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선교선 '로고스호프' 전경.   ©이지희 기자

[기독일보·선교신문 이지희 기자] 로고스호프II, 둘로스에 이은 오엠선교회의 선교선 '로고스호프'는 역사는 짧지만 다른 어떤 선교선보다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2004년 전세계의 후원을 받아 구입한 로고스호프는 이듬해부터 크로아티아 남부 항구 도시 트로기르(Trogir)에서 수리를 거쳐 2009년 항해를 시작했다. 로고스호프는 2010년 8월 라이베리아에서 1백만 번째 방문객을 맞았고, 80개 학교에 5만 권 이상의 책을 기증했다.

2011년에는 북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에서 5개월 동안 38만 6천 명이 로고스호프에 방문해 이 지역에 도움과 지식, 희망을 전했다. 2012년에는 둘로스 자원봉사자들이 필리핀 세부에서 시작한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이 로고스호프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에는 캄보디아에서 국제단체인 호프 포 위민 인터내셔널(Hope 4 Wemen International)과 직접 수놓아 만든 7천여 벌의 핸드메이드 옷을 여자아이들에게 전달했다. 또 7월 필리핀 푸에트로 프린세사에서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등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로고스호프 한국방문위원회 홍보담당 강민구 선교사는 "로고스호프에 매년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는데, 아무래도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이나 가난한 나라에서 훨씬 많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 새벽 6시에 시작되는 로고스호프의 하루

로고스호프에서의 생활은 겉으로 보이는 사역과 달리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승무원들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시작된다. 한국 성도들이 새벽기도를 드리는 시간, 세탁, 청소, 제빵, 설거지 등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배를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백조가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물갈퀴질을 열심히 하는 것과 비슷해요. 선내 카펫과 2백 곳이 넘는 화장실 등 청소를 담당하는 승무원만 20~30명입니다."

취업 전 선교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은 마음에 1년 전 승선한 전유호 씨는 배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전 씨는 "배에 타기 전엔 라면만 끓이다가 이제는 입맛이 다른 60개국 4백 명의 하루 음식을 챙겨주고 있다"며 "나와 다른 사람, 다양한 문화에서 온 사람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전 씨는 특히 "각자 문화가 달라 선의의 뜻이 오해가 되고,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며 "한국에 오기 전까지 10개월간 15개국을 방문하고, 60개국 승무원들과 지내면서 지금은 국제적인 친구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로고스호프 식당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은 하루 1400명 분량의 음식을 만든다. 기자는 강민구 선교사의 특별한 배려로 선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직접 구워낸 식빵과 머핀, 얇게 썰은 소시지, 다양한 야채를 넣어 만든 담백하고 짭짤한 수프, 샐러드 등이 뷔페로 나왔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강 선교사는 "배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이 아주 크다"며 "사실 점심 메뉴는 1년 내내 비슷하게 나와서 승무원들의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을 든든히 먹는 나라, 저녁을 잘 먹는 나라,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나라 등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다 들어주긴 힘들다"며 "재미있는 것은 국적 불명의 음식도 많이 나온다. 음식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그 어떤 나라의 문화도 아닌 로고스호프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의 보안과 관련된 일을 1년 반 동안 해 온 프랑스인 실뱅 씨(Silvain Fauriaux)는 하루 8시간(9시 출근, 5시 퇴근)의 업무 외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보통 다른 나라 언어나 문화를 배운다"고 말했다. 과거 북아프리카와 유럽을 오가며 비즈니스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그는 "로고스호프에서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며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서로 협력하는 것, 곧 공동체적 삶을 배웠다"고 말했다.

◆ 승무원들을 위한 '멤버케어'

로고스호프 승무원들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일상과 달리, 잦은 환경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다. 1년에 두 번씩 새로운 자원봉사자들이 승선하고, 매년 10여 개국을 방문하면서 기후, 언어, 문화, 친구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멤버케어는 필수다.

강민구 선교사는 "오래 승선한 사람이나 가족이 승선한 경우, 이들의 성을 따라 '패밀리 이름'을 정하고, 정기적인 소그룹 모임을 한다"고 말했다. 물론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크게 싸우면 배에서 내려야 하지만, 대부분 소소한 갈등과 문제들이라 각자 해결해 나간다.

강 선교사는 "로고스호프가 변화가 굉장히 많은 곳이지만 2년쯤 지나 3~4년쯤 되면 그 '변화'에 무감각해지기 쉽다"며 "모든 사람을 예수님처럼 대해야 하는 사역이므로 무감각해지면 끝이다. 배에서 내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보통 배에 2년 정도 승선하는 이유다.

