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분명하지 않은 시대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인간에게 주어지고 있기 때문에 주체하지 못하는 듯 풍요속의 빈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오늘의 상황이 인간성이 메말라 가는 시대에 사람은 누구나 기쁨과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 근심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항상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참 된 그리스도인 이라면 그리스도인답게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나는 이 세상을 살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로 해석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영광중에 계시는 우리 주님을 만나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 승천 하시여 하나님 우편에 않으신 주님을 우리의 육의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며 경배하며 기뻐 할 수 있도록 인도 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장차 우리 눈으로 직접 주의 영광을 보는 것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우리가 직접 대면하고 함께 사는 영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직접 대면하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을 우리 모양으로 바꾸어 만나는 방법과 우리를 영광스런 모습으로 바꾸어 만나는 방법으로 구약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을 만나러 오신 분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찾아 오셨다.

그래서 얼굴과 눈을 마주대고 쳐다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예수님 역시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 인간의 모습 그대로 찾아오셨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 버렸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가 범죄 한 다음부터 흙으로 빚어진 우리의 육체도 영혼과 함께 부패 되었다. 우리의 육체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없다.

혹 있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미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부패의 씨앗이 숨어 있어서 우리 몸을 시들게 하고 추해지도록 되어 있다. 사람이 점점 나이를 먹으면 그 몸은 늙고 병들고 종국에는 죽게 마련이다.

성경은 이것 때문에 삼라만상이 함께 탄식하며 고통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와 같이 부패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우리 육체가 하나님을 만나 뵈는 순간에 그 분처럼 영광스러운 옷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 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을 다시 회복 시켜 주셨다.

빌립보3:21에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여기 나오는 영광은 이 세상의 것이나 흙으로 빚어진 육신의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다시 새롭게 되어 지음 받은 새 몸의 영광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 되는 날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로키 산맥으로 구경하기 위해서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분이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정경을 마음속에 그리며 그곳에 갈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친구가 그곳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면서 로키 산맥의 절경이 담긴 사진첩을 갔다줬다.

그 분은 사진첩을 보고 무척 기뻐하며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을 찾아 구경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한층 들뜨게 하였다.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마치 천국의 영광을 찍어 놓은 사진첩과 같다.

그 사진첩 성경을 펼쳐놓고 천국의 영광을 보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야 ! 멋있다! 황홀하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맏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진짜 크리스천이다.

만약 성도에게 이 기쁨이 없다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인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여기 “즐거워한다”는 말은 좀 강도가 높은 표현이다.

이 말은 기뻐 날 뛴다.는 뜻으로 3절에 이뿐 아니라는 말은 그 기쁨의 정도가 보통이 넘는다는 것을 말한다.

어느 정도이냐? 환난을 당하면서도 즐거워할 정도 이다.

믿음으로 의인이 된 사람이라고 해서 인생의 고통을 면제 받지 않는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병이 안 나는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당장 물질적으로 풍부해 지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이 없는가?

성경은 그런 약속을 하지 않는다.

우리 사람은 고통 받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이 없고 병들고 늙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만약에 어떤 분이 저에게 목사님 요즘 건강이 좀 안 좋아 보이시네요? 안타깝고 딱 하시네요 차라리 빨리 천국에 가시는 것이 좋겠네요?’ 하고 인사를 한다면 글쎄요 저도 그랬으면 해요? 그러나 속으로는 매우 섭섭하고 못 마땅하게 생각을 할 것이다.

이처럼 환란은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 이지만 하나님의 자녀 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비록 환란을 당하나 슬퍼하지 않고 즐거워한다. 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의 자녀가 당하는 자녀 에게는 프리미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즉 부가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환란이 주는 영향은 좋은 스승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친한 벗도 된다.

사람은 환란을 격지 않고는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렵다.

환난의 용광로를 통하고 환난의 망치로 연단을 받아야만 인간의 정신이 순수해지며 인격은 위대해 지는 것이다.

고난과 환난은 그리스도인을 정화 시키고 환난의 양재 물에 세척되어야 양심이 수정보다 더 말고 깨끗한 법이다.

환난을 격고 극복한 인간은 위대한 역사를 건설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환난이 주는 영향은 인생을 인생 되게 만든다.

사람은 예외 없이 어려움을 당해야 그 때서야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순풍에 돛단배와 같이 평온무사한 환경 속에서는 인생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살기 마련이다. 환난이란 인생의 대학 과정을 마치기 전에는 인생 문제를 논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인생을 한껏 짓밟힘을 당하면서 부른 노래가 명곡이 되었고 멸시 천대 속에서 눈물 흘려 보지 못하면 명화가 되지 못했으며 붓끝을 피에 적시어 쓰지 않고는 인간의 심금을 울려주는 명시나 문학이 나오지를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환난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 하신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환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채찍으로 환난을 사용 하신다. 히브리서 12:7-7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 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도의 심령을 연마하는 숫돌과 도가니로 사용하신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이 오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사랑의 징계임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달게 받아 드리자.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부모가 초달을 하는 것은 그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 징계를 통해서 개과천선 하라고 하는 것이지 그 자식을 망하라고 장계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환난이 닥치거든 기도의 밀실로 수용하여 신앙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기 바란다.

‘5’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 은바 됨이니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자기의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하고 말씀 하신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더러 있을 수 있고 선인을 위하여 죽는 자도 혹 있을 수 있으나 죄인을 위하여 죽는 자는 없다. 그러나 주님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이토록 큰 사랑을 받은 이상 우리가 바라는 영광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누리도록 허락 하실 줄 확신하자.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은 자답게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연단 받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된다. 환난 중에도 기뻐하면 그 기쁨이 능력이 되어 치료가 나타나고 가정에서 불행을 만나면 그 불행을 비관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기고 기뻐하면 그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 특별히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쁨이어야 한다.

세상의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자! 보라 우리는 가난해도 즐거워 할 조건이 있다. 나는 병 들어도 감사하고 기뻐한다.

우리 삶에 이런 기쁨이 넘치시기를 바란다. 이 기쁨을 안고 사는 크리스천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행복이 차고 넘치게 될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삶이라고 증거를 하는 자가 되자.

우리에게 비록 여러 가지 환난이 닥쳐온다 해도 성도의 흰 옷을 더럽히지 말고 장차 공중에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하는 신부 교회와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선규목사 #로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