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콤브 박사
뉴콤브 박사 ©크리스천포스트

[기독일보] 크리스천포스트의 객원 컬럼니스트이자 제임스 케네디 기념 도서관(D. James Kennedy Legacy Library)의 문서 보관 담당자인 제리 뉴콤브(Jerry Newcomb) 박사는 "조지 워싱턴이 이곳에서 예배드렸었다(George Washington Worshiped Here)"는 제목의 기고글을 통해 조지 워싱턴은 기독교인이었으며,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뉴콤브 박사는 "역사적인 장소에 가면 항상 '조지 워싱턴이 이곳에서 잠을 잤다'는 사인을 볼 수 있다는 농담이 있곤 했다. 그런데 나는 다수의 교회에서 '조지 워싱턴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었다'는 사인을 걸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조지 워싱턴의 기독교 신앙은 유대-기독교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 건국의 정신의 핵심요소"라고 말했다.

최근 수십년 간 미국에서 정부와 학교 등에서 기독교적 요소를 배제시키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등 반기독교적인 흐름이 커져가고 있지만, 미국은 기독교 정신 위에 지어진 국가이며, 그 뿌리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의 기독교 신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들을 잘 알고 있는 미국 내 반기독교주의자들은 조지 워싱턴의 기독교 신앙을 희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뉴콤브 박사는 "조지 워싱턴은 일생 동안 예배에 출석하는 헌신된 기독교인이었다"면서 "출석이 어려울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가 청년 시절에 다녔던 모교회는 버지니아주 로턴(Lorton)에 있는 포힉 처치(Pohick Church)였고, 노년에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이 중간에는 다른 주의 여러 교회에 출석했었다고 설명했다.

뉴콤브 박사는 "이들 교회의 제단 뒤에 있는 장식벽에는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 십계명 등이 적혀 있는데, 이는 예배자들이 큰 소리로 이들을 암송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개인적으로 이들 교회 중 상당수의 교회에 방문했었다"고 말했다.

뉴콤브 박사는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조지 워싱턴이 기독교인이 아니라 이신론자(Deist)라고 주장한다"면서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들이 그러한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신론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는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과 섭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 이 세상과 인간에게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 - 편집자 주)

그는 "나는 피터 릴백(Peter Lillback) 박사와 함께 건국 아버지 조지 워싱턴의 신앙에 대한 책 '조지 워싱턴의 거룩한 불(George Washington's Sacred Fire)'을 공동집필했는데, 이 책은 미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 일평생 동안 활발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알려준다"면서 "그의 수양딸은 '아버지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면, 그의 애국심에도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뉴콤브 박사는 "그러나 슬프게도 사람들은 조지 워싱턴의 신앙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면서 "한 사람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몇몇 건국 아버지들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나의 언급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의 반박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은 성찬식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교구 신부에 의해 훈계를 당한 후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멈추었다. 이것은 조지 워싱턴이 계속 교회에 출석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른 것이다.

뉴콤브 박사는 이에 대해 "그의 반박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버논 산(Mount Vernon)에 방문해보면 빨간색 사륜차(chariot)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교회를 출석할 때 이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이 말년에 정기적으로 출석했던 교회도 방문할 수 있다. 교회 건물은 지금도 건재하며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성공회 교회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로, 이 교회는 조지 워싱턴의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회에 가면 조지 워싱턴이 이용했던 박스 칸막이로 된 신자석(box-pew)을 볼 수 있으며 앉아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뉴콤브 박사는 "특히 버지니아주 로턴의 포힉 처치는 젊은 시절에 섬겼던 조지 워싱턴의 모교회로, 그는 이곳에서 장로와 집사 직분을 겸하는 교구위원(vestryman)이었다"면서 "교구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성공회 교회 교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지 워싱턴이 이 교회 건물을 지을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선정하기도 했다면서 이는 동료 교인이자 또 다른 건국 아버지인 조지 메이슨(George Mason)의 제안을 제친 것이라고 언급했다.

뉴콤브 박사는 "조지 워싱턴이 예배를 드렸던 다른 교회들도 방문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박스 칸막이로 된 신자석과 제단 뒤의 장식벽들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곳은,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Colonial Williamsburg)에 있는 브루턴 패리쉬처치(Bruton Parish Church - 버지니아 주 의회 하원의원일 당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명연설을 남긴 미국 독립 혁명 지도자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와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과 함께 예배를 드렸던 곳), 로드 아일랜드 뉴포트의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Trinity Episcopal Church), 필라델피아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헌법 제정 회의를 주재할 당시 여름 동안 조지 워싱턴이 예배드렸던 곳), 뉴욕 월스트리트 인근의 세인트 폴 채플(St. Paul's Chapel)이다.

1789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조지 워싱턴은 새로운 국가를 하나님께 봉헌하는 두 시간에 걸친 기독교 예배를 세인트 폴 채플에서 드리는 것을 주도했다.

이 예배에는 성만찬이 포함됐는데,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여사 등 목격자들에 따르면 워싱턴도 성만찬에 참여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이 성만찬에 항상 참여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뉴콤브 박사는 "독립전쟁 동안 조지 워싱턴은 영국성공회 수장이자 영국왕이었던 조지 3세에 대항하는 반군을 이끌었는데, 그의 양심이 성공회의 성만찬에 참여하며 왕과 같은 믿음을 기념하도록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지 워싱턴은 전쟁 중에는 뉴저지주 모리스타운의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뉴콤브 박사는 "조지 워싱턴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를 믿었다"면서 "왜 이것이 중요한가? 나는 무엇이 가장 먼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역사를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미국의 탄생과 자유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이 가장 크고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우리가 과거에 어떠했는지 알지 못한다면, 현재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미국의 역사와 과거, 뿌리, 그 핵심에 있는 기독교 신앙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제리 뉴콤브(Jerry Newcombe) 박사는 제임스 케네디 기념 도서관의 문서 보관 담당자로, 고(故) 제임스 케네디 박사는 '전도 폭발(Evangelism Explosion)'의 창시자이며 플로리다 주 로더데일에 있는 메가처치인 코럴릿지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다 지난 2009년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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