▲강민구 선교사가 로고스호프에 비치된 구명벌을 설명하고 있다.   ©채경도 기자

◆ 철저한 안전 교육, 훈련은 기본

모든 승선자는 해병대 훈련과 비슷한 안전 훈련을 받는다. 수영을 못해도 2인 1조를 이뤄 구명벌을 뒤집는 훈련을 최소 1년에 한 번 이상은 한다. 엔진배, 구명보트를 바다 위에 안전하게 내리는 훈련도 전원 받는다. 물론 전문 구조팀은 자격증을 갖춰야 하고, 화재진압, 심폐소생술 등 단계별로 훈련을 정기적으로 한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경우를 대비해 정원보다 구명조끼, 구명보트 등도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강 선교사는 많은 방문자로부터 로고스호프는 안전에 어떻게 신경 쓰고 있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은 로고스호프만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입니다. 특히 유럽 출신 선원들은 안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훈련 받아왔기 때문에 더 철두철미합니다."

▲엔진이 달린 구명보트. 로고스호프는 정기적으로 안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채경도 기자

◆ 로고스호프의 '5대 부서'

배에는 크게 A~E까지 5대 부서가 있다. 각종 청소를 담당하는 숙소팀(Accommodation), 로고스호프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인 서점팀(Book fair), 음식을 공급하고 설거지를 하는 케이터링팀(Catering), 갑판에서 궂을 일을 하는 갑판팀(Deck), 엔진룸에서 종일 일하는 엔진팀(Engine)이다.

로고스호프 승선 당시 갑판에서 자원봉사를 한 강 선교사는 "일과를 마치고 부서끼리 기도할 때가 가장 감동적인 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들 부르심을 따라 밖에서 설교하고 간증하는 것을 생각하고 왔다가, 돈 내면서 막노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내가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천덕 신부님이 '노동이 기도이고, 기도가 노동'이라고 했지만, 막상 해보면 둘 다 안 되거든요. 그래서 사역 초기에 만족도는 굉장히 낮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모자이크에서 한 조각이라도 없으면 실패한 그림인 것처럼, 우리 한 명 한 명을 모자이크의 한 부분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그것을 이뤄나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일은 힘들어도 자부심을 갖고,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여 일하는 갑판팀과 달리, 카펫, 화장실 청소, 세탁, 설거지 등을 하는 숙소팀, 케이터링팀은 웬만해선 오래 머물려 하지 않는 부서다. 사역이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특별한 기술, 경력을 쌓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강 선교사는 "노동 자체만 2년 동안 하는 사람, 특히 동양인 중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며 "갑판팀, 엔진팀 등 힘든 부서에도 서양인이 많은 것을 보면, 사역으로서 직업의식이 서양이 더 투철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나가서 뛰는 선교사는 아닌 것 같고,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도울 수 있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로고스호프에서 2년간 설거지 봉사를 해온 이원희 씨.   ©채경도 기자

◆ 2년간 설거지하며 '순종·섬김' 배운 이원희 씨

강민구 선교사는 "그러나 한국인 중 설거지만 2년을 한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고 말했다. 마침 투어가이드로 자원봉사하고 있던 동안교회 청년부 이원희 씨를 강 선교사의 소개로 만났다. 그는 겸손했다.

"제가 나가서 뛰는 선교사는 아닌 것 같고,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도울 수 있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 생활을 해보고 싶었어요."

2011년 9월부터 2013년 9월까지 로고스호프에 승선한 그는 당시 1년 만에 부서를 옮길 기회가 왔는데도 모두가 기피하는 그 자리에 남았다. 이 씨는 "체력적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육체노동이 좋았다"며 "처음에는 언어도, 몸도, 영적 상황도 힘들었는데 한 사건을 계기로 크게 느낀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의 팀 리더였던 핀란드 출신 19세 자매에게 힘든 상황을 털어놓자, 모든 팀원를 모아 그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때 추억이 강렬했습니다. 똑같이 힘들고 지쳐있는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었으니까요. 우리가 공동체, 가족이라는 것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 씨가 처음 로고스호프에 승선했을 때 가장 큰 문화 충격을 받았던 때는 예배 시간이었다. 눕거나 엎드려서 예배 드리는 유럽 친구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오히려 아프리카 친구들이 예배를 더 엄격히 드리는 것 같았다.

"깔끔한 옷을 입고 정자세로 예배 드리는 문화에서 자유롭게 예배 드리는 그들이 처음에는 적응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화해 보면 잘못된 친구는 아니거든요. 다양한 문화와 형식을 넘어 사람의 내면을 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씨는 또 "젊은이들은 열정과 창의성이 있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며 "하나님은 우리의 다양성을 제각기 필요한 곳에 사용하신다"고 덧붙였다.

그는 승선 기간 필리핀에서의 사역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거리에 사는 수많은 아이를 비롯해 사회의 어려운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필리핀에 더 이상 선교사가 필요 없다는 말은 잘못된 것 같아요. 필리핀에는 어려운 이들을 도울 선교사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로고스호프에는 절반이 새로운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집 떠나있다가 돌아온 느낌"이라는 그는 "앞으로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 필요한 부분을 섬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장기 선교사로 나가거나,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선교단체와 교회가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선교가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처럼 섬김과 인내로 세계 선교를 위해 헌신하며 지금도 묵묵히 '로고스호프'에 올라탄 이들이 있기에 '하나님 나라가 오늘도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자는 배를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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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