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사람의 생애에는 두 가지 출발점으로 부터 시작 된다.

하나는 그의 태어난 날이요 다른 하나는 그가 이 땅에 태어난 삶의 이유를 아는 날이다.

이 두 가지가 분명할 때 그 사람의 삶의 가치는 달라지게 된다.

(눅2:4-151)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혈육의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할 존재임을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

예수께서 선교의 첫 설교에서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 왔으니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고 말씀 하셨다.

회개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은 지나치리만큼 자기 자신에게 집착한다. 회개란 이런 스타일을 벗어 버리는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렸다.

그 만큼 흥미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학벌, 문벌, 사회적 신분, 심지어 자신의 인격성마저도 분토와 같이 여겼다. 다시 말하면 회개는 세상 생활에서 호적이 떨어지는 것으로 .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보니 세상의 모든 것이 시시해 지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꾸어 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이 회개이다. 하나님을 찾아 돌아오지 않는 회개는 도덕적인 가치는 부여 될 수 있지만 종교적 가치, 다시 말하면 구원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회개 “메타 노이아”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의미 한다. 이 체험을 했던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하나님 당신을 저 버림은 쓰러지는 것이고. 당신께 향하는 것은 일어서는 것이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당신께 돌아가는 것은 새롭게 깨어나는 것이며. 모든 속박으로 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절에는 해방을 선포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고 하였다.

무엇에서 자유인가?

첫째로 죄와 죽음으로 부터 자유이다. 2절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하였음 이라고 하였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죄 값으로 죽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힘이나 노력으로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고 사형을 선고하기 때문에 그것은 죄와 사망의 법이다.

그러나 성령의 법은 죄와 죽음의 법인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 때문에 그것은 복음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우리에게는 정죄함이 없어 졌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죄와 죽음에서 나를 해방 하였다고 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법으로 내가 자유를 얻고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문 5절을 보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 한다고 하였고 6절에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이니라.고 하였고

7절에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였고 너희가 육신 그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보면 우리 사람은 두 종류의 삶의 스타일이 있는데 그 생활의 차이는 마치 남행 열차와 북행 열차의 간격이 멀어져 가듯 영과 육의 생활의 거리도 그렇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생각을 알게 혹은 모르게 회피하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것은 하나님께 굴복치 아니 한 연고이다.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한 여인이 두 남자를 섬길 수 없음 같이 우리가 육신도 만족케 하고 하나님도 만족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 참 신자는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늘 본문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서 구별이 된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1절에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였다.

여기 “정죄함이 없다는 헬라어 카타 크리마 “ 라는 낱말의 뜻은 재판장이 무죄를 선언 할 때 쓰는 단어 이다.

준엄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무죄라고 선언 했으니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죄악과 죽음의 캄캄한 밤중에 신음 하였으나 이제는 광명한 생명의 새 아침을 맞이하였다. 이렇게 죄에서 해방받은 성도가 구체적으로 누릴 은총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

8:17절에 “후사”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고 하나님나라를 계승할 주인공이라는 뜻이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거주하면서 영원히 그 영광을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선한 자는 힘이 없어 늘 눈물만 흘린다. 강한 자는 선이 결핍되어 그 눈물조차 없다.

어진 자는 사랑이 결여되고 온순한 자는 슬기가 없다. 이리하여 가장 좋은 것이 갈피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다. 이것이 진리이다. 종교 개혁자 루터의 말을 들어 봅시다.

이 땅에 마귀들이 끌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가 이기리로다. 진리는 하나님 나라로 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심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우리를 저주스런 비천한 종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영광된 신분으로 바꾸어 주셨다.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우리 사람은 두 종류의 삶의 스타일이 있는데 그 생활의 차이는 마치 남행 열차와 북행 열차의 간격이 멀어져 가듯 영과 육의 생활의 거리도 그렇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생각을 알게 혹은 모르게 회피하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것은 하나님께 굴 복지 아니 한 연고 이다.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신하가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도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 이지만 반대로 자기 지위 명예만을 보존 하려는 자는 결국 반역자가 된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은 매우 착한 성품 이어서 아버지 곁에서 조용하게 살았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대단한 개성을 지녀서 아버지를 떠나 독립 하였다.

작은 아들은 자기 주관대로 살다가 참담한 실패를 경험 한다.

돈도 떨어지고 친구와 애인도 떠나 버렸다.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아버지의 아들이라 자부 할 수 없는 죄인이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참회 하였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은 겨우 품꾼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 했다.

아들이라 마옵시고 품 군중의 하나로 여기시옵소서.

둘째 아들의 이러한 참상을 본 아버지는 ‘이는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 하여 큰 잔치를 베풀어 영접 해 주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재창조되는 순간 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새 옷을 입고 가락지를 낀 사람은 그 큰 놀라운 은총에 보답 하는 헌신 한다.

하나님의 후사라면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 17절에서 말씀 하신다.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는 것은 영광과 함께 고난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 컨 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 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물은 만인의 생명수이다.

그러나 목이 타는 갈증을 절실하게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물의 풍요한 맛을 알지 못한다.

빛이 있으되 보지 못하고 길이 있으되 찾지 못하는 한 인생은 영원히 허무와 좌절의 가시밭길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캄캄한 밤에도 북극성은 반짝 이고 있다.

그러나 눈을 들어 그 별을 찾는 자만이 자신이 가야하는 방향을 설정 할 수 있다.

우리가 눈을 들어 그 별을 찾느냐 아니면 그 찾는 수고를 포기 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로 자유하게 하셨으니 이제는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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