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암흑기를 꼽는다면 단연 아합왕 시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합 왕 시대에 활략하던 하나님의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인데 그의 손에 바알의 선지자들 은 기손 시내에서 몰살을 당하고 마는데 이일로 왕비 이세벨의 미움을 사게 되어 엘리야 또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고 엘리야는 광야를 거쳐 호렙산으로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죽기를 구하게 됩니다.(3절)

엘리야의 하소연에 하나님은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5절)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남은자의 의미를 살피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막상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에는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역하고 대항하고 박대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영영 버림을 받았습니까?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 고 합니다. 곧 자기를 보라는 것입니다. 지기도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자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남겨 두셨습니까? 그들이 마음에 들어서 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떠나지 않는 한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아무리 우상 숭배에 젖어 있고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큰 소리 치며 무종교인으로 안하무인의 삶을 살아가고 그 어느 때 보다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곤고해져 있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소경들은 아닌지 모릅니다.

이래서 우리도 버림 받지 않을까? 염려도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하늘의 별은 빛나는 별이 있듯이 하나님이 남겨 놓은 7천명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암울했던 시대에 버림받은 것 같았어도 하나님은 독립투사들을 남겨 두셨고 지금 북한 땅에 종교의 자유마저 잃고 동토의 땅에서 신음하고 있을 지라도 평양의 예루살렘 이라고 하는 그곳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남겨 두시고 따가 되면(that tim) 반드시 새벽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리라 확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되나 이 문제를 바울은 7절에서 설명을 합니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함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해 졌느니라(7절)

여기 “완악”의 원래 뜻이 무엇인가?

일을 많이 하면 손에 굳은 살이 생깁니다. 그러면 살갗이 두터워져서 감각을 느끼지 못 하게 되지요. 그와 같이 마음이 완악해 졌다는 것은 신령한 것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귀가 안 열리는 것을 말합니다.

감각을 잃어버린 살갗처럼 신령한 일에 반응을 하지 못한다면 그 개인이나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은혜가 무엇 입니까? 하나님께서 깨우게 하시는 것이 은혜요 마음이 열려서 하나님 의를 수용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이 은혜를 주시지 아니 하실 뿐만 아니라 받지 못하도록 귀와 눈을 막아 버린 단 밀인가?

그 해답이 9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을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굳게 하였느니라.“

얼마나 무서운 저주인가? 슬프게도 이 저주가 그대로 현실화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풍요와 축복의 삶이 오히려 죽음의 길로 빠지게 하는 덫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밥상이란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관심사입니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을 싫어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누리는 분복이요 그 자체를 나무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그 자체에 빠져서 즐기는 일들이 죽음의 길로 빠지게 하는 덫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자체가 불행의 덫이 되고 먹고 마시는 밥상이 오히려 건강이 되지 않고 병이되고 기쁨이 되지 못하고 슬픔이 된다면 이 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마태복음 24:38절을 보십시다..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 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마지막 때의 상황을 알려 주시면서 이와 같은 저주스러운 암흑기가 찾아 올 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2, 남은 자 지조를 지킨 사람

바알의 악정과 이세벨의 간악한 행동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다 타락 하였다고 생각한 엘리야는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고 불평을 털어 놓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은 줄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남은 자를 숨겨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남은 자란 무엇입니까?

남은 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존 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하여 준비 된 그릇 이라 는 것입니다. 남은자의 존재 목적은 남은자만 구원 받는데 있는 것만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은 그들을 그루터기로 삼아서 그 위에 싹이 나고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것이 남은 자의 목적입니다.

이사야 6장13절에 보면 :그 중에 십 분의 일이남아 있을 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구루터기니라. 왜 혹독한 훈련을 시켜서 정예 부대를 만듭니까? 그 대원들 잘되라고 그럽니까? 삼키우고 베임을 당하여 죽은 것 같지만 그 베임을 당하여 잘려진 부분에 그리스도로 접 붙임을 받아서 새로운 생명으로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루터기가 싹도 안 나거나 자라지도 않거나 아무런 열매도 없으면 그 그루터기는 밑둥 채 뽑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은자의 존재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남은 자는 다음 세대가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준비 되어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실을 깨닫 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영원히 남은 자로 착각했습니다.

남은자로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이 오직 자신들에게만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교만 해져서 넘어 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 숭배를 벌하시려고 기근을 내려서 가뭄이 몇 년 씩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아합은 비가 오지 않는 것을 엘리야를 포함 이들을 모두 다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사건이 바로 갈멜산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이 기세를 몰아 우상 숭배의 원조인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을 제거 하려다 오히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덤벼들자 엘리야는 도망가면서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 놓게 됩니다. 바알 선지와 싸워 이겼던 모습은 어디가고 지금 이 모습을 보십시오. 혹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이게 인간의 모습이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언제는 주를 위하여 죽을 것처럼 행동 하다가도 갑자기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뀌는 것이 인간입니다.

엘리야는 이런 모습으로 40일이나 앉아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엘리야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을 죽일 때처럼 강한 바람을 일으키고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불을 일으켜서 아예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싹 쓸어버릴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왕상 19:9)

갈멜산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바뀌었습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취하려 하나이다. 라고 원망 섞인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세벨을 깨닫게 하시려고 몇 가지의 능력을 나타 내셨습니다. 왕상 19:11-13 여기서 발 견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말씀 하십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얻지 못하면 주의 일을 하지 못한다는 말씀 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에서 힘을 얻고 다시 시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남은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든 감당하지 못하든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라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해 가십니다.

그 일을 하나님은 열심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자임을 잊지 마십시다. 이 시대의 남은자인 우리는 정말 특별한 사람들 입니다.

엘리야처럼 위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오게 하고 우상 숭배에서 돌이키게 하는 남은자로 부름 받은 것을 잊지 마십시다.

이 같은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바로서야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남은 자들이 이 민족의 희망입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남은자의 사명을 감당 할 때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정신으로 이 시대의 사명자로 우뚝 서시는 우리 모두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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