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 : 마 28:1~10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2. 묵상

"아버지, 우울과 죽음, 그 너머의 무엇을 바라보나이다. 그로 인해 놀랍고 두려워하나이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 너머의 세계, 주님의 부활입니다. 제가 그 앞에 엎드립니다. 경배합니다. 죽음 너머의 부활신앙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아멘"

예수의 죽음과 무덤.
그것을 목도한 여인들이 다시 '그 무덤'을 찾는다.
예루살렘 성전 맞은편, 감람산은 무덤의 산으로 불린다.
이름 모를 수많은 무덤에 이름 모를 수많은 주검들이 누워있다.
어느 한 무덤도 비어있지 않다. 그런데 오직 하나의 무덤만 비어 있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아니하느니라. 그는 살아나셨느니라"(6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만 비어 있다.
여인들은 그의 주검에 향유를 붓고자 무덤으로 달려갔다(막 16:1).
그 때 큰 지진이 일어나고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는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천사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4절).

천사가 여인들에게 예수의 부활 소식을 알린다.
그리고 속히 가서 제자들에게 알리고 그들로 하여금 갈릴리로 갈 것을 명한다(7절).
이에 여인들은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속히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달려간다.
바로 그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인들에게 나타나신다.
여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한 명령을 재차 말씀하신다.
죽음 너머에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첫 음성은 "두려워 말라"이다.

인간의 두려움은 '미지의 것'(the unknown)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지의 것이 갖고 있는 어두움은 두려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낯선 사람의 얼굴은 젖먹이들을 놀라게 한다.
부모와 교사의 알려지지 않는 의도는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자아낸다.
어떤 상황이나 새로운 과제가 갖고 있는 미지의 것은 두려움을 가져온다.
그것은 곧 자신이 그 상황이나 과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이다.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절대적인 '미지'(未知)이다.
죽음의 어두움 속에는 아무런 빛이 없고, 그 안에서는 모든 상상력도 소멸된다.
그 안에서는 모든 행위가 무력해지고 통제는 중단된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하는 필연이며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불가능한 개념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치명적인 두려움이다.

그런데 죽음 자체보다 더 두려운 실체가 실재한다.
그것은 인간만이 느끼는 것으로 곧 '죽음 너머의 그 무엇'으로 인한 두려움이다.
이것이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두려움인 것이다.
여기서 '죽음 너머의 그 무엇'은 '영원'을 잃어버린 실존이 심상하고 상상하는 세계이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죽음 너머의 그 무엇을 탐구하여 왔다.
그것은 죽음이 가져오는 두려움을 불식시키기 위한 영적 지혜의 추구였다.
이는 고대사회에서는 신화로, BC 8세기 이후의 기축시대에서는 철학과 종교로 실제화 되었다.
그래서 모든 신화, 철학, 종교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드러내며 그 해법을 제시한다.
고대철학의 영혼불멸사상에서 동양의 윤회사상에 이르기까지 죽음 너머의 세계를 진지하게 다룬다.
기실 인간은 죽음 너머의 세계를 해결하면 실상 근본적인 두려움을 해결하는 셈이다.

오늘 무덤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죽음 너머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으로 인해 무서워 떨며 죽은 자 같이 된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시도했으나 결코 해결할 수 없었던 죽음 너머의 그 무엇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그에게 '죽음 너머의 그 무엇'은 부활이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 너머의 세계가 현실 속으로 들어온다.

그 첫 증인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이다.
귀신들렸던 마리아, 가장 비천한 인생 중에 예수를 만난 막달라 마리아...
두 아들을 주의 제자로 드린 다른 마리아(막 16:1)...
여인들이 예수의 죽음 너머의 세계를 처음 보았다.
그들은 심히 두려워한다. 그러나 거기 큰 기쁨이 있다.
"그 여자들이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8절).

인간의 신화, 철학, 종교는 '죽음 너머에 대해' 모호한 희망을 논한다.
'선행을 했으니 좋은 데로 가겠지...'
애석한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부디 좋은데로 가기 바란다'
이런 말들은 죽음 너머의 두려움을 마비시키는 환영(幻影)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죽음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선행을 하고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평생을 살았던 부자는 죽음 너머 영원히 고통 받는 곳으로 간다(눅 16:23-24).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에 대한 해답이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두려워하고 궁구하던 죽음 너머의 세계, 거기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에 대한 최상의 축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고전 15:20).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반드시 부활한다.

인생의 의미는 곧 죽음의 의미이다.
죽음은 모든 시간, 성취, 명성, 생명까지도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의 의미는 곧 죽음 너머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죽음 너머의 의미는 곧 현재의 삶의 궁극적 의미가 된다,

바울은 죽음 너머의 세계를 보았고, 거기로부터 현재를 살아갔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그는 죽음 너머의 부활을 믿었기에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하게 보이는 삶도 의미 있게 살아냈다.

그렇다면 죽음 너머의 부활을 믿는 자가 이 세상에서 의미 있게 사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곧 부활 신앙으로 축약된다.
인생이 다만 이생뿐이라면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면 그만이다(고전 15:32).
그러나 죽음 너머의 세계가 부활인 것을 아는 자는 깨어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전 15:34).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악한 동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전 15:33).
죽음 너머의 부활을 알지 못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고전 15:34).

적극적으로 죽음 너머의 부활을 아는 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한다.
맹수와 같은 인간들과 싸우면서 영생의 복음을 전한다(고전 15:32).
이를 위해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받고, 살 소망이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는 고난이 있어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으며 하나님만을 의지한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위로로 견디며 사명에 충성한다.
이것이 죽음 너머의 의미를 아는 자의 현재적인 삶이다.

*******

나는 누구인가? 말씀 앞에서 묻는다.
나는 주님의 부활을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맞이했는가?
죽음 너머의 세계가 오늘 나의 생의 의미가 되고 있는가?
성령이 묻는 물음 앞에 심히 부끄러운 자가 되고 고개를 떨군다.
나는 입술로만 주님의 부활을 고하였지, 부활신앙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나의 생의 의미는 죽음 너머가 아니라 이 땅에 천착하고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불안해하는가?
결국 죽음 너머가 아닌, 이 땅의 일로 인한 것임이 밝혀진다.
말씀을 속일 수 없다. 성령님을 속일 수 없다.
세상에 대한 집착, 육신에 대한 집착은 부메랑처럼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이 아침, 성령께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나를 인도하신다.
주님의 부활 앞에 메마른 심령이 된 나를 보고 경악한다.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달려가는 여인들이 나를 심히 부끄럽게 한다.
부활의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오, 주여... 이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3. 기도

아버지...
죽음 너머의 세계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현실의 세계에 집착하며 번민하고 고민하고 고통을 받았습니다.
생의 의미는 혼돈과 불안으로 점철되었고, 생의 현실은 척박합니다.
오, 주님... 나로 눈을 열어 죽음 너머의 세계를 보게 하소서.
그것은 부활의 첫 열매되신 주님을 따라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 새벽, 다시 부활의 주님 앞에 섭니다.
큰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섭니다.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가라고 하십니다.

나의 갈릴리, 부활신앙으로 생명을 전하는 곳입니다.
부활신앙으로 깨어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부활신앙으로 악한 동무와 어울리지 않게 하소서.
부활신앙으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부활신앙으로 생명을 다하여 복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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