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 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느니라 (잠 3:12)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케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 할까 하노라. (출 19:22) 제사장일지라도 돌격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 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 이시로다. (시17:11) 왜 하나님은 자신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을 향하여 돌격하시겠다고 까지 하시는가? 하나님은 속성상 성품이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품고 있는 자를 만나면 견딜 수 없어 하신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어둠에 대해서 심판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영혼들을 그냥 버려 두실수가 없다. 그러면 누가 진노에 해당한가?

1. 진리를 막는 사람 (18) 진노에 해당자는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다

진리는 불변하고 항상 살아 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는 누구를 말하나? 하나님의 존재와 불의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매튜 헨리는 “이들은 진리를 마치 죄 수처럼 감옥에 감금 시켜놓은 것과 같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화있을 진저 하며 책망 하셨다.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 내었을 때 많은 사람은 놀라며 기이히 여겼다고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좆아 낸다고 비난 했다.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지금도 많이 있다. 예수 믿는다고 하지만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나 영적 체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 이다

성경에 나오는 기사와 이적을 부인하는 합리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다. 이성은 생각하는 기능이다. 이성 때문에 비판 할 수 있다. 동물은 웃지 못한다.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 하 는 갈대라고 했다 생각 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면 생각하고 비판 하는 것이 진리를 막는 일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추리 능력을 진리를 막는데 사용하는 자들도 있다.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기억 하면서 미래가 암담하다고 하나님을 원망 하다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남어지 죽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일을 당하게 된다.

그래도 우리는 절대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은 경건하지 않은 자 세이고 불의로 진리를 막는 행위이다.

2, 무엇에 대하여 진노 하신다고 하시나? 경건치 못한 자이다.

경건치 못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칼빈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경건과 사람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라. 고 하였다. 경건치 않은 삶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그 죄 값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 할 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경건치 않은 행동은 불의에 대하여 경건치 않는 사람들이 맺는 열매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우리는 핑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충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알려 주셨다.

(19) 창세로 부터 그의 브이지 않는 것들과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 (19-20)절을 보면 핑계치 못할 이유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본능 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도 아니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 않고 감사치도 않기 때문에 진노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돈으로 산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성경에는 겸손한자에게 주신다고 하셨고 (살전 5:5) 또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으며

마지막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다.

눈에 보이는 몸과 얼굴은 그림자에 불과 하여 생명이 없으면 바로 썩어 버린다. 육신은 보이지 아니하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추구하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거짓에 속아 산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명하신 4가지 계명이 있다. 첫째는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라

둘째는 믿는 자가 되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심 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이 우리 죄로 인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신 사실을 도 마처럼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세상에 실패하고 버림을 받아 악이 성하 원망 스러워도 우리의 죄로 인하여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 당부는 하나님을 사랑 하라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랑 하는 것이 우리의 축복이며 주님을 사랑 할 때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일에도 충성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러할 때 주님은 복음의 동역자인 우리와 함께 하여 능력으로 역사 하신다.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는 자가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자기의 할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이다. 본문 24절에는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은 인간의 욕망대로 사는 자들을 말하며 이러한 자들을 하나님은 버리셨고 버림받은 그들은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게 된다.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은 참 경배에 대한 변질이다.

신지식과 신경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본능이다.

어린애가 젖을 빠는 것은 본능이다. 손가락을 빨고 심지어는 기저귀를 빨기도 한다. 그런데 어린애는 어머니의 젖을 빨아야 한다. 젖을 빨지 않으면 어린애는 굶어 죽게 될 것이고 계속 다른 것만 빨고 있으면 병에 걸려 죽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 본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억제하고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고 있다. 과학이 발달된 현대에도 사람들은 신 본능의 잘못으로 우상을 섬기고 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우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방인들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 돼지 머리를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기도하며 어떤 사람들은 사업, 결혼, 입학, 취직, 질병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점쟁이를 찾아 가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여러 우상을 섬기게 마련이다. 우리 앞에는 두길 밖에 없다. 하나님과 화합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든지 내 생각의 허망한 대로 살다가 불의로 진리를 막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든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자녀로 맞아 주신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5:5-8)진노에서 구원 얻을 길은 하나 밖에 없다.

예수님이 그 진노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진노와 상관이 없게 되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요 믿음의 종교요 의인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자기 수양의 종교도 아니요 자기 공로의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예수와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의 종교요 은혜의 종교요 구원의 종교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선규목사 #로마서 #로마서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