저희 권사회에서 목사님을 뵈러 가려고 했는데 목사님께서 흐트러진 모습 보여 드리지 않으시려고 하니 가는 것이 폐가 된다고 교회에서 못 가게 하셔서 가지는 못했다"며 "아주 깔끔하시고 흐트러짐이 없으셨다"고 말했다.

▲십자가가 우뚝 선 영등포교회.   ©오상아 기자

김 권사는 또 "교인들의 자녀들도 아기들까지도 이름을 다 외우실 정도로 기억력이 좋으셔서 전 교인의 이름을 다 아실 것이다. 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플때도 새벽마다 기도해 주셨다"며 "보통 분이 아니시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제는 저희 성도이신데 태국으로 선교사로 가신 강성민 성도 가정도 최근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방 목사님이 소천하셔서 사흘만에 다시 들어오셔서 어제 신촌세브란스병원의 빈소에 조문을 오셨다. 그리고 태국에 선교 가신 홍경화 목사님 부부, 교회에서 사역하셨던 여전도사님도 부산에서 어제 올라오셨다. 은퇴 권사님들은 자녀들이 부축해서 오시기도 하셨다"고 전했다.

교회의 큰 기둥 같던 방지일 목사가 소천했지만 교회의 웹사이트나 주보를 보면 방 목사의 소천 소식을 드러나지 않게 담담하게 전해, 그것에 관해 물었더니 김정진 권사는 "방지일 목사님 성격 자체가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셔서 교회도 이를 이어가는 것 같다"며 "순복음교회 교인들이 저희 교회에 오면 처음에는 너무 조용하다고 안좋아하기도 하는데 나중에는 깊이가 있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김정진 권사는 "방 목사님은 옛날부터 '하나님이 귀가 안들리시나'라고 말씀하시며 성경에서도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라 하셨는데 크게 기도해야 하느냐고 하셨다. 또 거룩한 장소이니 교회에서 북 치고 이런 것도 싫어하셨다"며 "청년모임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수긍하셨지만 어른예배때는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고 기억했다.

덧붙여 "큰 교회, 작은 교회를 떠나 어느 교회서라도 초청하시면 다 가실 정도로 그렇게 복음 전파에 열정적이셨다"며 "거목도 그런 거목이 없다"고 고인에 대해 말했다.

또한 2대 원로이자 영등포교회의 13대 담임목사로 방지일 목사를 섬긴 김승욱 목사에 대해 "김승욱 목사님은 진짜 방지일 목사님 오른팔처럼 섬기시고 아들도 그런 아들이 없다"고 칭찬했다.

또 다른 한 권사는 방지일 목사를 회고하며 "1967년에 결혼할 때 저희 주례를 서주셨다"며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루는 것이 충분하게 자격이 있는 훌륭하신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또 "방지일 목사님은 대접하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장로, 권사 임직식이 있으면 늘 사비로 선물을 준비하셔서 주셨다"며 또 "매년 장로들을 불러, 권사들을 불러 음식으로 대접해 주셨었다. 또 본인이 책을 내시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선물로 주셨다"고 말했다.

또한 김승욱 목사에 대해 "비서이자 정말 아들같이 방지일 목사님과 동고동락하셨다"며 "저희가 보기에는 큰 나무 아래 있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계시는 것만 따로 사셨지 방 목사님이 가시는 곳은 어느 곳이라도 같이 가셨다. 훌륭한 목사님과 함께 계셔서 김승욱 목사님도 정말 사랑이 많으시고 변함이 없으시다"고 증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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